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고 여섯 달이 지나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 와서 적응하는 게 쉬운 체질은 아니었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쓰레기 처리를 위해 문 밖을 나갈 뿐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나를 남편은 다소 불안해했다.
저 마누라는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입주한 이후로 식당엔 딱 한 번 갔을 뿐이고 시설 좋단 사우나엔 아예 출입도 안 했다. 아파트 내의 동호회고 영화감상이고 라인댄스고 그 많은 모임들에도 무관심했다.
물론 남편을 따라서 아파트 단지 내의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 구경도 했고, 거의 둘레길 수준의 단지 내 산책로를 두어 번 다녀오긴 했지만 그마저 않겠다고 선언했다.
노인들이 많아서 싫다는 건데... 여보시오, 여긴 실버 아파트 아닌가.
남편은 나를 실버 포비아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또한 노인이고, 당신도 노인이고 조금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같은 그룹인데... 확인 사살을 하곤 했다. 물론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여전히 내 루틴을 지켜나갔다.
남편은 혼자 식당에 가서 밥 먹고, 혼자 헬스장 가고, 혼자 소그룹 모임에 가곤 했다.
언제나 아내를 동반하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나도 웬만하면 같이 하려고 했지만 싫었다.
‘나는 왜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내가 늙었다는 그 현실.’
물론 부부가 모든 걸 같이 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아파트 내놓읍시다.”
드디어 나는 남편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남편은 한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웃지 않았다. 대신 한숨을 쉬며 부동산에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우리 집을 중개한 부동산에 전화를 했고 그 젊은 사장은 난감한 목소리로 사모님이 적응이 안 되시는군요 라며 이사는 할 수 있으나 비용이나 수고를 따졌을 때 너무 손해가 크다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 난 비교적 정상이었다.
‘장난도 아니고. 6개월 만에 이사라... 정신 좀 차리시게.’
좋은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차선책으로 동네를 구경 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데 못 갈망정 구경이라도 하자. 여길 벗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남편은 성의껏 동네 구경을 함께 해 주었다.
제일 먼저 예쁜 단독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동네를 기웃거렸고 커다랗고 평평한 공원을 끼고 있는 고급 빌라들도 들여다보았다. 도서관이며 우체국이며 대형 마트도 돌아다녔다. 카페에 들어가 철 이른 빙수를 먹고 덜덜 떨고, 달달한 와플 조각을 들고 돌아다니며 먹기도 했다. 누가 보기엔 로맨스그레이처럼 보일만도 했으나 속이 시끄러운 커플이었다.
“그래도 한 2년은 살아봅시다. 그래야 세금 부담 없이 팔 수도 있고.”
동네 구경을 같이 다니다가 지친 남편은 틈만 나면 내게 부탁을 했다. 그러나 난 확고했다. 어쨌든 이곳을 떠나는 게 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 난 이사를 갈 거야. 여기보다 좋은 데를 찾는 게 아니라 실버가 아닌 데를 찾을 뿐이야.”
더욱 강화된 선전포고로 남편과 나는 냉전에 돌입했다.
실버아파트가 싫다고 징징대는 나와 실버 아파트를 너무 좋아하는 남편 사이에 전쟁은 예고된 것이었다.
기어코 나는 부동산에 우리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다.
그러나 이 전쟁은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경제의 먹장구름 때문에 선전포고로 끝나고 말았다.
부동산 거래 냉동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글로벌하게 나의 탈출을 막는구나!’
그렇게 나의 실버 살이 6개월 차 전쟁은 비참하게 종식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