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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Jun 02. 2024

나는 어떤 계산원일까

들어가며

    살면서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는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자리를 바꿔보지 않으면 절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안목을 넓히고 이해심을 키우는 게 아닐까. 계산대도 마찬가지이다. 계산원으로 일해보기 전까지는 불친절함으로 보이는 계산원의 사정이 있는가 하면, 손님으로서는 불만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계산원의 타성도 있다. 양쪽 입장이 다 되어 보니 반경 일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서 있는 데도 서로 바라고 보는 게 달라지다니 참 신기했다.


    계산원으로 일한 뒤 내게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인사성이다. 편의점이든 마트든 일단 들어가면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계산이 끝나면 감사하다는 말을 꼭 남긴다. 또 직원이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러이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하필 내 걸 계산할 때 바쁜 일이 있었나 보지.'라거나 '일한 지 얼마 안 된 분인가보다' 하고 내 경험에 비추어 웃으며 넘기기로 했다. 내가 실수했을 때 어떤 손님이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럴 수 있죠."라고 말해줬는데 그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아직도 그 때만 떠올리면 마음 한 켠에 온기가 느껴진다.


    계산원도 퇴근하면 손님이 된다. 이 말에서 얼마나 해방감을 느끼는지 모른다. 한 자리에 서서 오고 가는 손님들을 몇 시간씩 보고 있으면 '난 언제 집에 가나' 이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퇴근 후에도 정체성은 여전히 계산원인지라 계속 일하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어 집 앞 편의점에 들러서 만난 계산원에게 동지 의식을 느끼면서도 스파이라도 된 것마냥 그의 행동을 의식한다. 나보다 더성실하고 친절한 계산원을 만나면 나도 더 분발해야지 다짐하게 되고 내가 봐도 좀 심하다 싶은 성의 없는 계산원을 만나면 저러면 안 되겠구나 반면교사로 삼는다.


    지금부터는 계산원으로서 손님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손님이 바라본 나를 말해보고자 한다. 내가 다른 계산원을 속으로 평가하듯 손님들도 나를 속으로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속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도 없으니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기록하려 한다. 누군가는 날 서툴고 허둥대는 못 미더운 계산원으로 기억할 것이고 누군가는 손놀림이 빠르고 임기응변이 좋은 계산원으로 기억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기운 없고 음침한 계산원으로 기억할 것이고 누군가는 활기차고 친절한 계산원으로 기억할 것이다. 전자의 날 만났던 모든 손님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전하고 후자의 날 만났던 손님에게는 좋게 기억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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