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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ong 빌롱 Aug 29. 2024

모델

캐스팅

고등학교 입학하고 중학교 때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친구들과 압구정동 맥도널드에서 수다를 즐기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으신 아저씨가 계속 뚫어지게 쳐다봐서 친구들한테 얘기했다. 친구들하고 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고 무섭기도 하고 기분이 안 좋아 나가기로 했다.

계산하고 나오는 과정에서도 그분은 계속 우리의 눈치를 보며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가 나와서 로데오 거리를 거닐 즈음 그분은 뒤에서 아주 큰 목소리로 “학생~!”하고 불러서 순간 우리의 걸음은 동시에 멈춰졌다. 그분은 나에게 오시더니 혹시 모델 아니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했다. 자신이 사진작가라고 탈렌트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꼭 연락해 달라면서 명함을 주었다. 친구들은 이런 일이 여태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제까지 다른 곳에 전화를 해 본 적이 없지만 호기심에 “전화해 볼까?” 친구들한테 물었다. 친구들은 한번 해보라고 적극적으로 말했다. 그 후 여의도에 있는 연기학원을 소개해주시고 거기에 학생이 되어 연기수업을 받았다. 한복과 웨딩 모델에 캐스팅되어 1년 내내 카탈로그를 찍어서 결혼도 하기 전에 신부가 된냥 수많은 드레스와 한복을 입고 포즈를 자연스레 취했다. 아카데미 원장님은 나한테 기대를 많이 거시고 그때 당시 30만 원 하는 프로필 비용을 안 받고 촬영을 매번 찍게 하셨다. 들어오고 두 달 후 MBC 방송국 탤런트 시험을 보라고 권유하시면서 나까지 합해서 17명이 PD분과 만남을 가졌다. “우리 같은 사람은 사람을 잘 봐요" 하시면서 옆에 있는 임언니한테는 ”이쪽은 탤런트 할 얼굴이 아니고 아나운서 할 얼굴이야 탤런트는 율같은 사람이 해야 돼” 하고 아직 연기 경력이 없으니 자기 하는 프로그램에 작게나출연한 걸로 하고 이력서에 넣으라고 하셨다. 옆에 있는 탤런트 지망생 임언니는 무시 한 채 나한테만 관심을 듬뿍 갖고 말씀하셔서 미팅이 끝나고 우리끼리 집에 가는 길에 언니는 “어우 기분 나빠.. 사람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을 하냐..”하길래 매니저가 씩 웃으면서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했다. 지금 같았으면 "아나운서야 말로 아무나 못 되는 거잖아요"라고 재치 있게 말했을 텐데 그때는 너무 사회경험이 없어 센스 있게 받아치지 못하고 미안한 듯 고개 숙이며 가만히 있었다.

20대 중반, 뉴스에서 날씨를 보는 데 그 임언니가 기상캐스터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것도 예전과 달리 아주 세련된 도시여자로 변장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못 알아봤는데 이름을 확실히 안 후 그 언니라는 게 정확해졌다. 그 이후 그 언니는 공익광고 CF에도 나오면서 “기상캐스터 임**”라는 이름으로 TV에서 자주 보게 되었다. 

연기 경력이 없던 나는, 격차가 많이 벌어지는 2차까지는 붙었는데 3차에서 당연히 떨어졌다. 그래도 그 아카데미에서 2차까지 간 사람은 나뿐이어서 원장이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무엇이건 결코 쉽게 되는 건 없다.


나는 고3 언제까지 모델 일을 즐길 수만은 없는 기로에 서 있었다. 아카데미에서는 당연히 연극영화과를 가는 걸로 생각하고 부추기기도 했었지만 내가 그쪽에 가는 게 과연 맞을까.... 생각에 잠겼다.

여태까지 촬영 한 답 치고 학교에 공문서를 보내 수업을 많이 빼먹었었다.

교장선생님은 "미래의 우리학교를 빛낼 대한민국 최고로 예쁜 여배우"하며 엄지 척했지만 

담임선생님은 한 가지 일을 선택해야지 지금 이렇게 양다리 걸치고 있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고 했다.

나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언제 어디를 가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누가 봐도 무용하는 사람"

그래, 나의 첫사랑을 배신할 수는 없지. 생각할 필요 없이 당연히 무용을 선택해야지.


교장선생님의 추천으로 학교 홍보 모델을 하게 되었다. 사진작가님과 함께 학교 캠퍼스 이리저리를 다니며 촬영을 했고 학교 홍보 카탈로그가 완성되었다. 학교에서 '교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여학생'이란 수식어가 붙고 얼마 안 있어 졸업을 하였다. 그 후 신입생 후배들이 카탈로그 모델언니를 보러 2.3 학년 교실들을 죄다 찾다가 못 찾아서 교장선생님께 이 언니 몇 학년 몇 반인지 알려달라고 왔었다고 한다. 졸업한 선배라는 말에 크게 실망했다는 얘기를 교장 선생님께 들었다. 



적성이란 건

주위 사람들이 어울린다고 인정해 주는 것

자신이 생각할 때 어울리는 것

열의와 도전이 느껴지는 것


#모델#무용과#연극영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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