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뽑으시나 봐요. 이 더운데.”
등산로 입구에 있는 꽃밭에서 밀짚모자를 눌러쓴 중년 여인이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몸매가 가늘어서 쉬이 피곤할까 걱정되는 여인은 나를 바라보고 해맑게 웃었다.
“너무 재밌어요. 잡초 뽑고 여기 이 꽃 심으려고요. 이렇게 꽃밭을 가꿀 수 있으니 감사하죠.”
여인이 들어 보여준 화초는 길고 가는 잎사귀만 있어서 무슨 꽃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긴 아주 대중적인 꽃이거나 이름표를 달고 있지 않는 한 내가 아는 꽃 이름은 별로 없었다.
‘그래, 내 밭을 갖고 싶은 노인들의 희망이 여기서 실현되는구나. 다행이네.’
입주민중 누구도 땅 한 평이 없었지만 흙을 일구고 꽃을 심고 가꾸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대규모 꽃밭이 단지별로 만들어졌고, 오늘처럼 잡초를 뽑거나 흙을 돋우거나 가뭄에는 물을 주며 땀을 흘리는 노인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꽃밭에는 여름 내내 해바라기가 가득했고, 도라지도 그 도도한 보랏빛을 여지없이 뽐내곤 했다. 누구나 아는 백합이나 수국, 분꽃, 맨드라미뿐만 아니라 발음이 너무 어려운 이국 국적의 꽃들로 화단이 채워지는 것을 보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꽃밭 옆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서는 일정 시간 분수가 물을 뿜어내곤 했다.
노인 들 중 두 명, 혹은 혼자서 그 연못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은 거의 매일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들은 가끔 전화기를 들고 뭔가를 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무료한 듯 분수의 물줄기를 바라보거나 못 바닥에 비친 산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한가하고 평화롭기도 했지만 일순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어딜 가든 사람들이 한, 두 명 풍경처럼 가만히 있는 곳은 거의 비슷한 느낌이지. 꼭 늙어서가 아니라 본래 사람이란 고독한 존재니까.’
그 느낌을 떨쳐내고 싶어서 뭔가 말을 건네려는데 연못 구석에서 떠다니는 작은 물체가 보였다.
“어? 종이배네요. 할머니. 종이배가 떠 있어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부채로 볕을 가리고 있던 할머니는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느리게 말했다.
“저기 앞 집 할아버지가 만든 거야. 종이는 아니고 은박지 같지. 작년에 마나님 떠나보내고 한 동안 안 보이더니 며칠 전에 이 배를 접어가지고 왔더라고.”
아, 그렇구나!
자세히 살펴보니 은박지가 맞았다.
가운데 돛대에는 낙서인지 글씨인지 뜻을 살필 수 없는 상형문자가 그려져 있었다.
앞 집 할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이 배를 접고 무슨 이야기를 돛에 그려 넣은 것일까.
은박지 배는 바람을 따라 옮겨 다니곤 했다.
그래 봐야 연못에 갇혀 비슷한 자리를 돌고 다시 돌아오지만.
나의 생각이 옮겨졌을까.
“나 같애. 저 배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어머, 종이배가 있네요. 누가 이렇게 꽃밭과 잘 어울리는 배를 만들어 주셨을까? 감사해라.”
예의 잡초를 뽑고 꽃을 심던 여인이 연못가로 내려와 땀을 닦으며 역시 대상 없이 얘기했다.
모자를 벗은 여인은 생각보다 훨씬 늙었고 왜소했다. 땀에 젖은 여인의 얇은 웃옷이 어깨뼈의 굴곡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후로는 우리 중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여름의 태양은 불처럼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으나 종이배와 연못가의 노인들은 서늘했다.
죽음이라도 한적하고 평안할 듯 한 그 공간에 나도 가만히 눌러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