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간 곳에서 봤던 미자 모습은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에게 듣기로는 미자가 입고 있는 옷은 수녀복이었고, 선영이 엄마와 간 곳은 봉쇄수도원이었다. 그때 선영도 엄마를 따라 성당에 다녔기 때문에 수녀가 뭐 하는 사람인지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봉쇄수도원이 뭐 하는 곳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선영은 집에 오는 길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봉쇄수도원이 뭐 하는 데예요?”
“어, 한번 들어가면 죽기 전에는 못 나오는 수도원이야.”
선영의 손을 잡고 가던 엄마가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성당에 계시는 수녀님들은 안 그러던데.”
선영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물론이지, 성당은 봉쇄수도원이 아니거든. 그런데 고모가 있는 곳은 출입이 엄격해서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단다.”
“그 안에만 있으려면 답답하지 않을까요?”
“선영이는 고모가 답답할 것 같니?”
엄마가 심각한 표정을 짓는 선영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더니 “사람 마음속에는 우주만큼 크고 넓은 세계가 있어. 수도원에 계시는 수녀님들은 자기 안에 있는 그 세계를 탐험하는 거고. 그러니까 답답할 리가 없겠지.”
선영은 잘 이해가 안 가 엄마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선영을 보고 엄마는 선영의 손을 톡톡 두드리면서 “내년에 고모 면회 가면 그곳 생활이 어떤지 선영이가 직접 물어볼래?” 하고 말했다.
하지만 선영은 다음 해에 미자가 있는 봉쇄수도원을 방문하지 못했다. 그건 미자가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그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미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선영은 턱을 떨어뜨리고 멍하니 미자를 바라봤다. 한 번 들어가면 죽기 전에는 나올 수가 없다던 엄마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눈앞에 서 있는 미자가 죽어서 귀신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평생 그곳에서 살 줄 알았던 미자가 그곳을 나온 그 자체가 놀라워서였다.
미자는 다음날 일찍 집을 나갔다가 며칠 만에 집에 돌아왔다. 선영이 엄마에게 미자가 어디에 갔다 오는 거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고모는 병원에서 아픈 사람을 돌보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일종의 봉사활동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미자는 누군가를 보살피느라 병원에 다녔다. 그러다가 1년 가까이 되던 어느 날부터 미자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방에 들어가 무릎 꿇고 앉아 밤낮으로 기도했다. 선영은 나중에 미자가 병간호했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미자는 죽은 사람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했던 것이다. 엄마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사랑을 실천하는 한 방법이라고 했다. 선영은 아무런 대가 없이 오랫동안 누군가를 간호하다가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그를 위해 몇 날 며칠 무릎 꿇고 기도하는 미자가 대단해 보였다.
시간이 흐른 뒤 그때 미자가 병간호한 사람은 미자를 사랑하던 남자였고, 미자는 그 남자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혈혈단신인 그를 간호하기 위해 봉쇄수도원을 나왔다는 걸 알았다.
언젠가 선영은 미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고모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수도원에 들어간 거예요?”
그때 미자는 쿠키를 굽기 위해 반죽을 하고 있었다. 선영의 물음에도 반죽을 치대는 미자의 손은 멈추질 않았다. ‘고모에게는 곤란한 질문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선영은 속으로 실수했구나, 했다. 바로 그때 미자가 반죽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글쎄. 난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었단다. 그러고는 대학 4학년 때까지 그걸 잊고 살았지. 그런데 졸업을 얼마 앞두고 다시 수도원에 들어가야겠다는 열망이 들끓기 시작하더구나. 그때는 고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더욱 강렬했지. 결국 나는 수녀가 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믿었단다.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나 나를 좋아한다고 하더구나. 사실 그 남자가 갑자기 나타난 건 아니고 친하게 지내던 대학 선배였어. 물론 나는 수녀가 될 생각이었으니까 그 선배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 서로 갈 길이 다르다고 믿고 나는 생각했던 대로 수도원에 들어갈 준비를 하나하나 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 선배가 등산 갔다가 다쳐서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구나. 다행히 그 선배는 타박상만 입었고 며칠 있다 퇴원했다고 하길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얼마 후 봉쇄수도원에 들어갔지. 그 뒤로는 수련하느라 그 선배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단다. 그런데 내가 수도원에 들어간 지 1년 가까이 되던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지. 친구가 보낸 편지였는데, 그 선배 소식도 들어있더구나. 뇌종양 때문에 투병 중이라고. 등산 갔다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 뇌에 종양이 있다는 걸 알았던 거지. 문득 보육원 출신인 그 선배를 누가 돌봐줄지 궁금해지더구나. 그래서 친구에게 편지를 썼는데 역시나 병간호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았지. 그때부터 마음이 진정이 안 되더구나. 증세가 심각해서 얼마 못 살 거라는데 혼자서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 기도하면 눈물만 나고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하느님에게 묻고 또 물었단다. 그러다 하느님이 나에게 뭘 원하시는지 알겠더구나. 사랑의 하느님이 원하시는 건 내가 그 선배를 돌보는 거였지.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모른 척하고 그대로 수녀가 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거니까. 수도원에는 나중에 다시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수도원을 나온 거란다.”
미자는 손에 붙은 반죽을 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결국 수도원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아. 오히려 그런 삶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지.”
미자가 수도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은 죽은 그 남자 때문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영의 부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미자가 수도원에 들어가면 초등학교 5학년인 선영은 보육원에 가야 했다. 미자는 어린 조카를 보육원에 보내고 수도원에 들어가 편히 지내질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미자는 수녀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고 선영과 함께 사는 걸 선택했다. 수도원에서 빵과 쿠키를 담당했던 미자는 제과제빵 학원에 다니며 자격증을 땄고 몇 년 후에는 ‘안나 베이커리’라는 이름으로 작은 가게를 열었다.
선영은 만약 미자가 수도원에 들어가는 걸 선택했다면 어땠을지,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자신이 보육원에 가서도 혼자 잘 지낼 수 있었을지 이따금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정신이 아찔했다. 미자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했을 터였다. 선영은 자신을 위해 희생한 고모가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언젠가 선영이 미자에게 자신을 돌봐줘서 고맙다고 했을 때 미자는 “너랑 같이 살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다 하느님이 베풀어 주신 은총이란다.” 하고 십자성호를 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선영도 성호를 그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