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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Jan 18. 2021

그 사람의 성공을 축하하지 않았던 이유.

'개인의 성공'은 몇 퍼센트의 축하를 받을까.

        앨리스 언니는 나의 다섯 번째 메인 언니이자, 1N 년 넘게 연을 이어오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선배다. 어느 날 언니가 카톡으로 어떤 기사 캡처를 보내왔다. 매일 바쁜 언니는 연락할 일이 생기면 카톡보다는 전화를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언니가 카톡을 먼저 보내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내가 아닌 언니가 선톡을 하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일까. 생각이 삼천포로 빠질 무렵.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느꼈던 건 단지 오버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감이 맞았다.


        언니가 캡처한 기사에는 언젠가 방영된 적이 있는 드라마 작품 이름과 작가 이름이 강조되어 있었다. 내가 한 눈에 알아보도록 언니가 따로 표시한 것이었다. 한때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었고, 지금은 그냥 드라마 애청자인 내가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드라마 이름도, 작가 이름도. 하긴 세상의 모든 작품을 내가 다 보지는 않으니까 라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모르는 작품이 있다는 게 드라마에 대한 내 열정이 정말 ‘한때’였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 이 작가가 누군데요?

  언니 아는 분이에요? ㅋㅋㅋㅋ          


    언니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나도. 따지자면 언니보다 내 기억에 더 선명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게 아니라는 게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 사람은 언니와 내가 함께 했던 프로그램의 출연자였고, 내가 그의 담당 작가였다. 개명을 한 것도 아닌데 그 이름은 내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언니가 누구라고 말해주기까지는 놀랍도록 까마득했던 사람. 아주 흔한 이름도, 그렇다고 아주 특이한 이름도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지만 생각보다 내 기억력은 평균 이상을 웃돈다. 그는 그다지 기억에 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기억하지 않기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마저도 아니었다. 이런 경우는 기억이 지워진 걸까. 애초에 내 머릿속에 한 번도 자리 잡지 못한 걸까.          


- 그 친구 꿈이 드라마 작가였잖아?        

 언니의 말을 듣다 보니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다.     

- 그 친구가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어요?

  동명이인이 아니라?     

- 동명이인인가...?          


    언니도 확신은 없었다. 나와는 다르게 언니의 기억에는 남은 사람이지만 우리 모두와 연락이 끊긴 사람.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딱히 없었다.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궁금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알고 싶지 않았다.


- 에이 설마ㅋㅋㅋㅋㅋ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 맞다면 대박이지?

- 저는 동명이인에 한 표!(제발)          


        동명이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언니는 말이 없었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확실히 나는 그 이름의 주인공이 그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사람의 성공(!)이 싫었을까. 그가 나에게 해코지한 적이 있었나? 아니. 법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나? 아니. 도덕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글쎄... 아무래도 ‘글쎄’가 내가 그 사람을 응원할 수 없게 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그게 이유의 전부였으면 좋겠지만 나는 이루지 못했는데 그 사람이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는 꼴(!)을 보는 것도 내가 바라는 그림은 절대 아니었다. 그 사람이 맞다면 진짜 배가 아플 것만 같았다. 이미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언니가 나의 배포를 오해한 게 분명하다. 아니다. 내가 오해했다. 언니는 반가움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정말이면 안 되는데’하는 불길함이었다. 섣불리 언니의 마음이 나와 같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왠지 그가 아닌 언니에게 해명(?) 해야 할 것 같았다.           


- 언니 저는 속이 좁나 봐요. ㅋㅋㅋㅋㅋ

  그 친구가 맞으면 축하해줘야 하는 일인데

  너무 아닐 거라고만 생각했나 봐요.

- 아니 근데 ㅎㅎㅎ A도 너랑 같은 반응이었어.          

 

        언니와 나 말고도 그 사람의 기억을 ‘한때’ 함께 공유했던 후배 작가 A. 언니는 동시에 우리에게 물어봤던 걸까. 아니면 영 뜨뜻미지근한 내 반응에 A에게 재차 소식을 전한 걸까. A의 반응이 나와 같았다니 뭔가 좁게만 느껴졌던 내 속이 5cm 정도는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곧바로 속이 좁은 것 같다는 말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 저는 그냥... 그 친구가 

  사람들을 이용하는 게 너무 느껴져서...

- 대박!!! A도 똑같은 말을 했어.


        심지어 A는 그를 아는 또 다른 지인 B에게 그의 근황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B도 그와 연락을 끊은 지 오래라서 아는 게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입장을 분명히 했고, 그의 입장은 나와 그리고 A와도 같았다. 


- 나는 그래서 그 친구가 사람들한테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구나 했어.          


         한 '개인의 성공'은 사람들에게 몇 퍼센트의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을 수 있을까. 모든 축하의 평균값은 100%에 가까운 편일까, 0%에 가까운 편일까? 내심 그가 아니길 바라는 우리 세 사람을 포함해서 그가 받은 혹은 받게 될 축하의 평균값은  몇 퍼센트가 될까 궁금했다.          


        다음 날 언니는 우리의 기대가 어긋났음을 알려왔다. 오랜만에 들어간 언니의 SNS 친구 추천 목록에 우연치고는 상당히 극적으로 그 친구가 올랐다. 그리고 그의 프로필 사진 중 하나는 우리가 기사에서 본 드라마 포스터였다. 하루 전 예행연습(?)을 한 탓일까. 배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런 축하도 응원도 보내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다음 작품도 내가 보는 일은 없을 것임을 알았다.          


        그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 생각해 봤다. 반대로 그 사람이라면 내 성공을 축하해줬을까. 어떤 대답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괜찮을 것 같았다. 나처럼 아니길 바랐다는 말에도 나는 서운해할 자격이 없었고, 축하한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역시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가 그럴 자격이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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