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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망 Sep 02. 2021

엄마의 아픈 곳이 자꾸 늘어나고

모든 게 어렵겠지만 다시 배우면 돼, 같이 하자

하루하루 맛난 음식을 먹는 것이 낙이던 엄마에게 당뇨가 찾아왔다. 아직 인슐린 주사를 맞을 정도는 아니지만 약을 먹으며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췌장에 알 수 없는 혹이 났다. 암은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추적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떼 버리면 속 편하겠지만, 췌장의 벽이 너무 얇아서 함부로 제거할 수가 없단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잔병치레가 많았던 부모님이기에 불안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큼은 정말 덜컥 겁이 났다.


어느 병원이든 검사하면 바로 결과가 나오고 약을 받는 줄 알았는데, 검사 후 일주일이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병원에 찾아가도 의사 선생님은 무엇도 단언하지 않았다.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다음 예약일을 잡는 일이 두 달간 계속됐다. 그즈음에야 우리는 우리가 겪는 일이 단기간에 끝나는 일이 아니며, 앞으로 쭉 조심하고 걱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는 그런 엄마의 생일이었다. 가족의 생일에는 언제나 케이크를 들고 퇴근했었는데, 어젠 자주 가던 빵집에 들르지 않고 카페에서 설탕과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케이크를 주문했다. 초를 꽂은 케이크를 보며 이제는 생일 케이크도 못 먹는구나- 하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설탕과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케이크의 식감은 다소 생소했지만 엄마는 단 맛이 난다며 조금 웃었다.


엄마가 소원을 빌기 전에 더 아프지 말라고 얼른 빌었다. 언제나 이런 모양으로 티격태격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래를 그릴 때면 너무도 당연하게도 나이 지긋한 엄마 아빠를 떠올리곤 했는데. 우리 앞에 놓인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음을 새삼스레 느낀다.


그래도 엄마는 꽤나 씩씩하게 적응하고자 애쓰고 있다. 건강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하루에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한다. 일찍 자고 규칙적으로 식사하며 더욱 건강한 생활 습관이 몸에 배도록 노력한다. 노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은 얼마쯤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에게 음식은 이제 숫자가 되었고 성분이 되었다.


좋아하는 것, 몸에 잘 받는 것. 그런 걸 너무 잘 알 나이에, 자신만의 생활습관이 고착화된 나이에 겪어야 하는 변화는 꽤나 막막할 것이다. 삶에는 다음 순간이 있기에 산다는 말에는 언제나 변화가 내포되어 있고, 우리는 그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이렇게 두려운 나날을 버티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나도 기꺼이 그녀의 변화에 맞춰 변한다.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어떤 음식을 사기 전에 당과 탄수화물 수치를 생각하고, 좀 더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음식을 찾는 나를 발견한다. 어린 시절 당근과 시금치를 먹는 법을 배우던 그때처럼- 초보의 마음으로 다시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될 거라고 이 밤을 위로한다. 우리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 방법, 그건 아무리 배워도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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