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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May 21. 2021

내가 '프로작가'는 아니라고 했던 당신께.

        내가 마지막으로 면접을 본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학교 학보사 기자 지원할 때가 나의 첫 면접. 방송 아카데미 구성 작가 과정에 지원할 때가 두 번째 면접. 그 후로 막내 작가가 되기 위한 두 번의 면접을 봤고, 한 번은 떨어졌고, 두 번째에 합격. 이후 경력과 인맥이 생긴 이후부터는 주로 작가 선배, 아는 피디들과 일을 해서 면접을 보지 않았다. 어쩌다 생판 모르는 팀과 일하게 될 때만 작가 면접을 봤다. 아무튼 최근에는 면접 볼 일이 없었다.    


        얼마 전,  한 10여 년 만에 면접을 봤다. 프로그램 기획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국가 지원 프로젝트였다. 지원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쉽사리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교육 과정 중에 소정의 지원금이 나오는 프로젝트였고, 때문에 반드시 프로그램 기획안을 매주 과제로 제출해야 했다. 그거야 합격한 다음에 생각할 일이라 치더라도 당장 1차 전형에 넣을 지원 서류가 빡빡했다. 신청 마감 3일 전에야 알게 된 지원 조건은 기본 신청서에 1N 년 전 딱 한 번밖에 써보지 않은 자기소개서는 물론 선택 사항이기는 해도 프로그램 기획안을 제출해야 했다. 1N 년 만에 다시 써야 하는 자기소개서도 갑갑했지만 문제는 기획안이었다.     


        내 이력이 누구나 알만한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프로그램만을 했다면 선택 사항쯤은 가뿐하게 패스해도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설명에 설명을 더해도 잘 모르는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내가 나의 일을 후회 없이 한 것과 남들이 그런 나를 아쉬움 없이 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역시나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마지막 대답을 마친 나에게 예능 작가 출신인 한 면접관이 말했다.           


-...... 그래요. 잘 지원하셨어요.

  우리가 '프로작가'만 찾는 것은 아니니까......         

 

        그의 말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났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앞 뒷말 모두 격려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가 보낸 선의의 처음도, 끝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 있었던 문장에 엉거주춤하게 멈춰 섰다. 내가 느끼기에 그의 말이 격려가 아니라면 무시였는데, 그마저도 격려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프로작가’가 아니어야 했다. 내가 프로작가가 아니면, 그럼 나는 무슨 작가지? 아마추어 작가? 아니면 준프로 작가? 그런 구분은 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하는 거지?     


        생각은 자유고, 평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는 나를 평가하는 면접관의 위치가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면접관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1N 년의 시간을 함부로 단언해서는 안 됐다. 나의 커리어가 어떤 기준에 미달됐다는 평가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프로’가 아니라는 말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어떤 누구도 타인의 지나온 시간을 등급으로 ‘매길 자격’은 없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난 내 일을 한 번도 아마추어의 태도로 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말을 인정하면 1N 년 동안 나와 일한 사람들과 내 모든 것을 쏟았던 프로그램은 또 뭐가 되는가?            


        소위 말하는 유명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하면서 매니저들에게 알게 모르게, 혹은 대놓고 무시를 당했던 일들이 있었다. 서러웠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저 매일이 비굴하게만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중파 유명 특집 프로그램을 하게 됐을 때였다. 분명 그는 그전에도 내가 섭외 전화를 한 적이 있는 사람. 그런데 목소리며 섭외에 응하는 태도가 내가 알던 그 매니저가 아니었다. 방송사가, 인지도 높은 프로그램이,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달라지도록 만든 것이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달라진 나의 위치(!)가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달콤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그건 단지 그 순간의 내 위치였을 뿐이니까. 또다시 내가 무명의 프로그램을 하게 됐을 때 서러운 날들은 다시 시작됐다.


- 아... 작가님, 이번에는 그런 거(?) 하세요?     


        마뜩잖은 섭외에 대한 거절은 매니저의 역할.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만 거절이 아닌 무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차마 직접적으로는 항의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고 노트북 메모장을 켰다. 메모장이 마치 그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있는 말, 없는 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나쁜 말을 다 쏟아냈다. 그때만큼은 욕을 하지 못하는 내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의 욕(?)은 같은 태도를 취한 모든 매니저에게 일관되게 향하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는 ‘당연히 거절하겠지’였고, 저 사람에게는 ‘자기가 뭔데 거절을 해?’였다. 가만 보니 나를 무시한 매니저와 내가 다를 게 없었다. 내가 당한 것만 생각했지, 내가 한 것은 생각하지 못한 어리석음. 내가 유명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지금의 내 위치가 곧 내가 아니니, 위치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말 것. 그게 어렵다면 (솔직히 힘들다.) 최대한 노력이라도 해 볼 것.    


        상대방을 내려치면서 자신을 높이는 사람이 있다. 고백했듯이 한때 나도 그랬다. 그런데 그런다고 내 위치가 올라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위치를 구분할수록 나도 그 기준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나 스스로 작아져야 했던 날들이 많았다. 예전이었다면 ‘프로작가’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나는 분명 쭈글이가 되어서 땅을 파서 들어가고. 그것도 부족해서 우울에 우울을 씹어 먹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말 나를 작아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럴 수 있어.’ 가수 양희은 님의 유행어이기도 한 이 말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할 때 이 말을 많이 생각했다. 지금은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 더 많이 떠올린다. 내가 프로 작가 아니라는 당신의 생각도, 평가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당신의 생각이 그럴 수 있다,라고 하는 건 전적으로 당신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그럴 수는 있어도, 그게 나인 것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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