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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Jun 05. 2022

꿈꾸는 사람

간밤에 꿈을 꾸었다.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아니, 수많은 꿈을 꾸겠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야 옳다. 여태껏 내가 꾼 꿈들은 주로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사나운 개에 물리는 꿈, 귀신이 쫓아와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데도 소리가  밖으로 전혀 나오지 않는 꿈들이었다. 이른바 개꿈인 것이다.


가장 기억이 또렷한 꿈은 이러하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부산 이모집에 놀러 갔었다. 나는 이모와 이모의 외손자 사이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나는 새벽에 이모의 비명소리에 놀라서 잠을 깼다. 이모는 오른쪽 옆구리를 부여잡고 몹시 고통스러워하셨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슨 큰 병이라도 앓고 계셨던 걸까?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하품을 해대며 이모를 가엾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잠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모는 오른쪽 옆구리에 오른 손바닥을 올려놓고 시계방향으로 문지르시며 가끔씩 통증을 호소하셨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이모 옆구리에 통증을 심어준 이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가도 또다시 긴가 민가 하다가 마침내 또렷하게 내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간밤에 나는 꿈을 꾼 것이다. 낮에 나에게 짖어댔던 진돗개가 맹렬하게 나를 따라왔다. 나는 도망가야 했다, 자칫하면 내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직감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하지만 두 발이 땅에 달라붙어버렸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두 발은 꼼짝하지 않았다. 진돗개가 내 발치까지 와서 으르렁댔다. (생각해 보니 진돗개의 명예를 심하게 훼손할 염려가 있어 여기서부터는 늑대로 정정하는 바이다.) 그러다가 진돗개는 아니 늑대는 갑자기 분신술을 부린 것처럼 수십 마리로 늘어나버렸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공포를 통절하게 느꼈다. 나는 그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서 두 발을 땅에서 떼야했다. (사실 젖 먹던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나도 젖을 먹었겠지 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나는 어머니께 내가 젖을 먹고 자랐는지에 대해 한 번도 물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굳이 내가 묻지 않았는데도 어머니께서 '너는 젖을 먹고 자라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한 나는 젖을 먹고 자랐다고 믿고 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땅에 달라붙은 발을 떼고 사나운 늑대들로부터 달아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늑대들이 내 발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는 온 힘을 실어 늑대를 발로 차서 내 발에서 떼어내려 했다. 나는 소리까지 지르며 용감하게 늑대와 전투를 치렀던 것이다. 아마도 그때 이모의 비명소리 때문에 나는 잠에서 깼던 것 같다. 내가 발로 찼던 것은 늑대가 아니라 이모의 옆구리였던 것이다.  


나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했다. 이모가 옆구리에 손을 올리고 문지르는 모습을 보고 나는 도저히 밥 숟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밥맛도 달아나버렸다. 그 이후로 이모를 볼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이모가 그때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나에게 기억나냐고 물으셨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척했지만 마치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죄송스러웠다. 그 꿈은 내가 꾼 꿈 중에서 가장 슬픈 꿈이다. 돌아가신 이모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꿈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또 꿈을 꿨다.  꿈 역시 슬픔의 범주에 속하는 꿈이었다. 꿈은 대충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땀을 흘리며 산 정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앉아 있었다. 그때 하늘에는 독특한 문양의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 비행기에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그리고 저 비행기에는 기쁨이나 슬픔 같은 것이 실려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비행기에 실려 있는 슬픔은 어쩌면 나에게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생각을 키우지 않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날 밤에 잠을 자는 데 누군가 나를 깨웠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보니 처음  보는 백인 남자가 내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전혀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묻는 것이다. '넌 누구냐?' 그러자 그 남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하지만 나는 자세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할 참이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그 남자가 나에게 함께 갈 데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치 경호원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게 아니라 레스토랑 웨이터 복장이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딱히 그 의견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경호원에게도, 웨이터에게도 잘 어울리는 복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남자는 나를 데리고 나리타공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낮에 산 정상에서 봤던 독특한 문양의 비행기가 있었다. 비행기 아래에는 수십 명의 남자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때 앞쪽에서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팻말 뒤에 줄지어 서라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일사불란하게 각자 이름이 적혀 있는 팻말 뒤쪽으로 줄을 섰다. 나도 그렇게 내 이름이 적혀 있는 팻말 뒤에 다른 남자들과 같이 줄을 섰다. 내가 서 있는 줄에는 다섯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우리는 그때까지 영문을 모른 채 줄을 서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책임자의 설명은 이러했다. 미국 영주권자인 S가 얼마 전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S는 무척 돈이 많은 독신 여성이었고 사망 원인은 뇌출혈이었다. 그런데 죽은 S를 애도해야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S가 죽은 것과 이 남자들과 무슨 관계가 있던 것일까? 그러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S와 어떻게든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말은 친분의 정도에 따라 사람들을 분류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말 뒤에는 S와 손을 잡은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 팻말 뒤에는 S와 입맞춤을 한 사람들이었다. 세 번째 말에서 다섯 번째 팻말도 스킨십의 정도에 따라 나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속한 여섯 번째 말 뒤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인가? 바로 S를 차 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나와 S는 고등학교 때 같은 교회에 다녔다. 우린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S는 나에게 사귀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던 것이다. 그래도 S가 포기하지 못하자 나는 냉정하게 S를 대해야 했다. 그리고 S는 얼마 있지 않아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그 뒤로는 S에 대한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오늘 S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과거의 기억을 더듬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옆 줄에 있는 사람들은 S가 차 버린 사람들이었다. 이럴 때는 내가 차라리 S에게 차였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년 전에 사랑을 거절했다는 것이 이제 와서 죄책감을 동반한 채 내게 되돌아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러니까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그룹은 S와 서로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순간 그들은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졌다. 한 때 사랑한다고 말하며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잠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은 S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졌다. 아마 그들도 S와 함께 한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S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감정일지 알 수는 없다. 한 때 친하게 지낸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듣는 것과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듣는 것은 완전히 다른 장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도 그들의 표정에는 녹진한 슬픔이 배어있다. 아마도 그 녹진한 슬픔은 머지않아 농밀한 눈물이 되어 흘러내릴 것 같다. 그렇다면 왜 굳이 사람들을 구분 지었던 것일까? 그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모종의 배려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저 경호원 복장을 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를 비롯한 사람들을 찾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S가 죽을 것을 대비해서 미리 써 놓은 자서전에 과거 기억 속의 남자들의 이름과 신상에 대해 적어놓았던 것일까?, 아니면 S가 죽자마자 이미 설계된 프로그램에 의해 S의 뇌 속에 있는 기억의 방에서 표류하던 이름과 신상에 대한 정보들이 저들에게 전송되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저들은 죽은 영혼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자(使者)일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누구에게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S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전속력으로 활주로를 달렸다. 그리고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을 앞두고 마침내 비행기 바퀴가 땅에서 떨어졌다. 거기에서 나의 꿈은 멈췄다. 내가 맞춰놓은 알람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내가 꾼 꿈 중에서 두 번째로 또렷하게 생각나는 꿈이다.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꾼 수많은 꿈의 조각들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서 과거의 기억이라는 명목으로 표류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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