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ong 빌롱 Aug 22. 2024

순진한 아이

백치미

어머니가 앵두 밭에 가셔서 치마에 너무 예쁜 앵두를 한가득 담아 집에 오는 꿈을 꾸시고 내

가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는 이목구비가 안 보이고 살찐 얼굴이라 사람들이 엄마아빠는 상당히 미남미인이신

데 어떻게 이런 못생긴 아이가 태어났냐고 했다고 한다. 어릴 때의 나는 정말 순진하고 수줍고 부끄러움 많이 타는 내성적인 여자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할머니 댁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버스로 10 정거장 걸리는 그곳에 가기로 마음먹고 버스정거장 앞에 있는 동네 슈퍼에서 버스표를 사고 돈을 거스르는 과정에서

슈퍼 할아버지가 피고 계시는 손가락에 껴있는 담배 한 개비에 재가 돈을 받는 내 오른쪽 손

엄지 밑 손등에 떨어져서 “앗?!”하고 너무 뜨거워 털었다. 그리고 버스 타는 동안에 그 부분

이 점점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너무 따가워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는 엄마께 말씀드려 

약을 발랐지만 이미 상처가 아무를 때는 지나서 그대로 상처가 조그맣게 아직도 남아있다. 나는 원래 있는 상처라서 인지 눈에 전혀 띄지 않고 신경도 안 쓰고 사는데 사실 실제로도 잘 

안 보인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내가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다면 바로 아저씨한테 사과를 받아내던지 책임지

라고 했을 텐데.... 자기 손녀 아니라고 담배를 든 손을 함부로 사용하고 그 얼마나 뜨겁겠는

가.... 사과는커녕 아무 일 없다는 듯 정말 그 아저씨는 무식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손에 덴 상처에 대해서 묻는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막 올라간 20살 초반 때 설대생들과 첫 미팅을 가졌다. 나한테 큰 관심과 적극성으로 첫 만남을 가지게 된 공대오빠 M 씨가 내 손등을 가리키며 “너 이거 왜 그래? 혹시 담배 피우다 그렇게 된 거 아니야?”하며 웃으며 얘기했는데 남자가 감히 여자에게 그런 언행을 하다니 너무 기분이 나빠 차분히 사연을 설명한 후 겨우 밥만 먹고 과제해야 한다고 핑계 대며 헤어졌다. 그 이후 계속 연락 왔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나는 상당히 보수적이었는 데 지금도 그런 마인드를 갖고 산다.

어머니는 상당히 미인이셨다 하지만 나랑은 전혀 다르게 생기셨다. 눈이 아주 크시고 이목구비가 나처럼 오목조목하게 큰 게 아니라 시원시원하게 크셨다. 어머니를 본 내가 아는 사람들은 전부 다 “딸보다 어머니가 더 미인이시구나” 하고 똑같은 말씀을 하시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 회장이시기에 모임 있을 겸 우리 반에 잠깐 오셔서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셨다. 

우리 반 반장 남자아이는 키가 크고 잘생겼다 그리고 성격이 리더십이 있어서 나는 그를 좋아했나 보다. 반장은 내 책상 옆을 지나가다가 그전과 다른 필통이었는지 내 얼굴을 보며 활기차게 “율희야 필통 바꿨어? “하며 웃으면서 말을 건네곤 했다. 반 뒤에서 초록색 네모 통에 담긴 서울우유와 남양분유를 자기 것과 내 것까지 들고 바로 건너편 자기 자리에 와 자기 것 놓은 후에 내 자리에 와서 놓으면서 “율희야 너 시켜 먹지!”하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어 고마워!”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우리 어머니를 보고 “너네 엄마 진짜 미인이시다!”하며 감탄의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가 한번 오시면 “어머니 진짜 미인이시더라! 탤런트 같으셔”라고 선생님뿐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진하게 꾸미고 다니지 않으셨지만 얼굴 자체가 눈에 확 튀고 화려하셔서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고 아름답고 멋졌다. 어머니가 사람들 앞에서 나와 손잡고 걸으면, 마치 내 어머니가 아니라 나를 딸 역할의 아역 배우로 선택하는 여배우처럼 느껴졌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무척 좋아하셨다. 내가 예쁜 옷을 입고 오면 “원피스 정말 예쁘다. 어쩜 이렇게 예쁘니....!”하며 많은 관심을 가

져주셨다. 같은 방에 계신 동료 선생님의 남동생이 방송국 PD라는 데 우리 어머니보고 율희 소개하는 

게 어떻겠냐고 자주 얘기 하셨다. 그런 말이 있을 때마다 우리 어머니는 귀담아듣지 않고 귀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내가 좋아하는 반장 남자아이는 “율희야! 너네 어머니 또 언제 오셔?”하며 나보다 우리 어머니한테 더 관심을 보였다. 중학교 배정받고 담임선생님이 인생게임을 한다고 반 전체 쪽지를 돌리셨다. 

1. 반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친구 이름을 쓰시오! 

2. 그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남자친구 이름을 쓰시오! 

남자아이들한테는 여자친구의 이름을 쓰라고 했다.

나는 누가 알까 봐 숨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이, 쓰라고 하니까 있는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그의 이름을 적었다.

정말 순수한 초등학교 여자아이였다. 그 이후 담임선생님이 나와 단짝 친구를 집에 초대하셨다. 우리 셋은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생 게임 얘기가 나왔다. “그 아이가 남자답긴 하지” 하면서 얘기하시다가 반장아이가 쓴 종이를 건네며 보라고 하셨다. 거기에는 내 이름 석자가 1번에 적혀있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거라 너무나도 놀랐다. 곧이어 웃으면서 담임선생님이 “둘이 잘 어울린다” 하셨다. 모범상 받을 아이를 추천하는 시간이 왔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그 당시에는 반 친구 추천과 다수결로 모범상을 받았다. 나 역시 반 친구 추천으로 내 이름이 거론되었고 담임선생님이 “율희가 모범상 받는 데에 동의하는 사람 손들어!”할 때 반장아이를 포함해서 많은 아이들이 동참해 모범상과 개근상을 받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인생게임#내성적인 아이

이전 01화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