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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Jul 16. 2021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SNS를 계속하는 이유.

여행의 유효기간

        여행에서 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꼭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은 ‘그날 사진’ 몇 장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당일 사진’이어야 한다는 것. 솔직히 처음에는 인증을 가장한 자랑질이 컸다. 나(도 남들처럼) 여기 왔다, 고 으스대고 싶었다. 어쩌면 여행의 시작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남들처럼’이었던 나에게는 빠질 수 없었던 당연한 루틴이었다.     


        그것이 정말 나를 위한 기록이 되기 시작한 것은 그다음 해. ‘1년 전 오늘’이라고 뜬 여행 사진을 본 후였다. ‘아, 1년 전에는 내가 저기 있었지?’ 현실은 생계형 원고를 쓰면서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렸다, 지웠다 반복하는 일상이었지만 오늘과 같은 날짜를 가진 사진을 보는 게 행복했다. 1년 후에 나는 어디에 있을까. 또 2년 후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잠깐 상상도 해보면서. 그 달콤한 시간 여행에 취해버린 나는 3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나를 위해 사진을 더 열심히 올리기 시작했다.     


        여행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전 세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평균값이 얼마인지 알지 못한다. 워낙 개인차가 큰 분야라 연구하기도, 인정받기도 어렵다고 본다. 다만 나는 ‘N 년 전 오늘 사진’을 통해 여행의 유효기간을 계속 연장하고 있다.           


        나의 루틴 덕분에 여행 사진은 국내, 해외, 장기, 단기, 당일치기할 것 없이 거의 매달, 여러 날 동안 배달됐다. 과거의 오늘 사진을 볼 때면 행복과 죄책감,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찾아온다. 여행 가지 말고 좀 더 열심히 일 할 걸. 그 돈 안 썼으면 얼마나 모았을까, 하면서도 결국에는 거기 있길 참 잘한 것 같다는 만족이 오늘의 후회를 지웠다. 6월 30일부터 7월 9일까지는, 터키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말하는 여행은 시간 여행. 5년 전 베프 메이 언니와 7박 9일 일정으로 떠난 터키 일주 패키지여행.      


'카톡왔어'      


        메이 언니다. 언니는 이제야 터키 여행을 블로그에 올리는 중이란다. 내가 ‘N 년 전 오늘’로 여행의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스타일인 반면, 메이 언니는 주로 (아주) 뒤늦게 일기를 쓰면서 여행에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는 타입이다.     


- 터키에서 올림푸스 케이블카 가서 

  우리는 안 타고 밖에서 커피 마시면서 기다렸던 것 같은데...

  그 사진이 1도 없어. 혹시 너 그때 찍은 거 있어?     


        맙소사! 사진을 2천 장 넘게 찍었는데 나에게도 그 사진은 없다! 이 대화의 끝이 어떻게 끝날지는 뻔하다. 많은 여행을 함께한 우리는 이미 같은 대화를 수없이 반복해왔으므로.     


- 없는 사진이 왜 이렇게 많지? 다시 가야겠다.

- 내 말이. 안 되겠네, 이거. ㅋㅋㅋㅋ     


        이쯤 되면 여행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게 아니라 다시 떠날 구실을 찾기 위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누군가의 SNS 여행 사진에 질투뿐이던 시절이 있었다. 정작 본인에게는 태클 걸지도 못하면서 나에게만 묻던 질문. ‘굳이 이렇게 올려서 자랑해야 돼?’ 그것이 정말 자랑이던, 아니던, 부럽다는 마음은 내가 느끼는 건데, 왜 책임은 상대에게 떠넘겼을까. 아마도 이런 의식의 흐름이었겠지. 네가 여행 사진 안 올렸으면 내가 안 봤을 거고, 그러면 나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었을 텐데... 너의 그 사진 때문에 부럽다는 마음이 생겨버렸으니, 이건 모두 네가 사진을 올린 탓이라고. 참 부끄럽지만, 한때는 여행을 간 이유가 ‘너도 한 번 느껴봐’라는 마음으로 복수(!)의 사진을 올리기 위해서도 있었다는 걸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과연 그도 나를 부러워했을까. 내가 그랬듯이 나를 탓하기도 하면서?     


        부럽다는 감정을 내가 왜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는지 생각해 봤다. 왠지 이게 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 때문인 것 같다. 부러운 건 그냥 나도 갖고 싶은 마음일 뿐인데, 왜 승부의 세계로 끌어들여 승자와 패자로 나눈단 말인가. 부럽다고 인정하는 사람을 어째서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지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실은 너무 부러운데 부럽지 않은 척해서 얻는 게 대체 뭐였나. 지지 않았다는 정신 승리?     

 

         겪어보니, 부러움 부정에 부단히 애쓰던 어느 날보다 마음 놓고 부러워하는 게 덜 괴롭다. 나를 미워하는 일이 줄어든 탓일 것이다. 누군가를 향했던 쓸데없는 원망의 화살은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왔고. 나 자신을 싫어지게 만드는 것이 최후의 임무였다.


        언젠가 어떤 소신을 지키기로 유명한 연예인을 만난 적이 있다. 프로그램 MC 섭외 때문에  만난 자리였다. 그의 소신이란,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술을 안 마신다거나, 담배는 안 피운다거나, 채식주의자라던가, 무슨 일이 있어도 운동은 매일 한다. 뭐 그런 종류의 것들. 방송에서나 인터뷰에서 공공연히 밝힌 터라 때로 그를 떠올리면 출연작보다 그 소신이 먼저 떠오를 때도 있었다. 그도 연예인이기 이전에 사람. 어쩌다 신념에 어긋나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할 텐데, 그럴 때 대중에게 눈치 보이지 않냐고 내가 물었다.  


- 저라고 일탈하는 순간이 왜 없겠어요, 저도 있죠.

  그래도 눈치는 안 봐요. 당당하니까요.

  어긴 날 보다 지킨 날이 훠~~~~~얼씬 더 많거든요.     


        그가 철두철미하면서도 자유로워 보였던 건 아마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가 살고자 하는 삶이 남에게 보여주기가 아니라, 나에게 당당하기라서.     


        내가 여행 사진을 올리는 이유가 자랑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기록이라고 해서 오롯이 그 의도가 모두에게 전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여전히 시기의 말도 많이 듣는다. ‘여행 잘 다녀왔냐’는 안부보다는 ‘돈이 많나 봐’라고 나의 경제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보여도(아, 잠깐만 눈물 좀 닦고...) 결코 그리 들리지는 않는 말로 말이다. 내 계정에, 내가 보려고 올리는 건데도 눈치 보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어떤 반응이든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패배감을 안겨주려 사진을 올리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나를 위한 기록을 계속할 뿐이다. 혹자는 SNS는 시간 낭비라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다. 시간을 선물 받고, 또 받고, 매년 다시 받고 있다.     


- 또 사진 올려?

- 응! 앞으로도 매년 보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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