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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Jun 12. 2022

거인

10년 넘게 위층에 살던 60대 부부가 이사 갔다.

그리고 한 달간의 공백을 거쳐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 들어왔다.

연년생 두 딸이 있는 30대 후반의 부부라고 한다.

며칠이 지나도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 달이 다 되도록 너무 조용해서 여전히 빈집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며칠 후 그동안의 고요는 깔끔하게 잊히고 말았다.

아침 7시부터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믿어지지 않을 대반전의 서막이 올랐다.

쿵쿵, 쿵쿵쿵……

어떻게 해야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지 의아할 정도로 공포를 느낄만한 소음이었다.

결국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거인이라는 단어.

그 집에는 30대 부부와 연년생 딸아이가 아니라 거인이 이사 온 게 틀림없다.

거인의 거침없는 발걸음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소음이었다.

그렇다고 거인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몸이 거대한 거인의 발걸음치고는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인은 움직임이 굼뜬 자신의 콤플렉스를 이겨내고 드디어 민첩하게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거인은 식사 때를 제외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급기야 누군가 녹음된 거인의 발걸음 소리를 하루 종일 틀어놓은 걸 거란 생각도 들었다.

전혀 지칠 줄 모르는 걸로 봐서 거인은 오랫동안 장어와 홍삼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격을 멈추지 않는 거인의 활력이 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도저히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거인의 키는 2미터쯤 될 것이고 몸무게는 적어도 180킬로그램은 됨직하다.

두렵지만 거인을 대면해서 결전을 치러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아령을 들어 올렸더니 팔근육에 힘줄이 제법 선명하게 드러났다.

일단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위층으로 올라가 거칠게 초인종을 눌렀다.

첫 대면에서는 기세가 중요하다는 말이 떠올라 인상을 최대한 험악하게 쓰고 조금은 삐딱한 자세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누구냐고 묻길래 아래층에서 왔다고 다소 낮은 톤으로 대답했다.

나는 2미터쯤 되는 거인을 올려다볼 생각으로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러나 내가 거인의 부리부리한 눈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 곳에는 눈은 고사하고 거인의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참 아래에 마치 나를 거인 보듯이 올려다보고 있는 꼬마 요정 둘이 서 있을 뿐이었다.

참으로 튼튼한 발목을 가진 3살과 4살 된 요정들이었다.

나는 짝다리를 풀고 무릎을 굽혀 요정들의 이름을 묻고 잘 지내보자고 말한 다음 그대로 내려왔다.

그 뒤로도 여전히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거인의 실체를 알고 있어서인지 그렇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에 아래층 사는 거인은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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