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굿즈 도착이요.”
준석이 꽤 큰 상자 하나를 힘겹게 들고 휴게실로 들어왔다. 그 뒤로 재하도 라면상자 크기의 상자 하나를 들고 들어와 식탁에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작업이 빨리 끝났네요, 적어도 보름은 걸릴 거로 생각했는데.”
계산대에 있던 선영이 두 사람을 보고 식탁으로 다가왔다. 주방에서 빵을 굽던 미자도 굿즈를 보기 위해 식탁으로 왔다.
“그러게요. 그쪽 사장님이 보름은 족히 걸릴 거라고 했는데 10일 만에 나왔네요.”
슬기가 식탁에 앉아서 준석이 상자를 여는 걸 지켜보며 말했다.
“준석이랑 마트에 갔다가 굿즈 샘플을 좀 볼까 하고 업체에 들렀더니 사장님이 작업이 일찍 끝나서 오후에 가져갈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다들 궁금해할 것 같아서 먼저 에코백하고 책갈피 한 상자씩 제 차에 싣고 왔어요.”
재하가 자신이 들고 온 상자에서 유리 테이프를 뜯어내며 말했다.
“이건 도장 찍는 쿠폰이에요.”
준석이 상자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곧장 슬기가 상자를 열고 쿠폰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한 면은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쿠폰이고, 다른 면은 명함이었다.
“역시 언니 말대로 하길 잘했네요. 쿠폰 겸 명함으로 쓸 수 있어서 손님들에게 홍보용으로 나눠주기 좋겠어요.”
“괜찮네. 거북이 그림도 잘 나왔고 도장 찍는 동그라미를 초록색으로 한 것도 좋은데. 역시 슬기가 미적 감각이 대단해.”
선영이 슬기를 칭찬하자, 다른 사람들도 맞는 말이라며 슬기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슬기는 좋아서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뒤이어 준석이 꺼낸 거북이 도장를 보고 귀엽다며 모두가 만족해했다.
“책갈피도 잘 나왔어요. 이건 나무 책갈피고 이건 대나무 책갈피에요.”
재하가 책갈피를 한 묶음씩 꺼내서 식탁에 올렸다.
“칠을 해서 그런지 색상이 고급스럽네. 촉감도 좋고. 나도 하나 써야겠어.”
미자가 대나무 책갈피를 손으로 매만지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재하 씨 제안대로 나무와 대나무 두 종류로 하길 잘했네요. 고모 말씀처럼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도 좋고요.”
선영의 말에 재하가 배시시 웃었다.
그때 준석이 큰 상자 속에 있는 다른 상자를 열고 에코백을 꺼냈다.
“어머 베이지와 감청색 둘 다 맘에 들어요. 이만하면 크기도 적당하고요.”
슬기가 에코백을 양어깨에 메자, 그걸 본 식구들도 맘에 들어 했다.
잠시 후 서가 한가운데에 굿즈 판매대를 만들고 에코백과 책갈피를 진열해 놓았다. 도장 열 개를 모으면 굿즈를 선물로 준다는 안내문도 서가와 휴게실에 붙였다. 슬기는 소셜미디어에 굿즈와 쿠폰 사진과 함께 간략한 소개글을 올렸다.
시간이 갈수록 책을 사면서 굿즈도 사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계산할 때 손님들에게 거북이 도장이 찍힌 쿠폰을 건네면 하나같이 거북이가 너무 귀엽다고 좋아했다. 생각보다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 고무된 식구들은 각자 다른 굿즈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점차 책 판매량이 늘면서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택배 주문이 늘었다는 점이다. 펜션을 북스테이로 운영하기 위해 차린 책방에 직접 찾아와 책을 사 가는 손님들이 느는 건 어느 정도 기대한 일이었다. 하지만 택배 주문이 늘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사면 권당 10퍼센트 할인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거북이 책방에서 택배 주문으로 책을 사려면 책을 정가로 사야 할 뿐만 아니라 택배비까지 내야 했다. 선영은 그동안 출판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온라인 서점에 비해 매출 감소로 문을 닫는 동네 책방을 많이 봐왔던 터라 추가 비용을 내고 책을 사는 손님들이 특이하게 여겨지는 게 당연했다. 그러다가 택배비라도 줄여주고 싶어서 책 세 권 구매 시 택배비를 받지 않았다. 책방 수익은 줄겠지만, 수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택배비까지 감수하고라도 거북이 책방에서 책을 사려는 손님들의 고마운 마음이었다. 택배로 책을 주문하는 손님들 대부분은 북스테이를 다녀간 손님들이었다. 선영은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책을 택배로 주문한 손님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손님들과 통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손님들이 산 것은 책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것이다.
선영은 펜션 손님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펜션 식구들과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웹소설 작가 김달이 제안했던 미니콘서트를 해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미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준석과 슬기는 재미있을 것 같다고 흥미를 보였다. 재하는 이야기 손님을 초대해 이야기도 듣고 음악 연주도 들을 수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냈다. 거기에 선영은 펜션을 특징짓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였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더했다. 의논 끝에 ‘책과 이야기와 음악이 있는 콘서트’를 기획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 주 토요일 미자는 수도원에서 피정을 담당하는 김 데레사 수녀를 명상 수업에 초대했다. 미자도 해마다 수도원 피정에 참여하고 있는 터라 김 데레사 수녀와는 오랜 친분이 있었다. 토요일 오전에 도착한 그녀는 오후에 명상 수업을 진행하고 하루 쉬었다 다음 날 오후에 떠날 예정이었다. 명상 수업에는 명상 수업을 위해 펜션을 방문한 사람들과 북스테이 손님들과 재하까지 합쳐 스물세 명이 참석했다.
김 데레사 수녀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안에 홀로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블레즈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명상은 자기 안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신이 누구이고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는 성스러운 행위입니다. 또한 명상은 세상으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침묵 중에서 세상과 소통하려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고로 삶을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고 싶다면 매일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라는 말로 수업을 시작했다. 이어서 한 시간 정도 수도원 피정과 생각 비우기에 대해 설명한 후 실제로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 저녁 다 함께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던 중 선영은 문득 콘서트 이야기 손님으로 김 데레사 수녀를 초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바로 그때 재하가 콘서트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명상 수업을 듣고 생각한 건데, 콘서트 할 때 수녀님 같으신 분을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하면 좋겠어요.”
“어머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둘이 통했네요. 호호호.”
선영이 신기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이야기 손님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김 데레사 수녀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아, 펜션에서 한 번씩 손님들과 함께 작은 콘서트를 열 생각이에요, 수녀님. 책과 이야기와 음악을 콘셉트로 해서 이야기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손님들과 대화도 나누고 악기 연주도 감상하는 콘서트예요.”
선영이 설명했다.
“왠지 여기 거북이 펜션과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수녀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왠지 콘서트가 잘될 것 같은데요.”
선영은 김 데레사의 말에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그러면 혹시 수녀님이 콘서트 이야기 손님으로 오셔서 저희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미자가 조심스럽게 김 데레사 수녀에게 말을 꺼냈다. 수도원에서 피정을 담당하는 김 데레사 수녀가 바쁘다는 걸 미자는 알고 있었다.
“안 될 건 없는데, 저처럼 수도원에 있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할지 모르겠네요. 이야기를 들으러 수도원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되겠지만, 여기는 수도원 밖이라 조심스럽네요.”
“수녀님은 책도 여러 권 내셨으니까, 책에 관해서 말씀하셔도 좋겠고, 아니면 수도원 피정 이야기도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러시면 되겠네요. 30분 정도 이야기 들려주시고 이어서 손님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면 되거든요.”
선영이 미자의 말을 듣고 김 데레사 수녀에게 대략적인 콘서트 흐름에 대해 덧붙였다.
“정 그렇다면 하는 방향으로 생각해 봅시다.”
“아, 고맙습니다, 수녀님. 수녀님 덕분에 첫 콘서트를 생각보다 빨리 열 수 있겠어요.”
선영은 김 데레사 수녀가 고마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했다. 미자를 포함한 다른 식구들도 흔쾌히 승낙한 김 데레사 수녀에게 박수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데 제가 9월 중순부터 피정 때문에 당분간은 시간 내기가 힘들지 싶은데, 괜찮다면 다음 주에는 어때요? 아무래도 너무 빠르겠죠?”
“다음 주에요?”
선영은 잠시 생각하면서 식구들과 눈을 맞췄다.
“이야기 손님이 중요하지, 우리가 따로 준비할 건 없잖아요. 아 차, 사장님하고 준석이 기타 연주가 있었구나.”
재하는 말하던 중 기타 연주를 담당하는 두 사람 의견을 듣는 걸 깜빡했다는 걸 알았다.
“저는 두 곡 정도는 괜찮아요.”
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내가 아는 곡을 연주한다면야 다음 주에도 괜찮겠어.”
미자의 말이 끝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잇몸을 활짝 드러내고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