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인듯 Sep 23. 2022

식당 풍경

“오늘은 생선가스니까 먹으러 가지 그래?”

남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손엔 일주일 치 식단표가 들려져 있었다. 

내가 식단표를 모바일로 다운받아 줘도 남편은 전화기로 확인하기보다는 종이로 들여다보길 좋아했다.      


식당에서는 매주 한 주일씩의 식단을 짜서 입주민들에게 제공했다. 하루 3끼씩 꼬박꼬박 식단으로 내용을 알려줬다. 물론 우리나라 가정식의 큰 틀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었고 가끔 서양식이나 중식이 제공되는 정도였다. 

그러니 집에서도 밥을 잘 안 먹는 남편이 식당이라고 해서 밥을 엄청나게 먹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나마도 잘 안 가는 편이었고 그걸 아는 남편이 특식이라고 생각되는 날은 나를 이런 식으로 초청했다. 

남편과 100% 남인 나는 당연히 식성도 달랐다. 

남편은 전형적인 한국인 농촌 남성의 식성이었고 나는 퓨전이 더 좋은 세대들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놀리곤 했다. 

“엄마 입맛은 초딩이야.”     


그렇게 남편의 초대에 몇 번 식당에 가곤 했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결같은 식당 풍경이었다. 

식당은 매우 컸고 쾌적했으나 개인적으로 식판을 들고 배식받는 분위기는 학교나 무료급식소 느낌이었다. 

물론 원하는 만큼의 반찬을 더 가져갈 수도 있고 노인들이 좋아하는 누룽지가 항상 준비되어 있기는 했다. 

딱 그만큼이었다. 


식판을 제대로 옮기기 힘든 노인은 음식 수레를 이용했고 식후 식판 처리도 각자가 알아서 해야 했다. 

그러니까 건강한 노인들 대상이었고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따로 도움을 받아야 했다.      


#1


몇 주 전엔가 오랜만에 식당엘 갔는데 우리 옆 테이블에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별로 신경 쓰일 일이 없었는데 그분이 일어나려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식탁을 한 손으로 짚고 또 다른 손으로는 빈 밥공기를 들었는데 손이 심하게 떨려서 한눈에도 환자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할머니 쪽으로 돌아서서 빈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릇 속에는 누룽지 밥알이 약간 남아 있었다. 


“할머니 제가 뭘 갖다 드릴까요?”

할머니는 너무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힘없이 짧게 얘기했다.


“누룽지, 국물만 좀 가져다 줄래요? 영 입맛이 없네.”

그릇을 받아 들고 할머니의 식판을 내려다보니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제가 누룽지 갖다 드릴게요. 그런데 식사를 하셔야지. 하나도 안 드셨네요.”


나의 걱정에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입맛이 없어 영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 맛있게 먹었는데 이상하다고 하면서. 


할머니의 그릇에 누룽지 국물만 넉넉하게 담아서 갖다 드렸더니 그저 국물만 후후 불어서 조금 드시고는 일어서려고 했다. 걸음도 편치가 않아서 옆에는 워커가 놓여 있었다. 


“제가 나머지는 치워드릴게요. 그냥 가세요.”

“직원이 와서 치워도 되는데... 아유 미안해요. 고마워요.”

할머니는 성긴 걸음으로 쭈뼛거리며 천천히 워커를 밀고 식당을 나갔다.  

    

식사를 다 끝내고 싹 비워진 나의 식판과 하나도 건드리지 않아 그대로인 할머니의 식판을 들고 퇴식구로 향하는데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나라는 인간은 잘도 먹는구나, 아직은.


그러다가 언제 나도 모든 음식을 거의 남기게 될까를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2


 또 어느 날인가는 저녁 식사 시간이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놀란 남편이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살펴보니 할아버지는 식사를 마치고 곤하게 코를 골고 계셨다. 식사한 식판을 처리할 사이도 없이 식곤증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잠들어 버린 것이다. 아마도 집에까지 걸어가서 주무시기엔 너무나 졸렸던 것이리라.

남편의 기척에 할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식판을 들고 퇴식구로 향했다.   

   

#3


대개 식당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편안하다. 

혼자인 분들이나 부부나 모두 아주 편안하게 식사를 한다. 

특별히 혼자 드신다고 해서 외로워 보이지 않는 곳이 이곳 식당이다. 

혼자인 분이 많고 혼자인 것이 너무 아무렇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버아파트에서 식당은 노인들의 실제적인 필요가 채워지는 위로의 공간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 가치를 식당 운영자들이 같은 마음으로 알아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하여튼 아직까지 나는 식당에 가는 일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아까의 할머니처럼 나의 미래 모습을 당겨서 보고 싶진 않아서이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