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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Jun 16. 2023

Chapter 6. "예의 좀 지키시죠?"

<학원강사가 바라본 알쏭달쏭 아이들> 

아이들의 말이 퇴고 없는 글처럼 날것 그대로 세상에 토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는 단순한 헛소리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뭉툭하면서도 날카로운 뗀석기일 때도 있다. 의식과 무의식이 한데 섞여 상대방을 아프게 공격하는 것이다.      


학원에서 일하다보니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선생님 월급 제가 주는 거잖아요.”이다. 자매품으로 “제 말 안 들으면 월급 줄어들 텐데요?”, “계속 그러시면 더 다음주부터 안 나올 건데요?”와 같은 말들도 있다. 사교육은 공교육과 달리 학생 수에 따라 수입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아이들이, 교사를 제멋대로 휘두르고 싶을 때 내뱉는 말들이다.      


학원 교사들 중에는 이러한 말들에 상처를 받고 일을 그만두거나, 수업 후 우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실제로 들은 이야기도 있다. 수업 중 떠드는 아이에게 꾸중을 했더니, “내가 월급 주는 덕분에 밥벌이 하는 주제에 건방지다.”라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당시 그 말을 들은 교사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수업을 중단하고 조퇴했으며, 며칠 후 사표를 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사명감으로 시간과 노력을 헌신해왔던 일이 다른 사람의 눈에, 그것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의 눈에 하찮게 보였다는 데 자괴감이 극심했더랬다. 한동안은 ‘월급’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뜨거운 수증기 속에 갇힌 듯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고 했다.      


햇병아리 교사 시절 처음 저런 말을 들었을 때, 나 역시 무척 당황했다. 귀여운 토끼인형처럼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하곤 “안녕하세요, 식사 하셨어요?”라는 말이 실릴 법한 평이한 목소리로 저런 ‘건방진’ 말이라니. 그것도 초등학생 3학년의 입에서! 심지어 평소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학생이었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두 입술에 풀칠이라도 한 듯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얼어있다가, “그 돈 너희 부모님께서 주시는 거지.”라고 겨우 농담처럼 내뱉고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한다지 않던가. 몇 번 더 그런 류의 말들을 듣고 나니, 나도 내성이 생긴 듯 보다 여유로워졌다. “아이고, 그러셨어요?”라며 장난스레 타박하기도 하고,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랬잖아? 내일 그만두더라도 오늘 할 일은 마쳐야지?”라며 다독이기도 한다. “응, 그래.” 혹은 “고마워.”라고 짧게 응수하며 가볍게 넘긴 후 수업을 계속 이어가는 것도 좋다. 그러면 대다수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혹은 조금은 멋쩍어하며 다시 책이나 노트로 시선을 돌린다.      


도를 넘는 요구들도 잦다. 그 중 하나는 아이들이 교사의 호의를 자신들의 권리로 착각하는 경우다.  

    

아이들에게 사비로 간식을 사줄 때가 있다. 지나치게 더워서 대다수 아이들이 빨랫줄에 걸린  수건마냥 쭈우우욱 늘어진 날이나 볕이 무척이나 좋아 졸음을 호소하는 날, 혹은 모처럼 모두가 높은 학업 성취를 보인 날에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나눈다. 수업 집중도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이기도, 아이들을 위한 응원의 수단이기도, 호의를 얻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몇 번 호의를 맛본 아이들이 선을 넘어보려는 경우도 발생한다. 음료수를 사 주지 않으면 수업에 집중하지 않겠다며 뻗대거나 교실 밖으로 나가겠다며 큰 소리 치는 경우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5학년 수업 진행 중 A가 “아, 목이 너무 마르네.” “목이 너무 말라서 집중이 안 되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A야. 지금 수업 방해하는 거 알고 있지? 곧 쉬는 시간이니까 조금만 참았다가 물 마시자.”라고 하니, A가 “아, 그러지 말고 음료수 한 잔씩 좀 돌리시죠?”라며 도리어 큰소리를 친 것이다.      


도가 지나치는 요구는 흘려보내는 것이 현명하다. 일일이 대응하다가는 자칫 한정된 수업 시간을 낭비할 수 있을뿐더러 다른 학생들에게도 큰 폐가 된다. 또 연장자가 감정적 동요를 보일 경우, 영악한 아이들은 그것을 상대방의 약점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씩은, 아이들을 상대로 매서운 칼날을 내뱉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질서가 무너질 우려가 있을 경우, 아이의 행동 문제가 교실 밖으로까지 확장될 경우가 있을 경우, 사회윤리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경우 등이 그렇다. A의 언행은 내 기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사례였다. 경고만으로 가벼이 흘려버릴 경우 A는 자신의 행위가 무례함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A에게 이 경험이 내재화될 경우 그릇된 습성이 생길지도 모르거니와,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어 교실 내 질서가 교란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A의 행동을 단단히 따지고 넘어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여긴 카페나 식당이 아니라 공부하는 교실이잖니? 선생님은 네가 주문하는 대로 음료수나 과자를 가져다주는 사람도 아니야. 너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잖니. 네가 한 말은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나, 수업을 듣는 친구들 모두에게 무례하고 부적절한 거였어. 수업에 다시 집중해보자.”    

  

“여기 카페 맞고 선생님은 웨이터 맞는데요.”      


얼굴 위로 웃음을 가득 올린 채, 의자 등받이에 온몸의 무게를 기대고 앉아 오른손 검지로 책상을 똑-. 똑-. 두드리며 말하는 A의 모습. 그리고 웃음기 서린 목소리 위 선명히 드러난 확신과 멸시 어린 태도는 내 결심을 굳히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A야. 여기가 교실이 아니라 카페라고 생각한다면, 수업을 들을 의지가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교실에서 나가도 좋아. 친구들과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함께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들을 수가 없어.”     


다시 수업을 이어나가는 교실 안에서 더 이상의 실랑이는 없었다. A는 잠시 당황하다, 끝까지 수업을 마치고 귀가했다. 다음 시간도, 그 다음 시간도 성실히 수업에 참여했으며 무례한 언행으로 수업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일도 없었다.      


아이들의 무례함 혹은 사회적 몰상식이 악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수년 간 겪어온 바에 따르면, 자신의 요구를 논리적으로 관철시키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 혹은 순간의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호승심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경우 아이를 호되게 힐난하기보다, 감정을 최대한 소거한 후 무엇을 잘못했는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것이 좋다. 그래도 자신의 태도를 고수하려 한다면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불합리한 요구는 집단이나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음을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 넣는 것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만큼,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세를 훌륭히 함축해 낸 말도 없는 듯하다. 존중이란 결국, 상호작용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현명한 말 한마디가 불화를 막는다고, 링컨이 말하지 않았던가. 말은 마음의 알갱이다. 창이나 칼이 낸 상처는 치유될지언정 세치 혀가 낸 상처는 죽을 때까지 덧나며 마음을 좀먹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말은 언제나 온화하고, 신중하며,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신의를 담고 있어야 한다. 내 자그마한 교실이 아이들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꾸준한 성장의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전 05화 Chapter 5. "선생님, 그거 왜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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