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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17. 2024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의 함정

        내 의견을 물어보는 질문은 늘 난감했다. 처음에는 모르는 건 죄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모른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줄 알았다. 물론 그런 점도 있었지만 실은 무엇이든 호불호가 확고한 편이었는데도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게 힘들었다. 특히 부정의 말은 괜히 나까지 부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할까 봐 이미 목구멍까지 도착한 ‘싫다’는 말은 되도록 삼켜버렸다. 그래서 그때마다 내 대답은 ‘아무거나’였다. 나의 무지함을 드러내지 않아도 됐고, 적당히 에둘러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포커페이스가 한 번도 된 적이 없었던 나에게 표정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말만 안 했을 뿐 ‘싫어요’를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끝까지 숨길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다.     


        끝까지 숨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솔직해지자 마음먹었다. 괜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다. 근데 솔직해진다는 게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가 솔직한 거고, 안 솔직한 거냐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거기다 너무 솔직한 건 오히려 독이 됐다. 말 그대로 ‘적당히’ 솔직해야 되는데, ‘적당히’라는 게 워낙 ‘케바케’라 어느 정도에 수위를 맞춰야 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또 내가 아닌 사람들에게 맞추려 하고 있었다. 어차피 상대가 원한다고 100% 솔직해질 수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100% 솔직해질 수 있었다. 솔직함은 말하는 것에 거짓이 없다는 것이지 모든 것을 다 말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까. 누군가에게는 하나를, 또 다른 누구에게는 열 가지를 털어놓더라도 거짓이 없다는 것에 일단은 만족했다. 가끔 우리 사이에는 모르는 게 없어야 한다는 전제를 걸고 똑같은 솔직함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함의 속도는 모두가 같지 않다. 나는 다 줄 수 있어도 상대는 ‘아직은’ 혹은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있을 수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말하지 못한 것뿐인데, 자신만큼 나는 솔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추궁을 받을 때가 있었다. ‘불신’때문이라는 상대의 공격에 제대로 방어 한번 못하고 곧바로 사과했다. 사실 말하고 싶은 적당한 호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내 마음 한편으로는 아주 작은 마음일지라도 상대를 믿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어느 이유가 더 컸든 간에 지금은 같을 수 없음이 미안했다. 그렇다고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솔직해지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생각했다. 보통의 관계라면 비밀의 개수는 시간이 가면 자연스레 줄어들기 마련. 도무지 개수에 진전이 없고 오히려 점점 더 많아지는 관계였기에 그쪽이나 나나 관계를 더 끌고 갈 필요가 없었다. 한 명의 사람을 얻기 위해 그 정도의 시간은 빨리빨리 보다는 조금 더디게 가는 편이 나았다.     


        솔직함이 쉽지 않은 것은 어떤 식으로든 신뢰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라는 말이 사람을 홀리는 매직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만’이라는 조건을 단 비밀치고 진짜 나에게만 할 리 없는 말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 말을 들으면 별 의심 없이 ‘나를 많이 신뢰하는구나’라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그뿐인가?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넘어서 보답하고 싶은 의리까지 생긴다. 이런 마음의 저변에는 자신은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않았는데 상대가 먼저 믿어준 것에 대한 미안함이 깔려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신뢰는 오고 가는 ‘조건부 비밀’ 속에 쌓이는 마음이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 중에 미처 단속하지 못했던 말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옮겨지지 않을 때 신뢰는 견고해진다. 특히나 ‘나에게만’ 비밀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서로 간의 신뢰를 깨닫는 첫 번째 계기가 된다면 ‘개수작(?)’이 아닌지 한 번쯤은 의심해봐야 한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너에게만‘ 다음으로 ‘우리 사이에’라는 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면 당신은 함정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아무런 목적 없는 말로 보이지만 관계의 우위를 점령하기 위함이나 당신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할 요량으로 한 말일 수도 있다. 믿음이 아닌 말로 돈독해지는 관계는 순식간에 가까워지기는 해도 기대만큼 오래가지 못한다.     


        솔직함은 분명 기브 앤 테이크의 문제는 아니지만 상대가 솔직한 만큼 나도 솔직해지는 게 맞다. 그게 안 된다면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원래 나는 그래’라는 말로 자신을 꽁꽁 싸매고, 궁금해한다는 이유만으로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이기적인 것을 넘어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 나만의 세계에 갇혀서 정말 내 사람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해질 수 없다면 적어도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이유는 만들어줘야 한다. 그 사람에게는 당신의 비밀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이유면 당신이 준비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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