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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Mar 02. 2022

명품을 입어야 무시받지 않는 나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명품가방이 없어서 친구들로부터 면박을 당했다는 사연은 이랬다. 그의 친구들은 ‘30대인데 넌 참 여전하다. 우리 나이에 아직도 애들처럼 하고 다니냐’며, '중요한 곳에라도 가게 되면 좋은 가방을 들고 좋은 신발을 신고, 옷을 입어야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는다'라고 면박을 줬다고 한다. 명품에 관심이 없었던 그였지만 지적을 받은 이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고.          


        내가 아주 무신경했던 어떤 것에 대해 그게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이 불현듯 온갖 신경 레이더망에 잡히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이를 끝없이 괴롭힌다. 지금까지 괜찮다고 믿어왔던 자기 자신이 실은 전혀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대학교 때 친구에게 '너 얼굴에 점이 상당히 많은 편이구나? 빼는 게 어때?'라는 말을 듣게 된 후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점들이 순식간에 존재감을 과시했던 것도. 고등학교  때 내 뻐드렁니를 보며 '우와! 너 정말 수박 빨리 먹겠다!'라고 말한 수학 선생님의 우스갯소리를 들은 이후. 반 친구들은 물론 거리의 사람들, TV의 속 연예인들의 가지런한 치열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도 다 그 때문이었으리라.       

   

        모르긴 몰라도 이 글을 쓴 사람도 적지 않은 시간, 모든 관심사가 명품에만 꽂혔을 것이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싶어도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니까. 3N 살 어느 한 여름날, 또다시 내가 나에게 의심을 품었던 그날처럼.           


- 아주 어리게 보이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출근 일주일 무렵, 내게 웃으면서 그러나 어느 정도 악의를 가지고 그 말을 던진 사람은 당시 투입된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난 대선배 작가였다. 그때 내 옷차림은 스카이 블루 계열의 아무 프린트가 없는 민소매 면 티셔츠에, 3부 그러니까 대략 41 - 42cm 길이의 청반바지 차림이었다. 또 굵은 화이트 스트랩 보세 단화 샌들을 신고 에코백을 코디했다. 액세서리는 캐주얼한 디자인의 중저가 국산 브랜드의 화이트 색상 손목시계와 한 쇼핑몰 매대에서 만원에 구매한 5cm 지름의 실버 링 귀걸이와 실버 반지를 양쪽 검지 손가락에 착용했다. 마지막으로 머리는 흔히 말하는 똥머리, 하이 번 스타일이었다.         

  

        그 전 여름도, 그 전전 여름도. 아니, 옷의 길이와 두께만 달라질 뿐, 사계절 모두 내 스타일은 그래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옷장은 그런(!) 것들 뿐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기본 흰 면 티셔츠, 맨투맨, 후드티, 청바지, 블랙진, 면바지 등. 몇 가지 특색 있는 패션 아이템이나 브랜드 제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손에 꼽을 만큼밖에 되지 않았고, 소위 말하는 명품은 하나도 없었다. 대략 스물여섯 살 무렵부터 고수해 온 데일리 룩. 시상식 프로그램 그것도 생방송 당일을 제외하고는 스타일 제약이 거의 없다시피 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들은 그 순간, 억울했고, 화가 났다. 억울했던 이유는 ‘어려 보이려’라고, 그가 제멋대로 해석한 내 패션 의도 때문이었고. 화가 났던 건, ‘발악한다’고 정의 내린 그의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행위 분석 발언 때문이었다.     


        반박하고 싶었다. 발악이란, ‘온갖 짓을 다 하며 마구 악을 쓰다’라는 의미인데 내 스타일이 그 정도의 평가를 들을 만큼 문제적인가? 설령 어려 보이고 싶어서였다고 해도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일방적인 지적을 받아야 할 만큼 잘못된 욕망인가? 나이답지 않게 어려 보이는 게 문제인 건가. 아니면 어려 보이지도 않는데 어린(?) 옷차림을 한 것이 문제인 건가. 좀 더 노골적으로 내 나이가 문제인가? 아니면 몸매가 문제인가? 인터넷 쇼핑몰 제품인 게 문제인가?     


        다 양보해서 열거한 모든 것이 문제라고 치자. ‘나이에 맞고, 아니고’는 무엇이고, 누가 만든 기준인가. 도대체 그걸 평가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내 스타일 평가를 의뢰한 적이 없음에도 왜 함부로 평가를 들어야 하는가. 때와 장소에 맞게도 아니고 나이에 맞아야 한다는 게, 대체 뭐라서?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 퀘스트가 생성되고 있었음에도 실제로는 한 마디도 반격하지 못했다. 농담처럼 던진 말에 혼자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에게 향해야 할 질문들이 정작 나에게 돌아와 꽂혀버렸다. 질문의 화살들을 하나씩 뽑아낼수록 내 옷차림이 정말 문제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퍼져서 나 스스로도 당당할 수 없었다.           


        나이가 아무리 숫자일 뿐이라고 할지라도, 또 한편으로 나이는 어쩔 도리 없이 사람을 속수무책으로 나약하게 만드는 숫자다. 특히나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나이 공격'에 더 취약한데, ‘그 나이’로는 처음 살아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누군가 제 나이답지 않다고 지적하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어 나부터 의심하게 된다. 이상한 건, 그렇게 수없이 나를 의심했음에도 여전히 나이에 맞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


        나에게 발악한다고 말했던 당신은 아는가? 스물두 살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서른다섯 살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마흔일곱 살은 어떤 옷을 입고, 예순 살은 어떤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지. 오직 편견에 사로잡힌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그저 나이를 핑계로 사람들을 겉모습으로만 저울질했던 당신의 아집은 아니었는지. 정녕 묻고 싶다.


        일단 이번 생은 도무지 모르겠는 ‘나이답게’가 아닌 그래도 잘 알고 있는 ‘나답게’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 누군가 나이답지 않다고 지적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순순히 인정한다. 또 그게 나인 것 같다고 당당하게 말할 준비도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이답게 산다는 건, 타인에게 나의 어떤 부분이 부정당해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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