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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Jun 06. 2024

#1. 먹는 계산원

    편의점 알바를 해본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배고파서 뭔가를 입에 넣으면 꼭 손님이 들어온다. 그렇게 계산하고 보낸 다음 이제 오겠지 싶어서 다시 먹으면 손님이 들어온다. 그럼 먹던 도로 뱉든지 급하게 삼키든지 해야 한다. 번은 빵을 씹을 새도 없이 바로 삼키려다가 숨이 막혀서 자리에 주저 앉은 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손님을 탓하는 불합리하다. 문제는 알바생의 식사 시간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이게 그리 단순한 눈치 문제가 아닌 것이 내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손님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손님 입장에서는 볼에 한 가득 음식이 들어 있는 점원이 달가울 리 없다. 어떤 손님은 서둘러 음식을 삼키는 나를 당혹스러울 정도로 빤히 바라보기도 했다. 나도 음식 냄새를 풍기며 또는 입가에 빵가루를 묻히고 손님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8시간 내내 굶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은 걸.


    미안한 마음은 반대 입장이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손님으로서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알바생이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을 먹고 있으면 괜히 미안해진다. 내가 얼마나 달갑지 않은 손님일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물건을 고르고 편의점을 나온다. 계산원으로 일한 뒤로는 계산대에서 먹는 점원이 도저히 근무 태만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식자재 마트에서 일할 때는 식사 시간을 보장받았다. 정해진 시간은 40분인데 교대하는 직원이 거의 30분 안에 와서 나도 30분으로 맞췄다. 2층 주차장 한 켠에 자그마한 직원 식당이 따로 있고 밥 해주시는 이모도 계셔서 매번 다른 식단으로 맛있게 먹었다. 그래도 손님이 많은 날은 금방 배가 꺼져서 구운 달걀이나 초콜릿, 과자 따위를 야금야금 한 입씩 먹었는데 어느 날은 손님이 가까이 줄도 모르고 구운 달걀을 먹고 있었다한 발짝 떨어진 채 기다리는 손님을 뒤늦게 눈치채고 얼른 달걀을 내려놓았는데 손님이 인자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먹고 있는데 미안해요."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니에요, 제가 죄송하죠." 말하고 얼른 바코드를 찍었다. 남몰래 잇몸에 낀 달걀 노른자를 다급히 혀로 훑으며. 그 손님은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일부러 한 걸음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정말 감사한 일은 이런 배려를 보이는 손님이 꽤 많다는 것이다. 청과 팀장님께서 새로 과일이 들어오면 맛 좀 보라고 참외, 수박, 사과 따위를 두세 조각씩 주시곤 했는데 행여 손님이 올 세라 허겁지겁 과일을 입에 넣고 있으면 보고 계시던 손님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을 거 먹고 해요."라고 걱정하듯 말씀해주신 적도 있다. 그게 비꼬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말이라서 참 마음이 따뜻했다.


    물론 계산원이 언제든 먹는 걸 이해받아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전에 백화점 지하에 있는 빵집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따로 식사 시간이 없는 알바생 처지를 아는 제빵사가 갓 구운 빵을 한두개 씩 빼줘서 다른 알바생과 번갈아가며 숨어서 먹곤 했다. 그런데 그걸 어떤 손님이 보고 불만 신고를 했고 백화점 서비스 관리자가 앞으로 일하는 동안 절대 먹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갔다. 암묵적으로 봐주고 계시던 사장님도 미안한 듯 앞으로는 퇴근하고 먹으라고 하셨다. 신고한 손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갔다. 빵을 포장하는 직원이 뭔가 오물거리고 있으면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


    만약 계산원이 계산대에서 먹고 있다면 가장 먼저 의문을 품어야 할 것은 왜 계산원이 식탁에서 먹지 못하는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말에 먹을 개도 거드린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먹는다는 행위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누가 됐든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일하는 사람이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최소한의 공간은 줘야 하는 거 아닐까. 밥상의 빈부격차는 줄일 수 없더라도 밥 먹는 시간 만큼은 모두에게 평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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