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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Jun 12. 2023

Chapter 4. "아, 왜요!"

<학원강사가 바라본 알쏭달쏭 아이들> 

교사의 입장에서도 버거운 아이들이 있다. 그것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라도 마찬가지다. 욕을 하는 아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수업 내내 돌아다니는 아이, 열심히 집중하는 아이에게 계속 말을 걸어가며 학습을 방해하는 아이, 성희롱성 발언을 하는 아이들까지 유형도 각양각색이다.      


사실 아이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어린 아이들일수록 스스로의 감정 또는 충동을 제어하기 힘들다. 고작 두세 살 어린 유치원 아이들을 보면 어떤가. 선생님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벽지 무늬 개수를 세는 아이들, 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쫓아다니는 아이들, 책장에 있는 책을 모조리 빼내는 아이들 등 다양하지 않은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하여 모든 아이들이 마법처럼 사회적 예절에 통달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명장이 손가락 지문이 닳을 때까지 빚어내는 도자기처럼 시간의 연속성 아래 차근차근 자라나며, 그 안에는 개인차가 있다. 이 아이들에게 인내심과 자제력, 억제력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을 이끄는 어른들의 몫이다. 그렇기에 교사는 단단한 나무처럼 비바람과 무의미한 공격들에도 의연히 맞서며 버텨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도 평범한 사람인지라, 어떤 아이들에 한해서는 출근하는 것조차 겨울 때도 있다.      


A라는 아이가 있다. 1학년 때부터 보던 아이다.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며 여타 아이들처럼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쉬는 시간이 되면 화장실에 가는 교사를 졸졸 따라다니는 등 애착을 보여주는 아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계심이 강하면서도, 목구멍에서 예열되는 말들을 꿀꺽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는 일들이 많아 곤란을 겪는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학년이 바뀌면 학원에서도 효율과 성취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주고자 하는데, 그 중 하나가 팀별 교사 또는 팀원 변경이다(현재 재직하는 학원에서는 학급을 팀으로, 해당 학급 학생을 팀원이라고 명명한다. 이 팀이라는 개념 안에는 교사도 포함되는데, 활발한 토론을 중시하는 학원 특성상 교사와 학생 사이의 경계를 낮추고, 자유롭고 자기주도적인 태도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심리적 장치이기도 하다.). 2학년이 됨에 따라 A 역시 담당 교사 혹은 팀을 바꾸어야 했다. 그러나 A는 교사 변경을 끔찍이도 싫어했기에, 나와 한 짝이 되어 새로운 팀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팀 변경 후 수업 첫날, A는 팀원 중 가장 먼저 교실에 도착하여 나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전날 방과 후 수업 축구활동에서 세 골이나 넣은 이야기, 지난 주말 어머니, 아버지와 드라이브를 다녀온 이야기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던 중 다른 남학생 두 명이 들어오자, A의 얼굴 위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싹 사라졌다. 레핀의 그림 속 소피야 공주처럼 굳은 표정을 하고서는, A는 그 아이들에게 갑자기 ‘욕설’을 퍼부었다. 쌍시옷과 쌍기역이 번갈아 나오는, 그야말로 욕설이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굳어버렸고, 교실 분위기도 얼어붙었다. A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며 자리를 정리한 후, 어떻게든 수업은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난데없이 첫날부터 욕설을 들은 아이들의 부모님들과 첫 수업 피드백 상담을 진행하면서, 우려와 불안을 수습하는 데 전념해야 했다. A의 어머님으로부터 또 다시 문제가 생기면 팀에서 나가겠다는 약속을 들은 후, 다음 수업에서 A가 다른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원활히 수업을 마치고 나서야 분위기는 정돈될 수 있었다.      


소소한 문제 상황들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왜 엉덩이가 그렇게 툭 튀어나와 있느냐”, “왜 오늘은 지난주보다 가슴이 더 작느냐”라는 수업 중 성희롱, 갑작스런 자리 이탈이나 특정 부위에 대한 신체적 접촉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 몇 달 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모습들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나 성장하면서 다양한 환경에 노출됨에 따라 생기는 부작용일 것이라고 판단하며 (때로는 따끔함을 곁들인) 지속적인 상담으로 개선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된 점은 A의 일련의 행동들이 주변 어른들의 한담을 들으며 습득한, 자기 나름대로의 친밀감 유도 방안이었다는 것이다. 긍정적 의도의 장난기는 있었을지언정 악의는 없었음을 알게 되면서 다시 올바른 사회화를 위해 노력하면 된다는 안도감은 일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간과하기는 힘들었다.       


그로부터 또 몇 주 뒤, 한 아이(B라고 부르겠다)와 A 간 대립이 일어나면서, 결국 A는 당분간 교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B가 수업 중 의견을 말할 때마다 A가 말끝을 따서 “~라고 하고 있네.”라며 조롱함은 물론, 말끝마다 소리 내어 비웃었던 것이다. 주의를 주어도 그때뿐, 쉬는 시간까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조롱은 B가 왈칵 울음을 토해내게 했으며, 우는 B를 멀뚱멀뚱 쳐다보면 A는 사과도 없이 가방을 들고 달아나듯 교실을 나섰다.      


C라는 아이도 있다. 아지랑이 피어나듯 수줍게 웃는 첫 인상이 인상적이었던 2학년 남자아이다. 함께했던 첫 수업에서 그림 그리기 활동이 많았던 덕분인지 수업 내내 소리 내어 웃으며 즐거워했기에 앞으로도 순탄하겠거니 기대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수업에서, 예측은 완전히 반전됐다. 50분간의 수업 중 C가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어지럽게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교실 집기 및 교사의 물건을 마음대로 만지다가 망가뜨리기도 했다.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면 목을 길게 빼고 건물 바깥까지 퍼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교사의 손을 잡아 이빨로 물고는, 손등과 손바닥 가장자리를 잘근잘근 씹어 상처를 내기도 했다.      


쉬는 시간 중 상담을 해보려 해도 순탄치 않았다. C는 좀처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내 얼굴, 내 눈을 일부러 빗겨 먼 곳을 바라보고만 있다가, 내가 말을 꺼내거나 꾸중이라도 할라치면 입술 양쪽 끝을 올리고 눈동자를 위, 아래, 좌우로 돌려댔다.      


유난히 ‘달라붙는’ 아이들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인 D의 이야기이다. D는 역사에 해박하고 논리적이며, 자신의 명석함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매사 자신감이 넘치며 그 나잇대 남자아이 특유의 장난기가 있지만 유머감각이 뛰어나 인기도 있다.      


그러나 그런 D가 아이들에게 원성 아닌 원성을 사는 것이 바로 신체 접촉이다. 대상은 또래 친구들이 아닌 교사다. 교사를 뒤에서 껴안고 놔주지 않거나, 수업 중 교사가 자신의 옆을 지나갈 때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일이 잦다. 쉬는 시간 중 갑작스레 다가와 교사의 목덜미를 쓸거나, 머리카락을 잡고 킁킁 대며 냄새를 맡는 일도 많다. 이 모습을 보는 아이들도 불쾌하거니와, 교사도 자연스레 긴장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유형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대상이 교사에서 또래 아이에게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혹여 학교에서 문제 상황에 휘말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사실 D 외에도 이런 사례가 드물지는 않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공통점은 모두 남학생이라는 것, 더불어 교사와의 상담 또는 원내 훈육으로서는 좀처럼 개선이 어렵다는 것과, 다른 교육기관에서도 동일한 사례들이 꾸준히 발생해왔다는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가장 큰 다행이란, 서술한 아이들이 내 손을, 혹은 학원을 떠났다는 것이다. 설리반 선생님처럼 이 아이들을 마법처럼 감화시키거나 교정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아동심리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역부족임을 안다. 어린 아이를 다룬답시고 어줍게 행동하거나 훈육한 것들이, 되레 역효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덧붙여 내게는 교실 내 다른 아이들을 책임져야 할 의무도 있다. 내게 주어진 이 ‘의무’란 것은 국가기관에서 부여한 공적 의무가 아닌, 업무와 급여의 등가교환 아래 체결된 상업적 의무다. ‘소’를 과감히 포기하고, 나머지 ‘대’를 지켜내고자 힘써야 하는 것이 수강료라는 수입 일부를 책임져야 하는 학원 교사의 임무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로 부모님들께 상담을 드리는 것은 교사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다. 누구나 칭찬과 인정을 기반으로 둔 화기애애한 대화를 꿈꾸지 않는가. “자녀분이 문제가 있어요.” 따위의 말은 상처만을 새긴다.      

그렇기에 한동안은 방어적 태도를 취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선인들의 지혜에 힘입어,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순화하여 말씀드리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내 나의 이 어설픈 배려가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부터가 행동 교정의 첫 걸음이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다한들, 겁먹지 않고 문제를 직시할 때에서야 풀어낼 수 있다. 사람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방임은 오답으로 이끈다. 부모님의 마음을 배려한답시고 아이의 문제를 축소하는 순간, 장기적 신뢰 관계는 영영 회복할 수 없게 된다. 아이의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 부모님의 눈에는 해당 교사가 수강료를 지키기 위해 문제를 등한시한 파렴치한으로 비칠 가능성도 농후하다.      


A의 어머니는 통화 중 울음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아이가 외부에서 문제아로 비추어지는 것을 환영할 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며칠 후, 다른 학원 및 기관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음을 알게 되신 어머니는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이의 문제를 발견하고, 보다 옳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언젠가 개선되어, 다시 밝은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끝> 

이전 03화 Chapter 3. "선생님 덕분에 다 해결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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