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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Jun 09. 2023

Chapter 3. "선생님 덕분에 다 해결됐어요!"

<학원강사가 바라본 알쏭달쏭 아이들>

이곳에서는 4주마다 학부모 상담을 진행한다. 4주차, 8주차 수업이 끝난 후 한 달 간 수업 내용 및 아이들의 성장 현황을 정리해 학부모들에게 전달하고, 그들의 고민을 청취하여 다음 수업에 반영하는 식이다. 대략 11주차 즈음에는 아이들의 분기별 최종 성취를 정리하여 소통한다.     

 

이 과정은 여러 의미가 있다. 1차적으로는 물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토대를 견고히 쌓기 위한 방안이다. 수업 중 교사가 면밀히 관찰하고 발견한 아이들의 모습을 정리하며 그들의 특징을 재조합하여 수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2차로는 부모님들의 교육 고민을 최대한 수렴하여 수업 목표를 재정립하기 위함이다. 문장 쓰기부터 독서 습관, 사회성까지,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나 발달상황에 따라 부모님들의 단기 목표는 저마다 다르다. 사설 학원은 국공립 기관과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철저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부모님들께서 원하는 성취를 달성하느냐, 못하느냐가 장기 수강 여부를 좌우한다.      


더불어 교사에게는 일종의 취업 또는 계약연장을 위한 면접이기도 하다. 교사의 통찰력은 때때로, 사실은 종종 수업 진행보다도 아이의 특성 관찰 및 분석에 더 많이 할애된다. 물론 원활하고 효과적인 수업을 위해 ‘아이의 기질 및 발달 특성’과 ‘수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만 우선순위의 문제인 것이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훌륭한 교사란 결국 ‘가려운 데를 바로 포착하여, 최대한 빨리 그 고통과 성가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이’다. 아이에 대해 학부모 본인이 모르는 부분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 방향에 대한 멋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교사에게 학부모들은 기꺼이 신뢰를 베푼다.        


교사는 전문가를 넘어, ‘척 하면 척’ 아는 솔로몬이 되어야 한다. 특히 대면상담의 경우 더욱 그렇다. 하루 최소 1시간, 귀중한 시간을 내어 참여해주신 학부모님들이 빈손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신변잡기나 심심풀이 대화 핑퐁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학습과 경험에 근거한 지식과, 번뜩이지는 못할지언정 해답을 찾아 연결할 수 있는 아주 약간의 창의성이 필요하다.      


한 아이는 책을 참 대충 읽는다. 속독을 자랑으로 여기는 아이다. 수업 중에도 누가 더 책을 빨리 읽었는지 여부를 가리고자 아웅다웅한다. 100페이지 분량의 책을 10분만에 읽었다는 ‘허세’로 곧장 부리는 아이가, 어머니는 참 걱정이다. 책을 읽은 후 어떤 내용인지 물어봐도 요약을 못 하는 내 아이,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걸까 고민한다. ‘원하는 책 위주로 읽도록 합시다’라는 기존 솔루션을 따르자니 요즘 학습만화에 푹 빠진 것 같아 자칫 글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할까 걱정이다. ‘독서 시간을 여유롭게 주세요’라는 솔루션을 따르자니, 핸드폰의 재미에 푹 빠진 아이가 책을 펼쳐놓은 채로 핸드폰과 단짝놀이를 할까 걱정이다. 이대로 두자니 혹여 나중에는 문제 지문도 제대로 못 읽고 대충 넘겨버리는 상황들이 일상이 될까 우려스럽다.      


나는 이에 ‘밑줄독서’를 제안한다. 매 문장마다 읽는 속도에 맞춰 밑줄을 그어가면서 책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자는 것이다. 한 줄 한 줄 밑줄 치며 읽어가다 보면 의외로 여러 가지 긍정적 변화들을 발견하게 된다. 각 문장의 구조와 의미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음은 물론, 자신이 평소에 ‘놓쳐왔던’ 중요한 말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스스로의 태도를 성찰할 수 있다. 독서 시간이 끝난 후 밑줄 분량을 보며 ‘내가 이만큼이나 읽어냈다’라는 성취감도 만날 수 있다. ‘일상생활 속 성취감’이란 교과서에 글자 그대로 박아넣어야 할 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자신의 긍정적 성취를 향해 움직인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다.      


성실히, 꼼꼼히 독서하는데도 책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밑줄 치기, 메모하기, 요약해보기 등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면 아주 간단한 융합 학습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인상 깊은 내용을 그림이나 만화로 표현한 후, 해당 장면에 대해 부모와 이야기 나눠보면 어떨까. 문학적·미학적 표현 능력의 성장은 물론 토론을 통한 ‘말하기 욕구’까지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발표나 토론은 무척 잘 하는데도 글쓰기만 유독 두려워하는 아이도 있다. 심할 경우 글쓰기를 할 때마다 전기 고문 앞둔 죄수처럼 떨어대거나, 건전지가 모두 닳아 멈춰버릴까 두려움에 떠는 자동 응답 인형마냥 한 문장 쓰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 때 무작정 형식적 글쓰기를 강요할 경우 아이는 글쓰기 자체에 ‘공포’ 혹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주어진 글쓰기 주제로 먼저 ‘말’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여럿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단어 하나만 던져도 서너 시간 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글쓰기’가 아닌 ‘말하기’라면 손짓 발짓까지 해 가며 머릿속 생각들을 풀어낼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말’을 해 본 후, 말한 그대로 노트에 옮겨보도록 해 보자. 평소 하는 대화들,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해 ‘말’하는 모든 내용들이 사실은 모두 멋진 이야기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아이의 자신감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나름대로의 솔루션을 드리고 나면, 어머님들께서는 “선생님 덕분에 다 해결됐어요!”라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이와 같은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학부모들은 교사와의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유용한 깨달음을 얻고 나면, 교사와의 유대감 혹은 공생의 연결고리를 견고히 해 나가기 때문이다. 지식과 창의력의 긍정적 연쇄작용이다.       


공감의 소통도 교사의 몫이다. 교사는 솔로몬이면서, 랍비처럼 슬기로운 영적 치유사도 되어야 한다. 분노, 의심, 짜증, 초조함…. 학부모들은 매일 매 순간 부정적인 감정들과 겨루고 있다. 유치원 시절까지만 해도 비범해보였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학업 경쟁을 경험하면서 달라지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쉬운 문제를 틀릴까. 왜 내 아이가 친구보다 뒤쳐질까. 왜 내 아이는 이걸 해내지 못할까…. 아이를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원론적 사고’가 가장 어렵다. 어느 날 아이를 붙잡고 목구멍 아래 잠긴 말들을 모조리 토해내고 싶은 본능을 거스르면서, 학부모들은 ‘부모로서의 자세’라는 추상적 개념을 입마개 삼아 버텨내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의 정중한 청취와 공감의 자세는 학부모들에게 세상 둘도 없는 명약(名藥)이 된다. 시선을 맞추고 한 마디 한 마디 귀를 기울이며 호응하는 것만으로도 학부모들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무거운 중력처럼 온종일 몸을 짓누르는 걱정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나누어 덜어낼 수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누군가를 신뢰하면 그들도 너를 진심으로 대할 것이며, 누군가를 훌륭한 사람으로 대하면 그들도 너에게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했다. 이른바 ‘진심은 전해진다’는 메시지다. 나는 이것이 학원 강사로서 학부모들을 대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존중하고, 귀 기울이며,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것. 그럼으로써 나는 ‘신뢰감’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대가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끝> 

이전 02화 Chapter 2. "선생님, 왜 존댓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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