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설렘 속에서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고 거북이 펜션의 첫 콘서트가 열리는 토요일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열게 된 콘서트지만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단지 북스테이 손님들에게 콘서트에 대해 알리고 소셜미디어에 콘서트 공지문을 올리는 것뿐이었다. 콘서트를 제안해 준 김달에게는 소셜미디어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재하가 알렸다. 김달은 소식을 전해 듣고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콘서트에 올 수는 없었다.
김달은 구례에서 서울로 올라간 후로 재하처럼 한적한 곳에 가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내도 하루 종일 방안에서 글 쓰는 남편이 안쓰러웠던 터라, 잠시라도 멋진 풍경을 보면서 글을 쓰고 산책도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곧장 제주도에 사는 친척에게 전화해 김달이 잠시 머물면서 글 쓸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바로 그다음 날 노부부가 살다가 서울 아들 집으로 떠나고 1년 넘게 비어있는 집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임대료도 상당히 저렴했다. 그 대신에 벽지와 장판을 새 걸로 교체해야 하고 사람 키만큼 웃자란 풀이 정글처럼 우거져 있는 집 뒤편 텃밭을 치워야 했다. 김달은 제주도 친척이 보낸 사진을 보고 그 집이 아주 맘에 들었다. 그래서 작품을 쉬고 있을 때 집을 치우지 싶어 아내와 의논 끝에 이틀 후 제주도로 내려갔다. 그는 이번 주까지 그곳에서 머물며 집 단장을 끝낼 생각이었다.
김달은 재하에게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다음 콘서트 때는 꼭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재하는 콘서트를 계속할 것 같으니, 다음에 참석할 기회가 많을 거라고 김달에게 말했다. 김달도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며 좋아했다.
처음에는 콘서트를 저녁 식사 이후에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콘서트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오후 3시로 변경했다. 장소는 명상 수업을 진행하는 교실이었다.
명상 수업이 끝나자, 재하와 준석은 교실로 들어가 앞쪽에 칠판 크기의 플래카드를 달았다. 명색이 콘서트인데 이름은 있어야지 않냐고 하면서 선영이 만든 플래카드였다. 첫 줄에는 ‘책과 이야기와 음악이 있는 거북이 콘서트’, 둘째 줄에는 ‘오늘의 이야기 :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은 자기 안에 있다’, 셋째 줄에는 ‘오늘의 이야기 손님 : 김 데레사 수녀(수도원 피정 담당)’라고 쓰여 있었다.
재하와 준석은 다음으로 바닥에 방석을 넉넉하게 더 깔고 교실 뒤쪽에 의자도 간격을 두고 펼쳐놓았다. 북스테이 손님 열둘에 펜션 식구들 다섯을 합쳐 열일곱, 그리고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손님들을 어림잡아 열 명으로 계산하고 자리를 준비했다. 하지만 콘서트 시작 10분 전에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알았다. 시간에 맞춰 자가용으로 온 사람들이 교실로 우르르 들어오면서 앉을 자리가 부족해 멀뚱하게 서 있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를 본 재하와 준석이 재빠르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의자를 가져다가 교실에 넣었다. 그래도 자리가 부족해 교실 밖 복도에도 의자를 놓았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교실 안이 후끈 달아올랐다. 선영은 서둘러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켰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재하가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채로 손부채질하며 관객 수를 세어보았다. 펜션 식구를 빼고 쉰두 명이었다. 첫 콘서트치고는 대박이었다.
“이거 마시면서 땀 좀 식히세요.”
슬기가 재하에게 얼음물 한 잔을 건넸다.
“아, 고마워요, 제수씨.”
재하는 곧장 얼음물을 들이켜고 “아, 이제 좀 살겠네요.” 했다.
슬기는 준석에게도 얼음물을 건넸다. 준석도 차가운 얼음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정신 없이 의자 나른다고 손목을 썼더니 손목에 힘이 안 들어가네.” 하며 오른 손목을 빙빙 돌리고 매만지기를 반복했다.
“그 상태로 기타 칠 수 있겠어?”
슬기가 준석의 손목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물었다.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까 조금 있으면 괜찮겠지, 뭐.”
“그러지 말고 얼음 좀 가져올 테니까 찜질 좀 하고 있어.”
“아니, 넌 여기 앉아 있어. 내가 가서 가져올게.”
준석은 슬기를 자리에 앉게 하고 빠른 걸음으로 주방으로 걸어가더니 비닐봉지에 각얼음을 담아서 가져왔다.
시작할 시간이 되자, 별관에서 기타 연습을 하던 미자도 와서 복도 의자에 앉았다. 복도 쪽 창문을 다 열어놓은 상태라 복도에서도 교실 안이 잘 보였다. 교실 앞쪽에는 선영이 사회를 보기 위해 서 있었고 한쪽에는 김 데레사 수녀가 선영이 자신을 소개하기를 기다렸다. 그때 재하는 콘서트를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교실 뒤쪽에 디지털카메라를 설치했다. 슬기도 자기 핸드폰으로 중간중간 짧은 영상을 찍을 예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희 거북이 펜션의 첫 콘서트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거북이 콘서트 프로그램 운영자 강선영입니다. 원래는 북스테이 손님들과 편안히 둘러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기타 연주도 감상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건데, 이렇게 많은 분이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 전에 자리가 없어서 저희 식구들이 의자 준비한다고 뛰어다니는 거 보셨을 거예요. 아무튼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먼저 제 뒤에 걸린 플래카드 좀 봐주시겠어요?”
관객들이 선영이 가리키는 플래카드로 시선을 돌렸다.
“맨 윗줄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다 함께 읽어 볼까요?”
그러자 관객들이 첫 줄을 소리 내서 읽었다.
“네, 고맙습니다. 읽으신 대로 거북이 콘서트에는 책과 이야기와 음악이 있습니다. 먼저 초대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 다음 저희 거북이 펜션 식구들의 기타 연주를 감상하실 거예요. 그러면 오늘의 이야기 손님을 모시겠습니다. 수도원에서 피정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계시는 김 데레사 수녀님을 소개합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선영의 소개에 손님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김 데레사 수녀를 환영했다. 김 데레사 수녀는 환하게 웃으며 가운데로 걸어 나가 관객들을 둘러보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방금 소개받은 김 데레사 수녀예요. 수도원에서 20년 넘게 피정을 담당하고 있고 서원한 지는 40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때 관객 중 한 명이 “어?” 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김 데레사 수녀가 “외모만 보면 전혀 그렇게 안 보이죠?”라고 말해 모두가 웃었다. “농담이고요. 저도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생각하면 놀랍기만 합니다. 지난 주말에 명상 수업하러 여기 왔다가 엉겁결에 첫 콘서트의 이야기 손님이 되었어요. 그 덕에 일주일 만에 다시 거북이 펜션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제가 있는 수도원도 숲속에 있어서 경치가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여기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무슨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생각한 끝에 그동안 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꼈던 점을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은 자기 안에 있다’라는 제목을 붙여봤습니다. 먼저 질문 하나 드릴게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성직자나 수도자를 제외하고 어떤 분들이 주로 수도원 피정에 올 것 같으세요?”
김 데레사 수녀가 대답을 기다리며 관객들을 둘러봤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이요?”
앞줄에 앉아 있는 사십 대 여성이 대답했다.
“맞아요. 피정은 침묵 중에 쉬면서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걸 의미합니다. 피정에 오는 분들을 만나보면 힘든 일을 겪은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분,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분,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좌절해서 오신 분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분들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건 우리가 독립적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짐작만 할 따름이죠. 그래서 저는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힘든지 다 안다느니 다 털어버려라 같은 조언은 하지 않아요. 다만 그 사람과 함께 있어 주면서 자기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안내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분들이 돌아갈 때는 며칠 동안 침묵 중에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말하더군요. 참으로 놀라운 일이죠? 수도원에 와서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그저 침묵 속에서 자기 안을 들여다봤을 뿐인데 힘을 얻었다니 말이에요. 왜 그럴까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이에요.”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힘과 에너지는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건 제 말이 아니에요.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수많은 이들이 그들의 저서를 통해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17세기 인물인 블레즈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안에 홀로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에서 시작된다’라고 했어요. 이 말은 혼자 조용히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행복하게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19세기에 살았던 허먼 멜빌은 그의 저서 『모비 딕』에서 ‘사람의 영혼 속에는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찬 고립된 섬 타히티가 있다’라고 하면서, 자신 안의 그 섬에 도달하지 않고는 반쪽짜리 인생을 살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은둔형 외톨이가 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에요. 침묵 중에서 혼자 자기 안을 들여다보면서 기쁨과 평화와 용기라는 힘을 얻어 방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매일 시간을 내서 명상하라고 권해드립니다. 하루 중에 많은 생각을 하지만, 과연 그 많은 생각이 전적으로 내 편인지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의 뇌는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게 한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걱정하게 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그래야 긴장하게 되고 경계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생각이나 감정은 내 편이 아니니 속지 말라고 하는 명상가도 있어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년 멍때리기 대회도 열리고 있습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생각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 우리의 지치고 피로한 마음이 회복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먼저 자세를 편안하게 한 다음 눈을 감으시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들은 김 데레사 수녀의 말에 따라 자세를 가다듬고 눈을 감았다.
“생각이 떠오르면 그저 그렇구나, 하고 그냥 지켜만 보세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라도 그렇구나, 하고 그냥 지켜만 보세요. 그러다 보면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면 내 안을 들여다본다는 기분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세요.”
그 상태로 5분 정도 있다가 김 데레사 수녀는 관객들을 둘러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서서히 눈을 뜨겠습니다. 기분이 한결 개운한 걸 느끼실 겁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혼자 이런 시간을 가지시길 권해드립니다. 이런 시간을 꾸준히 가지면서 점점 더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 데레사 수녀는 30분 동안 준비한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관객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관객들이 처음에는 말하기를 꺼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이런 상황에 익숙한 김 데레사 수녀가 관객에게 먼저 다가가 그 사람의 눈을 보고 편하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혼자 오셨어요?”, “여기 자주 오세요?” 같은 말을 건네면 상대는 조금 주뼛거리다가 말을 받았다. 그렇게 서너 번 말을 주고받은 다음에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선영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선영 자신도 자기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김 데레사 수녀는 친근하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고 그 말은 상대에게 경계를 거두게 했다. 오늘 들은 이야기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눈앞에서 김 데레사 수녀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끄는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사람을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루아침에 김 데레사 수녀처럼 사람을 대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선영 자신부터 마음이 열릴 거로 생각했다. 첫 번째 이야기 손님이 되어 많은 것을 느끼게 한 김 데레사 수녀가 무척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손을 들어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고, 간단하게 오늘 참석한 소감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 한 참석자는 “사실 복잡한 일이 있던 차에 친구가 바람이나 쐬자고 하길래 따라왔어요. 그런데 마치 수녀님이 제 사정을 아시고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어요. 앞으로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힘이 날 것 같아요. 오늘 여기 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참석자들은 힘껏 박수를 치며 공감을 전달했다. 김 데레사 수녀가 마무리하는 말을 할 때 관객들의 표정은 시작할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김 데레사 수녀가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가 앉자, 선영은 기타를 연주할 준석을 소개했다.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은 준석의 손목에 하얀 파스가 붙어있었다. 슬기는 그런 준석을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준석은 슬기가 걱정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제 손목에 파스가 붙어있어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나 보다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파스는 연습량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준석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에 의자를 허둥지둥 나르느라 손목에 힘이 빠져서 붙인 거예요. 혹시나 제 연주 실력이 높을 거라고 기대하셨다가 실망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헤헤헤.”
넉살 좋은 준석의 말에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중에는 웃으면서도 걱정하는 눈빛으로 준석의 손목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거북이 콘서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희는 기타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요리하는 남자고 다음에 연주하실 분은 거북이 펜션 사장님이세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찾아오신 분들에게 환영의 의미로 기타 연주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기타를 들게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희의 마음이라 생각하시고 잘 즐겨주세요. 제가 연주할 곡은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와 ‘벚꽃 엔딩’입니다. 저의 치명적인 단점은 절대 음감이라는 거예요. 제 노래를 듣고 불편해하지 않으시려면 노래를 크게 불러주세요. 감사합니다.”
준석의 멘트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선영은 준석이 저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나, 했다. 참으로 재능이 많은 청년이었다. 재하 역시 생소한 준석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웃겨서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준석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 있던 슬기는 입이 귀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준석이 연주를 시작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는 준석의 기타 연주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노래 부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아주 즐겁다는 걸 읽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곡을 연주할 때는 리듬에 맞춰 박수까지 치며 노래 불렀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서로 얼굴을 보면서 흥겨워했다. 연주하는 준석도 흥겹기는 마찬가지였다.
준석의 연주가 끝나고 미자가 기타를 품에 안고 자리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감사드리고 이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연주할 곡은 좀 오래된 노래라서 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같이 불러주세요.”
미자는 잠시 기다렸다가 조용한 가운데 연주를 시작했다. 첫마디 연주를 듣고 몇몇 사람들은 아는 노래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가워했다. 곧이어 미자가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널 위한 나의 마음이-”
그 순간 관객들은 노래 가사가 마음에 와닿는 기분을 느꼈다. 몇몇은 온몸이 저릿하기까지 했다. 노래가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절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노래를 따라 부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노래를 아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그 순간에 몰입해 미자의 노래를 온몸으로 음미할 따름이었다.
미자의 노래가 끝나자, 모두가 환호하며 앵콜을 외쳤다. 그러자 미자가 생긋 웃으며 “그러면 한 번 더 연주할 테니까 이번에는 같이 불러주시겠어요?” 하고 말했다. 모두가 “예.” 하고 대답했다.
다시 미자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가사를 아는 사람들은 소리 내서 노래를 불렀다. 가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리듬에 맞게 몸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다문 채로 흥얼거렸다. 선영은 지금이 밤이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숨은 감각을 일깨우는 밤에 다 같이 이 노래를 부른다면 더욱 황홀할 것이었다.
콘서트가 끝나고도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에 펜션을 떠날 줄을 몰랐다. 조금이라도 그 분위기를 더 느끼고 싶어서였다. 콘서트 후 교실에서 나온 손님들이 카페로 몰리는 바람에 준석과 슬기는 음료를 만들고, 미자는 디저트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책을 사는 사람들도 있어서 재하가 서가를 오가면서 손님들을 도왔다. 선영은 굿즈 판매대에서 기념으로 굿즈를 사려는 사람들을 도왔다.
북스테이 손님들을 제외한 방문객들이 돌아가고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 시 삼십 분이었다. 북스테이 손님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었다. 오후 내내 바쁘긴 했지만, 식구들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사람과 어울린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뿌듯하게 하는 일인지 가슴 절절하게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