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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Jun 15. 2023

Chapter 5. "선생님, 그거 왜 몰라요?"

<학원강사가 바라본 알쏭달쏭 아이들> 

지루한 학원 수업을 견디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콘텐츠 중 하나는, 필시 교사의 곤란한 얼굴일 테다.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내다 음절 하나를 잘못 발음하는 바람에 엉뚱한 소리가 나올 때, ‘시발점’, ‘계시기’ 등 생소한 단어들의 발음이 비속어와 너무도 유사하게 들려올 때, 교사의 발음이 꼬여 발화의 마무리가 엉망진창이 될 때 아이들은 두 손으로 책상을 두드려대며 깔깔거린다.      


보다 적극적인 아이들도 있다. 함정을 파는 아이들이다. 교사가 이야기하는 중 갑자기 끼어들어 수업과는 관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말은 말인데 탈 수 없는 말은 뭘까요?” “일할수록 키가 줄어드는 건 누구게요?” 등 난센스 퀴즈를 풀어보랍시고 문제를 내거나, 삼각함수 등 어려운 문제를 내며 풀어보라고 종용하는 식이다.       


혹은 역사 텍스트에 대한 수업을 진행할 때는 아주 세밀한 지식을 꼬투리 삼아 공격형 질문을 난사하기도 한다. 난데없이 고려 1대 왕부터 마지막 왕까지 차례대로 알려 달라 이야기하거나, 백제 의자왕과 고려 우왕 중 누가 더 나쁜지, 조선시대 노비들의 수가 대략 어느 정도였는지 묻기도 한다.      


아이들의 즐거움을 꾸짖을 생각은 없다. 학교 수업을 마친 후 놀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두고 다시 학원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학구적인’ 질문들은 오히려 반가울 때도 있다. 수업으로부터 멀어져가던 아이들의 집중력을 다시 모으는 계기가 될 수 있을뿐더러, 신변잡기적 질문들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눈뜨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교사에게도 지적 자극이 된다. 굳이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에 탑승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지식을 객관적으로 점검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들의 질문을 토론 및 토의나 글쓰기 과제 주제로 삼는다. 난센스 퀴즈에 대해서는 수수께끼 20개 만들어오기롤, 수학 문제에 대해서는 ‘삼각함수를 주제로 시를 써 오기’나 ‘오늘 이야기한 문학 텍스트에 대한 감상문을 쓰면서, 반드시 삼각함수 비유를 포함해오기’ 등을 추가 과제로 제시한다. 혹은 ‘고려 왕들 중 가장 훌륭한 왕과 가장 형편없는 왕을 각각 선정해보기’나 ‘각각 검사 및 변호사 역할을 맡아 우왕과 의자왕을 변호해보기’, ‘조선시대 노비의 수 추정해보기’ 등을 쉬는 시간 중 논의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의외로 아이들이 이러한 ‘지적 논의’를 꽤 좋아한다는 것이다. 초등 고학년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은근히 놀라운 사실이다. 서로 자기 말이 맞다며 우기는 바람에 과열이 될 때도 있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자신의 머릿속 지식과 논리를 최대한 조합해낸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마다 핸드폰 게임 삼매경이던 아이들을 지식의 숲으로 데려올 수 있었으니,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기이긴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않는가.      


아이들이 얼마나 멋진 질문을 던질 것인가. 힘겨운 나날 중 달콤한 디저트이기도 하다. 아이들 스스로도 깜짝 놀라 말을 멈출 만큼 멋진 사유들이 가득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더욱 더 가열차게 성장해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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