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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 Oct 01. 2024

제8화 거북이 펜션은 휴업 중

 버스 정류장에 내린 선영은 저만치 보이는 언덕 위로 평화롭게 자리 잡은 거북이 펜션을 바라보았다. 펜션 위 하늘에는 솜사탕 모양의 커다란 뭉게구름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정류장에서 바라보는 펜션을 둘러싼 풍경이 아주 근사했다. 선영은 양팔을 활짝 벌리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상쾌했다.

 “아, 좋다.”

 선영은 학창 시절 방학 때 시골 조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친구들을 종종 부러워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선영은 시골에 갈 일이 없었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을 때 선영의 조부모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고모와 살면서 가끔 경치가 좋은 수도원으로 피정 가는 고모를 몇 번 따라간 적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 머무는 내내 침묵해야 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흔히 말하는 시골의 훈훈한 추억 같은 건 생길 여지가 없었다. 5년 전 고모가 구례로 내려갈 거라고 했을 때는 고모와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몹시 서운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와서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심리적 고향이 새로 생긴 느낌이었다. 게다가 부모나 다름없는 고모가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게 되었으니 더욱 고마울 따름이었다. 

 선영은 자신을 보고 반가워할 고모 미자를 생각하며 힘차게 캐리어를 끌고 거북이 펜션을 향해 걸었다. 펜션이 가까워질수록 선영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정문 한쪽 ‘거북이 펜션’이라고 쓰인 작은 간판이 선영을 반겼다. 정문에 설치된 인터폰을 누르면 미자가 안에서 문을 열었다. 선영은 반가운 미자 목소리를 기대하며 인터폰을 눌렀다. 

 뚜-뚜-. 

 대답이 없었다. 다시 인터폰을 눌러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 보니 낮에 정문이 닫혀있는 것도 이상했다. 정문은 관리인 할아버지가 아침 일찍 열었다가 저녁 늦게 닫았다. 문득 요즘에 펜션 영업을 안 하는 것 같다던 재하의 말이 떠올랐다. 

 “어떻게 된 거지?”

 휴대전화를 꺼내 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계속되는 동안 선영은 정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선영의 눈에도 영업 중인 펜션으로 보이지 않고 그지없이 썰렁했다. 계속되는 신호음 뒤에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간다는 안내음이 나왔다. 선영은 미자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선영은 오른쪽 펜스를 따라 펜션 부지 뒤쪽에 있는 후문으로 갔다. 후문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펜션 관리인 노부부의 집이 있었다. 선영은 노부부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계세요? 저 거북이 펜션 조카예요.”

 안에서 문소리가 들렸다. 

 “누구요?”

 할머니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 거북이 펜션 조카딸이에요.”

 선영이 문틈으로 할머니를 보고 말했다.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나왔다.

 “아이고, 어서 와.” 

 할머니는 반색하며 선영의 손을 잡았다.

 “안녕하셨어요, 할머니?”

 “나야 잘 지내지. 평일에 온 걸 보니 고모가 걱정돼서 왔구먼.”

 “네? 고모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고모가 전화를 통 안 받아서요.”

 “아이고 저런, 고모가 입원한 거 모르고 왔나 보네.”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다.

 “네? 고모가 입원을요? 무슨 일로요?”
 일순 선영은 눈앞이 어질했다. 
 관리인 할머니에 따르면 미자는 3월 초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대퇴부가 골절되어 수술받았고 지금은 요양병원으로 옮겨 회복 중이었다. 선영은 3월에도 미자와 자주 통화했지만, 미자는 자신이 병원에 입원했다거나 수술받아야 한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골절로 심한 통증을 겪어야 했을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미자가 그랬던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출판사 일로 바쁜 선영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혈육이라고는 미자와 선영 단둘뿐인데 어떻게 병원에 입원한 것도 알리지 않을 수 있는지 선영은 무척 서운했다. 그러면서도 혼자서 입원하고 수술받았을 미자를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선영은 펜션 후문으로 들어가 미자가 생활하는 별관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 비밀번호는 서울에서 쓰던 번호 그대로였다. 그곳에는 선영의 방도 있었다. 선영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거실에 캐리어를 밀어 넣고 곧장 나왔다. 

 고모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은 구례 고속버스 터미널 부근에 있었다. 시간은 걸려도 마을버스를 타면 한 번에 병원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선영은 마음이 급해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선영은 펜션을 둘러봤다. 숙직실이었던 곳은 어느새 공사가 끝나있었다. 아마도 설 연휴 후 곧장 공사를 시작한 것 같았다. 본관은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었다. 정원이나 운동장도 한 달 넘게 영업 안 하고 있다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관리인 노부부가 펜션을 잘 돌보는 덕분이었다. 펜션 부지를 한 바퀴 둘러본 선영은 정문 앞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선영이 탄 택시가 요양병원 입구를 지나 양쪽으로 소나무가 즐비한 길을 따라 미끄러졌다. 곧이어 택시는 병원 건물 앞에서 멈췄다. 택시에서 내린 선영은 1층 로비 안쪽에 있는 원무과로 향했다. 미자가 있는 병실은 2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린 선영은 벽에 붙은 병실 번호를 보면서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잠시 후 병실 문에 부착된 아크릴판에서 ‘강미자’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55세’라고 쓰여있었다. 그 순간 선영은 ‘그래, 고모 나이가 쉰다섯이었지.’ 했다. 그 아래로 다섯 명의 이름이 더 있었다. 모두 7, 80대였다. 

 선영은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고 미자를 찾았다. 침대 등받이를 세우고 앉아 있던 몇몇 환자들이 선영을 바라봤다. 선영은 그들을 향해 살짝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하나같이 누구를 찾아온 건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오른쪽 첫 번째 침대 발치에 미자 이름이 보였다. 하지만 침대는 비어있었다. 

 “혹시 이 병상 환자 어디에 갔는지 아세요?”

 선영은 맞은편 병상에서 선영을 지켜보고 있던 환자에게 물었다. 그녀는 허리에 보호대를 두르고 있었다. 

 “거기 동생은 걷기 운동하러 나갔어. 아마 보호사랑 건물 뒤쪽에서 왔다갔다하고 있을 거야.”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선영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근데, 그 동생이랑은 어떻게 되는고?”

 “아, 제가 조카예요.”

 “조카딸이네.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지.” 

 “아, 네.”

 일순 선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간 같이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알아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그러자 너무 미안한 나머지 미자가 말해주지 않아서 자신은 알 수가 없었노라고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 싶은 마음도 꿈틀거렸다. 


 병실을 나온 선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건물 뒤쪽으로 통하는 문으로 나갔다. 잘 가꾸어진 정원 사잇길로 휠체어를 탄 대여섯 명의 환자들이 보였다. 각각 환자의 휠체어를 미는 사람들은 간호사 복장이었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기 전에는 누가 미자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영은 먼저 가까운 곳에 있는 환자부터 확인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탄 환자 중에 미자는 없었다. ‘여기에 있을 거라고 했는데, 이상하다.’ 생각하고 돌아서 나오던 선영은 건물 옆 평평한 공간에서 양손으로 허리 높이의 보행기를 붙잡고 천천히 걷고 있는 환자 한 명을 발견했다. 그 옆에는 평상복 차림의 할머니가 같이 걷고 있었다. 선영은 한눈에 그 환자가 미자라는 걸 알았다. 눈물이 핑 돌더니 순간적으로 눈앞이 흐려졌다. 

 “고모!”

 선영은 그쪽으로 다가가며 미자를 불렀다. 그 소리에 두 사람 모두 선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역시 보행기를 붙잡고 있던 환자는 미자였다. 미자는 놀란 눈으로 선영을 바라봤다.

 “선영아! 여긴 어떻게 알았어?”

 미자는 선영이 걱정할까 봐 일부러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선영에게 알라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병원까지 찾아온 선영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럼, 제가 모를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한테는 알렸어야죠.”

 선영은 환자복 차림의 미자를 보고는 속상해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미안해요, 고모. 제가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미안하기는, 이제는 걸을 수도 있어서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수술받았다고 하던데, 수술은 잘 된 거예요?”

 선영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래. 수술 끝나고 집으로 갈까, 했는데, 회복할 때까지는 아무래도 집보다는 요양병원이 나을 것 같아서 이리로 왔을 뿐이야. 보다시피 이제는 천천히 걸을 수도 있으니까 곧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근데 서울에서 언제 온 거니?”

 미자는 보행기를 조금씩 옮겨가며 가까운 곳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미자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중했다. 

 “아, 참, 인사드려라, 선영아. 나 걷기 연습할 때 도와주시는 요양보호사님이셔.”

 미자가 옆에 서 있는 요양보호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고모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영이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 그래도 고모가 자주 이야기해서 한번 보고 싶었어요. 반가워요. 호호호. 그럼 나는 먼저 들어갈 테니까 둘이 천천히 이야기하고 올라와요.”

 보호사는 둘을 남겨두고 병실로 돌아갔다.

 “근데 어쩌다 다친 거예요?”
  선영이 미자 옆에 앉으며 물었다.

 “어, 숙직실이었던 별관 공사하는 거 보면서 뒷걸음질 치다가 뒤로 넘어진 거야.”

 “큰일 날 뻔했네요.”

 “그러게 말이다. 그렇다고 살짝 넘어졌을 뿐인데 뼈가 골절이 될 게 뭐니.”

 “이제 더 조심해야겠어요.”

 “그래서 여기로 온 거야. 집에 있으면 내 성격상 가만히 못 있을 게 뻔하니까.”

 미자의 말을 듣고 선영이 웃었다. 

 “잘하신 거예요.”

 “그런데 출판사는 어쩌고 평일에 내려온 거야?”

 “아, 여유가 좀 생겨서 쉬러 온 거예요. 내려오기 전에 고모한테 여러 번 전화했는데 통 전화가 안 되더라고요.”

 “그랬구나. 며칠 전에 휴대전화를 한번 떨어뜨렸는데 그 뒤로는 안 켜지지 뭐냐. 요양보호사님한테 부탁해서 수리 맡겼는데 며칠 더 있어야 한다더구나.”

 “휴대전화가 오래돼서 그래요. 이번에 새 걸로 바꿔야겠어요.”

 “나중에 휴대전화 수리되는 거 봐서 그러든지 하자꾸나.” 


 미자가 입원한 요양병원은 보호자가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선영은 미자가 저녁 식사를 마친 것까지 보고 여섯 시경에 병원을 나왔다. 미자는 집에 먹을만한 반찬이 없을 거라며 마트에 들러 먹을 것 좀 사 가라고 했다. 선영은 미자가 알려준 대로 마을버스를 타고 마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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