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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인듯 Aug 11. 2022

어쩌다 실버의 세계로

 문제는 돈이었다. 

 

 은퇴를 하고 나서 우리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꿈꾸던 전원생활을 할 작정으로 전원주택을 찾아다녔다. 30년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드디어 땅에서 발을 딛고 인간답게 살리라는 기대는 경기도 일대의 전원주택을 다 섭렵하게 했다. 매일 아침 새로운 주택을 보러 다니던 발걸음은 꿈같았다. 그런데 너무나 열심히 따지고 고르다가 이사 기일이 임박해 별로 따지지도 않고 갑작스럽게 어떤 주택을 계약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그 주택의 가격이 상당히 싸서 우리가 가진 돈과 맞아떨어졌는데, 문제가 있었다. 

 결국 우린 6개월 만에 주택을 떠나게 되었고 가까이 있는 신축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 사는 신세가 되었다. 

 결혼 후 10년은 전월세로 살았지만 이후 30년은 내 집이었기 때문에 전세를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누구도 왜 그 나이에 아직도 전세야?라고 묻지 않았으나 매일 추궁당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전원주택을 찾던 솜씨로 네** 부동산을 이 잡듯이 뒤졌다. 이번엔 아파트였다. 전에는 암묵적으로 전원주택을 싫어하던 남편이 이제는 공개적으로 싫어하는 바람에 더 이상 고집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깡 시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열렬히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구한 곳이 이곳 실버아파트였다.

  원해서 실버아파트를 택한 것이 아니라 돈에 맞추다 보니까 이곳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30년 살던 분당의 아파트를 팔 때는 적정한 가격이라고 생각했으나 2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전 국민이 다 아는 아파트 폭등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아파트는 많았으나 가진 돈은 적었다. 할 수없이 경기도 남부 일대를 지도로 훑고 있는데 이 아파트 단지가 눈에 띈 것이다. 

 어쨌든 나는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새 아파트라는 데 집중한 나머지 실버고 무엇이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입주자격에는 오로지 나이 제한만 있었는데 내가 60세를 넘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 문제는 정작 내가 실버라는 인식이 없는 데 있었다. 

  아직 밖에서는 할머니로 불린 적이 없었고 실제로 손주도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동안이라 50대라고 해도 믿겠다는, 진정 믿고 싶은 말도 있었다. 

  여전히 젊은 여자애들이 드나드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이며 신발을 샀고 당연히 나의 옷차림은 나이나 스타일과 상관없이 젊었다. 가끔 남편이 한 마디씩 하긴 했다.     

  “어떻게 그걸 입고 나가나? 이 사람아. 당신 나이를 생각해야지.”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나의 스타일대로 살아갔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늙은 당신이나 잘하세요.’

  남편과는 불과 4살의 차이였지만 남편은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국가공인 노인이었다. 


  그런데 이 실버아파트에 들어선 순간 난 할머니가 되었고 직원들의 ‘어르신’이 되었다. 

 직원들은 입주민들을 무조건 아버님, 어머님, 어르신으로 불렀다. 워낙 직원의 수가 많다 보니 하루에 서너 번 그런 얘길 들을 때도 있었다. 

  ‘내가 왜 네 엄마니?’

  그러고 싶지만 어디 그럴 일인가. 내가 아무리 젊었다 한들 이곳에 들어와 있는데.     

 

 일종의 문화 충격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단지 어딜 가도 은발의 노인들뿐이었다. 대부분이 건강한 상태였지만 휠체어나 워커에 의지해서 걷는 분도 꽤 되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의 몸이 불편하면 건강한 배우자가 손을 꼭 잡고 보행을 도와주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일반적인 경우, 예를 들면 공원이나 길에서 그런 부부를 보면 노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여기선 달랐다. 내 눈이 못돼먹었거나 생각이 비뚤어진 결과일 테지만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불편함이 마치 나의 것처럼 불편했다.      


 ‘아, 난 무슨 짓을 한 것이야? 도대체?’

 그때 느꼈다. 실버아파트를 그냥, 마구, 준비 없이, 돈에 맞춰서 생각 없이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는 걸.

 일반 아파트와 별 차이 없이 도리어 더 세심하게 지어졌고, 어차피 아파트 생활이란 게 내 공간에서의 개인적인 삶인데 뭐가 문제일까 라는 것은 실버아파트에 대한 나의 몰지각이며 실례였다. 


 실버아파트는 다른 세계였다. 

 실버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은 그냥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 이상의 무엇인가에 대한 예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난 아무런 준비도 생각도 없이 덜컥 실버의 세계로 들어와 버렸다. 

 그렇게 좌충우돌, 고군분투의 삶은 시작되었다. 매우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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