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메디오스 Jun 22. 2023

Chapter 9. "대체 왜 못하게 하냐구요!"

<학원강사가 바라본 알쏭달쏭 아이들>

단언컨대, 21세기 학습의 가장 큰 적은 스마트폰이다.      


현대인들에게 스마트폰을 떼어놓는다는 것은,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식물들에게서 햇빛을 빼앗는 것과 같다. 고작 성인 손바닥 하나만한 크기의 기계가 인간의 생활을 완벽하게 조종하는 것이 일상인 세상. 모르는 것이 없으며, 각종 계산 및 단위환산마저도 척척인 스마트폰은 선생님이며, 책이며, 과제 도우미이며, 은행 어플들을 몇 개라도 집어넣을 수 있는 지갑이며, 교통카드이며, 통행증이며, 친구이기까지 하다. 2000년대 들어 ‘혼밥’이라는 단어가 고착화된 데에도 스마트폰이라는 존재가 큰 몫을 했지 않는가. 친구랑 스마트폰 둘 중 누가 더 좋으냐는 물음에 ‘스마트폰’을 꼽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특이한 일은 아니다.      


사실 나조차도 그렇다. 대학교 재학 시절 스마트폰을 접한 이후로, 나는 스톡홀롬 증후군에 걸린 포로처럼 스마트폰에 사로잡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들어 일정과 뉴스들을 확인하고, 오고 가는 이동시간에는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과 각종 영상 콘텐츠들 속으로 빠져든다. 가족 및 친구들과의 대화는 모두 스마트폰 메신저로 이루어지며, 때로는 긴 텍스트조차도 귀찮아 각종 이모티콘들로 서로 간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한다. 눈을 뜬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삶. 현대인들은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스마트폰으로 고별인사를 전할 거라는 우스개소리가 비현실적인 것만도 아니다. 다 큰 어른들도 이럴진대,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과 패드로 둘러싸인 세상에 던져진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당장 마트라도 가면 주변 환경 따위 의식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에만 시선을 고정 중인 사람들이 지천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 불을 기다리면서도, 시선은 신호등이 아닌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운전 중에도 힐끗힐끗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급한 일정으로 택시에 탑승했다가, 주행 중 스마트폰을 보던 택시기사의 실수로 차선을 잘못 타는 바람에 되레 지각을 한 적도 있다. 하물며 이전 직장에서는 프로젝트 회의 때 유난히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던 사람이 좌장의 분노를 사 그 자리에서 쫓겨난 일도 있었다.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학원에서의 일상은 어떨까?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가장 먼저 스마트폰부터 꺼내든다. 게임이나 유튜브 등 각자가 원하는 것들을 ‘클릭’하고는, 그 안으로 속절없이 빠져든다. 이때는 주변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응답도 반응도 없다. 두 눈과 화면은 스마트폰 속 세상만을 뚫어지게 주시한다. 화재경보기가 울려도 헤어 나오지 못할 성 싶을 정도다. 스마트폰 속에서는 시간이 열배 속쯤으로 움직이는 터라, 가뜩이나 짧은 쉬는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은 경악하며 비명을 지른다. “제발요”라며 애원하는 아이들, 선생님이 시계를 조작했다며 우겨대는 아이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아직 재생 중인 게임 화면이 떠 있는 스마트폰을 들고 달려나가는 아이들 등 저항의 형태도 다채롭다.      


스마트폰은 요물일까? 아이들의 집중력을 교란시키니 말이다. 사각사각 필기 소리와 교사의 목소리 외에 아무런 소리도 없는데도, 난데없이 스마트폰 벨소리나 진동 소리가 들렸다며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는 경우는 보통이다. 조금이라도 어려운 질문을 하면 머리를 굴려 추론하기보다, “잠깐 검색 좀 해 볼게요.”라는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 생각을 해서 답을 찾아보자고 하니, 스마트폰만 검색하면 답이 있는데 왜 생각을 해야 하냐는 답변이 들려올 때도 있다. 작은 화면 속에 모든 ‘정답’이 있다보니,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의 깊이조차도 무신경하다.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창의력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보다 못해 수업 전에 핸드폰을 미리 수거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니, 이제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얼마 남았는지, 부모님께 메시지가 왔는지를 확인해본다는 핑계로 수업 중에도 수거함 인근을 기웃거린다. 이쯤 되면 아이들과 스마트폰 사이에 운명의 붉은 실이라도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컴퓨터와 전화기의 합체라는 이 경이로운 조합을 발견해 낸 이들은, 이러한 대규모 중독 사태를 예견했을까? 인간들의 창의성과 효율성,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극대화해줄 인류 최고의 도구 중 하나가, 고작 ‘마약성 물질’로 전락해버리는 미래 말이다. 수업 중 스마트폰의 사용을 제지하는 순간 나라를 빼앗아간 매국노라도 보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아이들을 마주하고 있자면 막막하기만 하다. 내 수업이 저 작은 기기 속 콘텐츠들보다 더 ‘흥미’로우리라는 자신감도 없다. 막다른 골목을 마주한 범인(凡人)의 절망이 바로 이런 것일까.   

   

2020년 기준 스마트폰 중독자 수가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한다는 기사를 본 바 있다. 코로나로 인한 미디어 학습의 활성화, 비대면 소통의 증가 등을 거치며 3년이 흐른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개인 의지의 향상부터 시스템적 구속까지, 방법도 다양하다. 그러나 아직 궁극적인 해결은 요원한 듯하다. 사실, ‘궁극적인 해결’이 가능한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윤택하고, 즐겁게 해준 것은 분명하다. 유튜브 애플리케이션만 열어봐도 하루가 멀다하고 전 세계에서 수천, 수만 개의 재미있는 콘텐츠가 쏟아진다. 길고 어려운 말들로 가득한 신문기사나, 딱딱한 뉴스 프로그램들보다도 더 빠르게 세상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단맛에 빠져 일상의 여백마저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다면, 그것은 본말전도가 아닐까.      


부디 아이들이 요란하고 화려한 스마트폰 속 세상에서 벗어나, 시간의 주도권을 다시 잡아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전 08화 Chapter 8. "쟤 다니면 저 안 다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