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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 Oct 01. 2024

제24화 웹소설 작가

 미자의 기타 연주가 끝나고 미자와 슬기와 준석은 별관으로 돌아갔다. 휴게실에는 선영과 재하 그리고 김달이 그대로 남아 이야기를 나눈다. 창밖으로 조명이 밝혀진 분수대가 어둠 속에서 유독 돋보인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좋네요. 여기 오기 전에는 생각이 많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길 잘한 것 같아요.”

 김달이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저도 밤에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서 그런 생각 자주 합니다. 여기 오기를 잘했구나, 하고요. 서울에서는 평온을 유지한다는 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거든요.”

 재하도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상태로 말했다.

 “그러면 전에는 서울에서 사셨어요?”

 김달이 재하를 보며 물었다.

 “여기서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고 그 뒤로는 줄곧 서울에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지난해에 고향 집을 수리해서 아예 내려와서 살고 있어요.”

 “아직 젊으신 분이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내려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혹시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저는 글을 쓰고 있어요.”

 재하가 김달의 질문에 곧장 대답했다.

 “아 그러시구나. 사실 저도 글 쓰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요? 이야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에세이를 쓰는 신재하라고 합니다.”

 “제 이름은 김달입니다. 웹소설을 쓰고 있어요.”
 재하와 김달은 반갑게 악수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두 분 다 글 쓰는 분들이라 통하는 게 많겠어요. 자, 차 한 잔씩 드시면서 이야기하세요.”

 선영이 차를 내오며 말했다. 

 “무슨 차예요?”

 재하가 물었다. 

 “재스민차예요. 소화와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제가 자주 마셔야겠는데요.”

 김달이 찻잔을 건네받으면서 말했다. 

 “여기에 계시는 동안이라도 자주 와서 드세요.”

 “고맙습니다. 여기 사장님이시죠?”

 “사장님은 조금 전에 노래하면서 기타 연주하신 분이고 저는 조카예요.”

 “아, 그러시구나. 출판사도 있는 것 같던데요.”

 “출판사는 아는 작가님들 책만 낼 생각으로 얼마 전에 차린 거예요.”
 “그러면 출판사 사장님이시네요.”
 “혼자 하는 출판사라 사장이란 말은 좀 쑥스럽네요.”

 “제 책 두 권 다 선영 씨가 기획하고 편집하신 거예요. 다음 책도 선영 씨가 맡아주실 거고요.”

 재하는 선영을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성함이 선영 씨?”

 “제 이름은 강선영이에요.”
 “아, 네. 저는 웹소설을 쓰고 있어서 책을 내본 적은 없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순수소설로 책을 내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그때 저도 선영 씨에게 조언을 구해야겠네요.”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런데 김달 작가님은 여기를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재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 영화배우 진보라 씨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을 보고 알았어요. 제가 진보라 씨 계정 팔로워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진보라 씨가 다녀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저는 안타깝게도 못 봤거든요.”

 “다음에 북스테이 하러 온다고 하셨으니까 재하 씨는 그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김달 작가님은 진보라 씨를 직접 본 적 있으세요?”

 “가까이는 아니고 전에 아내랑 영화 보러 갔다가 진보라 씨가 무대인사 하는 거 한 번 봤어요. 저도 다음에 여기서 진보라 씨를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그분 덕분에 외국 감독들이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워낙 연기를 잘하니까 그럴 만도 해요.”

 재하와 김달은 보라가 출연한 영화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선영은 끊기지 않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두 사람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선영의 생각대로 역시 두 사람은 잘 통하는 것 같았다. 

 “요즘에 웹소설 시장이 커져서 인기 있는 작가님들은 수입이 엄청나다고 들었어요. 그런 이유로 웹소설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도 많고요. 작가님은 웹소설 쓰신 지 오래되셨어요?”

영화 이야기가 끝나자, 선영이 김달에 물었다.

 “올해로 7년 됐어요. 그때만 해도 블루오션이라고 했는데, 요즘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레드오션이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레드오션이라고 해도 웹소설 시장은 더 커졌으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거예요. 그에 반해 일반 출판 시장은 해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고요. 그중에서 가장 표가 많이 나는 장르는 소설이에요. 판매 부수도 예전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니까요. 출판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그런 걱정이 빠지질 않아요.”
 “그래서 제가 웹소설을 그만둘 수가 없다니까요. 저 혼자 같으면 지금이라도 소설을 책으로만 내겠는데 가정이 있으니까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김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웹소설 쓰시면서 일반 소설책도 출간하시면 되지 않아요?”

 재하가 김달에게 물었다.

 “그러면 좋은데 상황이 여의찮아요. 한번 작품 연재를 시작하면 마감 맞추기도 빠듯하니까요. 그렇다고 작품이 끝나고 편하게 쉴 수도 없어요.”
 “왜요? 충전을 위해서라도 얼마간 쉬는 게 좋지 않나요?”

 재하가 김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작가님이 웹소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라서 그래요. 웹소설 시장이 워낙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작품을 쉰다는 건 잊힐 각오를 하지 않고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에요. 그런 이유로 작품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작품 기획서를 작성해서 계약을 마쳐야 하니까 여유가 생길 틈이 없어요”

 “제가 듣기로 웹소설 시장에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작가님은 7년을 하셨으니, 구독자층이 확고하시겠어요.”
 선영의 말에 김달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마운 일이죠. 그 구독자들 덕에 돈도 많이 벌었고 나름 이름도 유명해졌으니까요. 그래서 그 구독자들 때문에라도 작품을 쉴 수가 없어요. 팬들이 아니었으면 웹소설을 쓰겠다고 의사를 그만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예? 의사를 그만두셨다고요?”
 재하가 놀란 눈을 하고 물었다. 김달의 말에 놀란 건 선영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때부터 판타지 장르 소설을 쓰는 걸 좋아했어요. 공부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도 그게 유일한 낙이었죠. 의사가 되어서는 의사로서 사명감도 있었고 수입도 괜찮았는데도 제가 의사라서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밤에 잠깐씩 연재할 소설을 쓰는 건 사뭇 달랐어요. 눈이 반짝거리고 피곤한 줄도 모르겠고 그저 좋더라고요. 그러다가 운 좋게도 취미로 연재한 소설이 대박이 났어요. 들어오는 돈이 의사 연봉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면서 에이전트가 생겼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만 쓰면 되니까 이게 내 운명이구나, 했어요.”

 “와, 대단하시네요. 운명이라고 느끼셨다면 의사를 그만둔 게 이해가 되네요. 집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재하가 물었다.

 “말도 마세요. 부모님은 안정적인 직업을 팽개치고 사서 고생길로 들어간다고 펄쩍 뛰셨죠. 그래도 제가 계속해서 행복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허락하셨어요. 말이 허락이지, 나중에 후회할 날이 있을 테니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하는 식이었어요. 하지만 아내는 처음부터 찬성이었어요. 만약에 아내가 반대했다면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고 해도 내 맘대로 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전업 작가가 된 거예요. 운이 좋았죠, 뭐.”
 “그러면 지금도 연재 중이신 거예요?”

 “아니요. 1년 가까이 연재하던 작품을 끝내고 큰맘 먹고 쉬러 온 거예요. 사실 다음 작품 시작하는 것도 두렵기도 하고요.”

 “두렵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선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김달을 바라보았다. 

 “시작하고 몇 년간은 행복했어요. 글도 잘 써지고 독자들도 좋아하고 제 작품을 인정해 주는 곳도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지난 1년간은 글이 잘 안 써지더군요. 글을 쓰려면 어떻게든 쓰는데, 문제는 저 자신이 제 글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마치 마른행주를 쥐어짜듯이 분량을 채워서 겨우 마감에 맞춰 원고를 보내고 나면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면서 시간이 갈수록 원고에 대한 중압감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더군요. 결국 한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았으니까 말 다 했죠, 뭐.”

 김달은 자기의 지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선영과 재하가 고마워 허허 웃었다.

 “저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남 일 같지 않네요. 이번에 휴식 시간을 갖는 건 잘하신 것 같아요.”

 재하는 자신과 입장은 다르지만, 김달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번에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으실 거예요.”

 선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너무 불안해하니까 아내가 그러더군요, 우리 식구 먹고사는 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는다고요. 그러면서 몇 년 동안 글 안 써도 되니까 이참에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면서 불안을 견뎌보라고요. 그 말이 큰 위로가 됐어요. 그래서 여기에 올 수 있었어요. 사실 지금도 불안하기는 한데 그래도 나한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불안을 견디는 중이에요.”

 “작가님은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고 작가님 작품을 기다리는 구독자가 있으니까, 다시 예전처럼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으실 거예요.”

 “그렇게 되겠죠? 하하하. 여하튼 두 분 앞에서 제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더 가벼워진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선영의 말에 김달은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별말씀을요. 저희를 믿고 이야기해 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고맙죠. 편하게 생각하시고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재하가 김달을 보며 헤헤 웃었다.      


 김달은 3일을 더 머문 후 서울로 돌아갔다. 떠나기 전날에는 재하가 김달을 집으로 초대했다. 김달은 재하의 집을 둘러보고 글을 쓰기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겠다며 몹시 부러워했다. 특히 재하 자리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저 멀리 윤슬에 반짝이는 강줄기는 집에 가서도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았다. 그도 기회가 된다면 재하처럼 한적한 곳으로 이사해서 살고 싶었다. 재하는 김달에게 선물로 자신의 저서에 사인을 해서 건넸다. 김달은 책 제목을 들어봤다며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거북이 펜션을 떠나면서는 선영에게 자기가 제안한 미니콘서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꼭 듣고 싶고, 그때 또 오겠다고 했다. 선영은 더 생각해 보고 콘서트를 하게 되면 제일 먼저 연락하겠다고 했다. 김달은 숙소에 마련된 이용 후기를 적는 공책에 좋은 사람들을 알게 돼서 너무 좋았고 거북이처럼 여유롭게 잘 지내고 간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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