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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 Oct 01. 2024

제27화 콘서트 리뷰

 월요일 오후 재하와 펜션 식구들이 휴게실에 모였다. 재하가 촬영한 콘서트 영상을 보면서 개선할 점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선영은 콘서트가 무료라고 해서 콘서트를 아무렇게나 진행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펜션 식구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긍정 에너지를 준다는 의미에서 콘서트를 거북이 펜션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만들고 싶다. 다른 식구들도 선영의 생각과 같았다. 재하도 영상을 편집하면서 거북이 펜션의 상징이 될 새로운 콘텐츠의 탄생에 흥분했던 터라 앞으로 콘서트가 어떻게 변모할지 기대가 컸다. 

 모두 벽에 걸린 텔레비전 화면으로 영상을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고 감동과 웃음으로 촉촉해진 눈빛은 오후의 햇볕에 반짝거렸다. 특히 미자와 준석은 기타 연주 부분을 보면서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다시 전율이 느껴진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영상을 시청한 후 선영은 의견을 적기 위해 클립보드와 볼펜을 가져왔다.

 “준석이 별명을 양파남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요.”

 “양파남이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언니?”

 슬기가 선영의 말뜻을 궁금해하며 선영에게 물었다.

 “다른 게 아니라 준석이가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인 줄 몰랐지, 뭐야.”

 선영의 말에 미자도 “나도 그 말 하려던 참이었어. 준석이는 보면 볼수록 매력덩어리라니까.” 하며 활짝 웃었다.

 “제가 말하긴 뭐하지만, 준석이가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매력남이라는 건 저도 인정해요.”

 슬기가 말하면서 부끄러웠던지 혀끝을 내밀며 히히 웃었다. 

 “그래 슬기가 보는 눈이 있는 거지. 아주 칭찬해, 슬기야.”

 선영이 옆에 앉은 슬기의 등을 토닥였다. 

 “아버지가 저한테 화를 내서 그렇지 보통 때는 유머 감각이 남다르세요. 재미있는 건 재하 형도 만만치 않고요. 그러고 보면 유머 유전자가 집안 내력인지도 모르겠네요.”

 “매사에 진지한 재하 씨는 잘 알고 있는데, 유머러스한 재하 씨는 어떤 모습일까요? 막 궁금해지네요. 하하하.”

 선영이 재하를 보며 말하자, 재하는 귀가 빨개져 말없이 허허 웃기만 했다. 

 잠시 후 선영이 자신의 클립보드에 꽂힌 종이를 넘기며 말했다.

 “자, 그러면 콘서트 개선할 점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제가 몇 가지 적은 게 있는데 하나씩 읽어 볼게요.”

 식구들은 선영의 말에 귀 기울였다.

 “먼저 장소하고 예약에 관한 거예요. 다음부터는 예약제로 했으면 좋겠어요. 예상되는 참석자 수를 알면 그에 맞는 자리를 미리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아니면 장소에 맞게 참석자 수를 제한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 그날처럼 예상되는 참석자 수를 모르고 있다가 시작 시간에 맞춰 몰려든 손님들 때문에 재하 씨랑 준석이가 고생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예약해 놓고 나중에 취소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갑자기 인원수가 늘어나서 당황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장소는 미리 정해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평상시에는 명상 교실에서 하다가 한 번씩 콘서트를 크게 열 때는 운동장에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재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재하 형 생각에 찬성이에요. 한 번씩 운동장에서 크게 하면 축제처럼 엄청나게 신날 것 같은데요.”

 준석은 운동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떴다.

 “그러려면 준비할 것도 많을 거예요. 사람들이 많으면 안내하고 통제할 인원도 있어야 하고 의자도 미리 준비해야 하고요.”
 선영이 클립보드에 메모하면서 말했다. 

 “이러면 어떨까?”

 식구들의 시선이 미자에게 쏠렸다. 

 “운동장에서는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는 못하고 봄, 가을에나 할 수 있을 거야. 의자도 많이 필요할 거고. 그래서 말인데, 이 기회에 운동장에 잔디를 깔면 어떨까? 잔디를 깔면 콘서트 때 참석자 저마다 돗자리를 준비하라고 하면 되니까 의자를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지 않겠어. 사실 지금은 운동장을 쓰는 사람도 없으니까 차라리 잔디를 깔면 보통 때도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 다닐 수도 있고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을 수도 있으니까 활용 면에서도 더 좋을 거야.”
 “잔디를 깔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은데, 비용이 꽤 들어갈 텐데요.”

 재하가 말했다.

 “비용은 들어가겠지만 멀리 내다보면 고모 말씀대로 잔디를 까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공사 비용은 제가 서울 집 정리한 걸로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퇴직금 들어올 것도 있고요.”

 “아니, 그럴 것 없다. 그 돈은 쓰지 말고 그대로 둬. 그 돈 아니라도 공사 비용은 댈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러면 공사 비용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는 걸로 하고 다음으로 넘어갈게요.” 

 선영이 클립보드를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다음은 이야기 손님과 음악 공연에 관한 거예요. 당분간은 우리가 이야기 손님을 섭외해야 하니까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추천 좀 해주세요.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이렇게 하고 나중에 잘 되면 이야기 손님도 신청받아서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야 그때는 콘서트가 유명해져 있겠죠?”

 슬기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 하하하.”

 준석이 슬기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런 날이 올 거야. 그전에 음악 공연할 사람부터 신청받았으면 좋겠어. 계속 기타만 연주할 수는 없으니까, 신청을 받자는 거지. 음악 공연은 가능하면 다채로울수록 좋으니까.”
 “그러면 선영 씨, 될 수 있으면 이 지역에 거주하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면 좋겠어요. 아니면 지자체에 알아보면 어떨까요? 지역 음악인들 네크워크가 있을 테니까 지자체에서도 지원해 줄지도 몰라요.”

 “좋아요. 음악 공연할 사람은 재하 씨 말대로 지자체에 알아보면 되겠어요. 그러면 그 일은 재하 씨가 좀 도와주세요.”
 “물론이죠. 제가 알아보고 다시 이야기할게요.”
 “네, 재하 씨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어요. 고마워요.”

 “안 그래도 재하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여기 일 돕느라 글도 못 쓰고 말이야.”

 미자가 애정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재하를 보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사장님.”

 “고모랑 이야기하다가 생각한 건데 말이 나온 김에 지금 말할게요. 제가 출판 작업도 해야 해서 재하 씨가 정식으로 책방을 맡아주시면 어떻겠어요? 재하 씨 도움은 꼭 필요한데 재하 씨가 수고비도 안 받고 돕고 있으니까, 저희가 죄송해서요. 한번 잘 생각해 보시고 저희 부탁대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요, 형. 형이 그렇게 해주면 저도 든든할 것 같아요.”

 준석이 재하를 보며 말하자, 슬기도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거들었다.

 “아, 그럼 생각해 볼게요.”

 재하는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재하는 지금처럼 계속 펜션 일을 도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식 직원이 된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선영이 재하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말에 진짜 한 가족이 된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선영이 재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선영은 다음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독립서점과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현정의 남편 최수창이었다. 식구들도 선영이 말하는 수창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또한 콘서트는 매달 첫째 주와 셋째 주 토요일에 열기로 했다. 

 슬기는 콘서트 때 자신이 찍은 짧은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릴 생각이라면서 재하에게 보여주었다. 영상을 본 재하는 편집이 잘됐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식구들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그것은 거북이 펜션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콘서트 영상을 올리자는 것이었다. 준석과 슬기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적극 찬성했다. 미자와 선영도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지만, 촬영이나 편집에 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결국 유튜브 채널 운영은 고스란히 재하의 몫이 될 것 같아 미안함 때문에 선뜻 찬성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영은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만약 재하 씨가 정식으로 펜션에서 일하겠다고 하면 저희도 미안해하지 않고 찬성할 수 있어요.” 

 “아, 정 그러시면 여기서 일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재하의 말이 끝나자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재하는 펜션 식구들에게 항상 든든한 사람이었다. 특히 선영에게 재하는 더 특별했다. 선영이 서울에서 힘든 일을 겪고 구례로 내려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살게 된 것도 재하 역할이 컸다. 이제 재하가 정식으로 한 식구가 되었으니, 이것만큼 든든하고 기쁜 일이 없었다. 재하도 자신을 열렬히 환영해 주는 펜션 식구들이 무척 고마웠다.      


 며칠 후 재하는 거북이 펜션의 정식 직원이 되었다. 선영의 부탁대로 책방 관련 모든 사항을 재하가 담당했다. 슬기는 짧은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재하는 자기가 제안한 대로 거북이 펜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첫 콘서트 영상을 올렸다. 구독자는 펜션 식구들 다섯이 전부였다. 슬기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짧은 영상은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겼다. 주로 멋진 곳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참석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슬기는 공지란에 새로 개설된 유튜브 채널도 링크를 달아 올렸다. 콘서트에 다녀간 사람들도 저마다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소감을 올리며 거북이 펜션 계정에 링크를 달았다. 그러면서 유튜브 구독자가 개설한 지 일주일 만에 오백 명으로 늘었다. 재하를 비롯한 펜션 식구들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진보라 때에 이어 소셜미디어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재하는 구독자가 남긴 댓글에 일일이 ‘좋아요’를 누르고 질문에 짧은 답글을 달았다. 그 이후로 책을 택배로 주문하는 사람들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마치 재하 씨가 정식 직원이 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책 주문량이 늘었어요.”

 선영은 컴퓨터로 주문 체크를 하는 재하에게 웃으면서 농담을 건넸다. 

 “벌써 제가 책방지기가 됐다는 소문이 퍼졌나 보네요. 하하하.” 

 선영도 재하를 따라 웃었다. 

 “저는 이번에 다시 깨달은 게 있어요. 역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이야기라는걸요.”

 “저도 선영 씨 말에 공감해요. 앞으로 거북이 펜션에서 비롯된 많은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줬으면 좋겠어요. 또 꼭 그럴 거로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거북이 펜션과 식구들의 미래가 무척 기대돼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렐 정도로요.”

 선영은 거북이 펜션과 식구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는 재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말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선영은 이곳으로 내려온 후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재하의 말을 듣고 거북이 펜션의 미래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생겼다. 이런 기대감을 심어준 재하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책 제목과 수량을 메모지에 적는 재하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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