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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Mar 01. 2024

어느 방관자의 고백.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누군가 매일 밤 장난 전화로 신혼부부를 괴롭히는 사연을 본 적이 있다. 무려 2년 동안 이어진 장난 전화가 많게는 하룻밤에 300통에 달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부부는 누가 자신들에게 그런 고통을 주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제작진은 부부를 대신해 장난 전화를 한 남성을 추적했다.     

     

        매일 밤 장난 전화를 하기 위한 그의 정성(!)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한 구역을 정한 후 공중전화로 향한다. 장난 전화를 한다. 차단을 당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다른 공중전화를 찾아 걷는다. 또 전화한다. 다시 차단을 당한다. 또 다른 공중전화를 찾아 이동한다. 그는 밤마다 이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부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밤 부부가 수십 통을 무시하다가 끝내 분노가 폭발해 전화를 받아 고통을 호소했을 때, 가해자(!)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어깨가 들썩이는 그의 뒷모습은 그가 지금 웃고 있음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 그는 분명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부부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라 확신했다. 도대체 어떤 원한이길래 2년 동안 이런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걸까. 피해자만큼이나 가해자에게도 무척 고달프고 괴로운 밤일 텐데 말이다.     


        제작진을 통해 범인의 모습을 확인한 남편은 단숨에 시간을 거슬러 15년 전 기억 속에서 가해자의 정체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날의 자신까지도.     


        그는 남편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지금과 그날이 다른 것이 있다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었다는 것. '장난 전화남'은 중학교 때, 남편에게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였다. 2년 전 우연히 SNS를 통해 그 시절 자신에게 학교 폭력을 가했던 남자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됐고, 자신에게 피해를 주고도 잘 사는 남자가 보기 싫어서 복수심에 장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다만 남편은 그때의 일은 ‘학교 폭력’이 아닌 ‘장난’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정말 그 시절 일들이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과연 전화남을 본 순간 동창이라는 것을 단박에 기억해 냈을까. 만삭의 아내를 둔 지금의 그가 자신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비겁한 변명은 그저 ‘장난’이라는 말뿐이었으리라. 평행선으로 유지될 것 같은 상황을 정리한 것은 당사자인 전화남도, 남편도 아닌 아내였다.           


 이 사람에게는 그게 장난이 아니었던 거야.
그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 괴로웠다고 하니까,
우리는 여기서 할 말이 없고...!     


        그제야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그에게 사죄했다. 단지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듣고자 했던 전화남은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은 지난 2년의 시간을 곧바로 부부에게 사과했다. 그가 현재 진행형의 과거 기억 속에 갇혀 지낸 15년에 비하면 아주 빠른 용서였다. 아프고, 고단했던 날들에 하루라도 빨리 안녕을 고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멈춰버렸던 그의 시간이 이제는 계속 앞으로만 흐르기를 바랐다. 혹여 어떤 순간 다시 그날로 그를 데리고 가더라도, 지금의 이 사과가 그를 재빨리 현재로 돌려보내 줄 것이라 믿고 싶었다.  


        다행히 나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적도 없고, 가해자였던 적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만은 방관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기는 했지만 엄밀히 말해 친구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한 출석부와 시간표, 교실을 공유하고 있는 관계, 딱 그 정도의 사이였다. 입학 후 2년 동안 교내에 그녀의 친구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우리가 같은 반이었던 일 년 동안에도 변하지 않았다.


        들리는 풍문은 있었지만 그녀가 언제, 왜 ‘왕따’가 된 건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철저히 혼자인 학교생활이 이미 익숙해 보였다.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않았고, 그 누구도 굳이 그녀와 친구가 되려 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그녀가 왕따를 당하는 건지, 반대로 우리 모두가 그녀에게 무시를 당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 시절은 서로가 서로에게 투명인간 같았던 시기였다고 나는 기억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혼자’가 아닌 ‘우리’에 속했던 내가 만든 환상일 가능성이 더 높다.


        중3 시절의 끝자락. 나와 몇몇 친구들은 실업계 고등학교 면접을 앞둔 반 친구들에게 합격 기원 선물을 하기로 했다. 급하게 당일에 급조한 이벤트다 보니 딱히 포장이랄 것도 없었다. 매점에서 사탕과 초콜릿을 사서 면접 잘 보라는 말과 함께 한 움큼씩 나눠주는 게 다였다. 마음만 앞섰던 이벤트였지만 친구들은 생각보다 훨씬 좋아했다. 준비한 선물이 모자라지는 않았고, 오히려 조금 남았다.    

 

        교류가 전혀 없었지만 그녀도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제 곧 헤어지는 마당에 그녀에게도 행운을 빌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에게 그랬듯, 그녀에게도 면접 잘 보라는 말과 함께 사탕과 초콜릿을 건넸다. 그녀는 고맙다고 했다. 내가 그녀의 미소를 처음 본 것이 그 순간이었는지,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무렵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한 달 후 나의 고입선발고사, 속칭 ‘연합고사’가 있기 하루 전날. 그녀가 내 책상으로 다가와 정성스럽게 포장된 초콜릿을 내밀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건넨 말도 조용히 함께 돌아왔다. ‘내일 시험 잘 봐’ 왠지 받으면 안 될 마음 같았지만 얼떨결에 고맙다고 했다. 일 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그녀와 내가 나눈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시험 잘 봐. 고마워. 서로에게 건넨 말도, 받은 말도 아주 공평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진심만큼은 아주 달랐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진심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이기적 이게도, 그녀가 나에게 준 초콜릿이 고마움이 아니라 용서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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