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중학교 입학하고 첫 무용시간이었다. 무용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교단에 서시며 자기소개를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이 누구냐고 선배들한테 물어 보면
모두가 다 무용선생님이라고 말 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출석부를 훑어보시더니 내 이름을 부르시며 누구냐고 일어나보라고 하셨다. 나에게로 다가오셔서 뻔히 쳐다보며 “너 무용하니?”물으셔서 아니라고 하니 “너 참 예쁘게 생겼다"하시면서 "너 혹시 쌍둥이 언니 있니?”라고 재빠르게 또 물으셨다. 또한 없다고 하니 무용한 언니 중에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고 하시면서 관심을 보이셨다. 곧이어 “너 무용 한번 해보지 않을래?”란 물음에 그때 당시 무용이란 걸 들어 본적도 없는 터라 생소해서 무용이 어떤 거냐고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학교 끝나고 별관에 있는 무용실로 와서 언니들 무용하는 거 보라고 일러주셨다. 드디어 학교수업이 끝나고 선생님 말씀대로 무용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선생님이 신입생 발굴작업을 하신 다른 여자 아이 한명도 있었다. 그 아이는 키가 작고 순진하게 생겼는데 예전에 한국무용을 학원에서 오랫동안 해봤다고 했다. "무용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볼래?"라는 질문에 손들었다고 한다.
무용하는 언니들은 10명 안팎이었는데 제 각기 다양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한명은 벽에 대고 다리를 올려서 스트레칭하고 있었고 또 한명은 마루바닥에서 사이드 스트레칭을 일자로 하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바에 다리를 올려 놓고 일자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언니들에게 한국무용을 보여 달라고 지시하셨고 한국무용 옷을 입은 언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음악에 맞춰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한국무용이 끝나고 현대무용과 발레도 보여주었다. 검정 레오타드를 입고 살색스타킹에 쉬폰치마를 두른 언니들은 턴 등 여러 동작들을 보여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보고 무용선생님이 “너는 무슨 전공을 하고 싶니?”라는 물음에 발레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래, 넌 딱 발레하면 좋겠다”하셨고 그 아이는 한국무용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언니들에게 궁금한 것 물어 보는 시간을 갖게 하고 자리를 떠나셨다. 이윽고 언니들이 모였고 그 중 제일 무섭게 생긴 언니 한명은 “너네는 이제 지옥에 들어왔다”라고 슬며시 웃으며 얘기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고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신경 안 썼다.
무용선생님은 교무실 자리로 부르시더니 무용은 힘들거라고 살짝 말씀하시고서는 부모님께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오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거라는 것을 미리 말해주지 않고 시작하게 하면 너무 속보여서 너무나도 시키고 싶지만 슬쩍 말씀 하신거라는 걸 안다.
무용부에 들어 와서 아주 열심히 무용을 했다. 무용부는 상당히 엄격했다. 선후배 사이도 그렇고 연습도 그렇고 규율도 그렇고 모든 것이 일반인과는 달랐다. 욕을 하거나 심한 말을 할 경우에는 무용부 명단에 있는 이름 옆에 별표를 그리는 룰도 있었다. 물론 선배언니들이 관리하는 거였고 무용선생님이 무용하는 사람은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서 그들이 쉽게 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은 일체 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를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반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게 하셨고 무용부 학생들하고만 어울려야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다.
나는 항상 아침 6시에 기상하여 7시에 학교 교문을 여는 경비아저씨께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학생이 되었다. 무용실에 도착하여 무용복으로 갈아입고 있으면 하나둘씩 무용부 사람들이 왔다. 그렇게 다른 학생들이 하는 자율학습 시간에 나는 무용을 하고 수업 시작할 시간에 맞춰서 반에 들어가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다시 무용실에 모여 무용부 학생들끼리 점심 도시락을 펴서 먹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청소할 시간에 나는 반에서 나와 별관에 있는 무용실로 향했다.
무용부에는 두 명의 아이들이 들어왔다. 그 아이들에게 무용 시작한지 몇 개월 안 된 나를 포함해서 학생들이 선생님 지시에 따라 무용을 선보였다. 한명은 사교적이고 선배들한테도 벌써부터 칭찬을 하며 아부를 떨 줄 아는 씩씩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현대무용이 어울리는 아이였고 본인도 현대 전공할거라고 했다. 또 한명은 이영주..키도 크고 얼굴도 하얀 예쁜 아이였고 발레 전공하겠다고 했다. 영주와 나는 성격도 비슷해 힘든 무용부 생활을 같이 하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이렇게 1학년 넷이서 겨울에도 어김없이 2리터 패트병을 양손에 2개씩 들고 100미터 거리에 있는 수돗가에 물뜨러 갔다 오는 일을 했다. 한 사람당 적어도 3병이 필요하기에 손이 시렵고 무거워 힘들지만 너무 추우니까 여러 개 들고 가야 빨리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습시간에 목마를 때 먹어야 하고 바닥이 미끄러울 때 슈즈에 묻혀야 하기 때문에 물은 필수
로 매일 무용시간 전에 뜨러 다녔다. 찬물 밖에 나오지 않는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고 차가운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무용실 창틀 및 바닥 등 무용실 청결 유지를 위해 여기저기 깨끗하게 닦아내는 일 또한 1학년 후배들의 몫이었다.
하루는 연습끝난 밤에 언니들이 맥주를 사갖고 연숙언니네 아무도 없다고 집가서 먹자고 했다. 후배들도 다같이 따라갔는데 현대무용전공하는 요빈이만 그날 무용을 결석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같이 잔을 돌려 마셨다.
다른 애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엄마한테 말씀드렸다.
다음주 발레전공 자인언니와 요빈이가 우리집에 놀러와서 어머니가 맥주 줄까 하셨더니 자인언니는 "네"라고 대답해 마셨고 요빈이는 거절했다.
다음주 학부모 모인 자리서 요빈 엄마는 대놓고 "아이들한테 맥주를 주는 사람이 어딨어?"하며 비판을 했다. 그래서 다른 부모들도 아이들이 몰래 맥주 마신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마시고 싶었으면 몰래 마셨을까. 엄마가 주는 건 괜찮아"하며 연숙언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요빈엄마는 무용부를 늦게 들어와서는 조용히 무용이나 열심히 뒷바라지 할것이지 딸이나 엄마나 윗사람에게 잘보이려고 고자질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다들 싫어하는 눈치였다.
현대와 한국무용 군무를 여러 번 나가서 많은 상을 받을 만큼 공휴일도 쉬지 않고 될 때까지 연습을 했다. 2학년 선배 현경언니는 수업이 끝난 각자 연습시간에 후배들 넷을 돌아가며 불러서 자기 다리에 알 베긴 근육들을 풀어 달라며 매트에 누워 쉬었다. 각자 연습해야 할 자유시간인데 우리는 한 시간씩 서서 그녀의 하체 전체를 발로 마사지 해야 했다.
3학년 선배언니들도 여러 가지 좋지 못한 그 언니의 행동을 보아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용 주임선생님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현경 언니는 어머니와 닮은 외모였고 성격도 아주 강했다. 잘난 척 잘하고 정말 자기밖에 생각 안하는 상당히 심각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현대무용 전공인데 3학년 같은 전공 언니들도 어머니가 무서운 무용선생님이라 마음대로건방지게 행동을 해도 꼼짝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짱”인 언니도 그 언니한테는 꼼짝 못했을 정도였다. 현대무용 선생님도 무용 시간에 건방지게 행동하는 그 언니의 태도를 보고 참고 참다가 욕을 막 퍼부으며 “야 너 무용하지마! 어쩜 저렇게 애가 말을 안 들어!!! 너 뭐 배웠니? 애가 정말 싸가지가 없어!” 하며 무용선생님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호되게 혼내셨다. 그래도 그 언니는 뻔뻔하고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나몰라라 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인 무용선생님은 자기 딸 감싼다고 생각할까봐 일부러 “말 안 들으면 아주 더 혼내주세요! 벌을 받아야 돼!”라고 했다.
하루는 현경 언니가 결석한 날이었다. 무용하고 다같이 모여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 탈의실에 있는 물건과 돈들이 요새 없어진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3학년 발레 전공 곽언니가 현경이가 탈의실에서 사물함에 기웃 거리는 걸 봤다고 한다.
다음날, 캄캄한 밤이었다. 무용선생님은 학부모 한명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잔뜩 난 채로 무용실로 오셔서 연습하고 있는 우리들을 중단 시키고 죄다 소집하여 연필과 쪽지를 나누어 주면서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사실대로 적으라고 했다. 선생님은 걷은 쪽지를 펼쳐 본 후 곽언니를 불러 언니는 몹시 떨면서 일어섰다. “너 현경이가 훔친 거 직접 본 적 있니?”라고 묻자 “아니오”라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철썩"하고
거친 손이 곽언니의 가냘픈 얼굴 뺨을 때렸다. 곽언니는 그 과도한 힘에 옆으로 한발 쓰러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현경 언니를 불러 일어나라고 지시했다. 그 언니도 자기 어머니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라는 걸 알기에 벌벌 떨며 고개를 푹 숙인채 일어났다. “너가 탈의실에 있는 애들 물건에 손을 댔니?” 묻자 깨알 같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바로 머리와 뺨따귀를 사정없이 세게 때리셨다. 현경언니는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손으로 얼굴을 막고 뒷걸음치며 무용실 제일 끝에 까지 가서 쓰러졌다. 현경언니는 “엄마 잘못했어요..다신 안 그럴께요..!!! 살려주세요!!!” 라며 수도 없이 소리를 지르기를 반복했다. 무용선생님은 발길질과 주먹으로 때리다가 분이 안 풀리시는지 신고 있는 운동화까지 벗고 그것으로 마구 내리치셨다. 정말 살벌한 광경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무용선생님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고 우리는 그대로 그 주위에 동그랗게 앉았다. 현경언니도 무용실 끝에서 울음을 그치고 몸을 추수린 후 바로 앉았다. 선생님은 다시 쪽지를 나누어 주면서 무용부에서 힘든 점이나 싫은 점을 쓰라고 하셨다. 한국무용 전공하는 은미라는 아이는 나랑 같은 날 무용부에 들어 온 아이다. 그의 쪽지를 읽은 후 선생님은 현경언니한테 “너는 왜 은미는 싫어하고 율희만 좋아하니?”
둘이 있을 때 자기 혼잣말로 웅성웅성 거렸다.. '이름이 율이 뭐냐 율이, 얼굴도 촌스러운데 이름도 너무 안 어울리고 촌스러워!” 하면서 안좋게 대할 때가 있었지만 그렇게 시비를 걸 때마다 나는 싸우기 싫어서 무시하고 연습에 몰두했었다. 발레 솔로 콩쿨을 이틀 앞두고 공휴일날 선생님이 두시부터 시간이 된다고 그때 모이기로 했는데 그 날 아침 6시에 우리집에 전화가 와서 어머니가 받고 나를 깨워 내 방에 있는 전화기
로 전화를 받았다. 이 새벽에 무슨 일인가 하고 어머니는 다른 수화기로 들으셨는데
은미는 “어 나야 지금 일어났어? 알았어.”하고 성의 없게 끊었다. 그래서 얘가 아무 내용도 없이 왜 전화했을 까..도무지 이해가 안 갔지만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오후 두시 연습시간에 맞추어 무용실로 갔는데 모두들 일찍 왔는지 연습을 하고 있는 거였다. 나는 너무 신기했지만 물어 보지 않고 들어갔다. 내가 온 후 발레선생
님은 다들 모이라고 하고 10시에 연습 시작한다고 했는데 왜 안 나왔냐고 해서 나는 놀래서 전달 받은 적 없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미가 큰소리로 “내가 아침에 연락했잖아~”우기는 거였다. 그래서 발레 선생님은 “잠결에 받았나보다”하고 넘어갔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10시에 모이라는 전달을 못 받았는데..생각하며 연습 후 집에 가서 저녁에 어머니께 물어 보았다. 그래서 어머니도 아무 내용 없이 전화 끊어서 그 새벽에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은미가 전화했을까 의아해하셨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은미는 나와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지 발레도 나보다 더 잘하려고 애를 무지 썼다.
2학년 봄, 콩쿠르에 나가 솔로로 대상을 차지하는 영광을 얻었다. 상금도 받고 상장과 함께 트로피도 얻었다.
물론 상금은 무용부에 기부했다.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발표가 끝나고 점수가 나왔다는 소식에 점수표가 있는 복도 끝으로 가서
내 이름을 확인하는데 내 이름이 옆에 만점 가까운 점수에 대상이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언니들도 우리 부모님도 다른 학부모들도 기뻐해주었고 축하해주었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틈만 나면 연습에 몰두했고 심사위원을 포함해 관객들이 봤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들도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감정표현을 잘 살릴 수 있게 꼼꼼하고 세밀히 연구하고 노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한 터라 점수를 관여하지 않았고 오직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만을 가지고 충실히 임했었다. 항상 군무작품을 나가서 수상을 하면 언니들이 트로피와 메달과 상장을 받았는데 사실 나는 만지지도 못했다. 그때 처음으로 시상식때 내 이름이 호명되면서 트로피와 메달을 받고 상금과 상장을 부여받았다. 대표와 악수를 하고 사진 찍고 걸어 나와서 부모님을 비롯해 무용단원들과도 사진을 찍었다.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자랑이라며 체육대회때 내가 무대에 올랐으면 하고 바라셔서 그 바램을 들어 주었다.
학교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무대에 올라 작품을 선보였다.
학교 무대에서 발레를 하는 건 처음이라서 어색하지 않을까 했는데 전교생에게 큰 박수를 받으며 잘 끝났고
그후부터 학교에서 내가 지나가면 모르는 선후배들도 반가워하며 칭찬을 했다.
그때 당시 최진실이 나오는 "질투"라는 드라마를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였다. 대회 끝난 후 교가 다음곡으로 질투 주제곡을 부르는데 나는 무용하느라, 단 한번도 본 적도 들어 본적도 없는 드라마여서 아이들이 열심히 부르는 리듬에 맞추어 박수만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