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영상을 보면서 의견을 나눈 날 저녁 선영은 수창과 통화 전에 먼저 현정에게 전화했다. 현정과 수창은 선영이 유튜브 채널 주소를 보내줘 이미 콘서트 영상을 본 상태였다. 선영은 거북이 콘서트를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지 전하고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수창 씨를 초대하고 싶은데, 네 생각은 어때?” 하며 물었다. 현정은 선영의 말에 놀라 잠시 멈칫했다.
“이야, 내 남편 이야기를 듣겠다고 초대하는 데도 있고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현정이 넌 어떻게 생각해?”
“나? 나야 당연히 좋지. 아마 남편도 그 말 들으면 꿈이냐 생시냐 할걸. 고마워, 선영아, 말만 하면 하겠다고 할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내 남편을 먼저 떠올려 줘서.”
“우리 사이에 고맙긴, 뭐. 수창 씨 출판사에서 낸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거든. 수창 씨 이야기 들으면 나처럼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선영은 현정과 통화 후 책방에 있는 수창에게 전화했다. 현정의 말 대로 수창은 매우 들뜬 목소리로 흔쾌히 승낙했다.
“언젠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들려줄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날이 생각보다 빨리 와버렸네요. 고마워요, 선영 씨.”
“누가 들으면 여기서 무슨 방송국 행사라도 하는 줄 알겠어요. 이 먼 시골까지 와주겠다고 하니 오히려 제가 고맙죠.”
이어서 선영이 30분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30분은 대화하는 시간이라고 알려주자, 수창은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생각해 봐야겠어요.” 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수창을 오래 알아 왔지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는 처음이었다. 선영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를 누군가 알아봐 준다는 것은 몹시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이 없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그러니 혹시 자기다운 삶을 살고 싶은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시작해 보라고,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라고 수창은 말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 수창 씨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대로 들려주면 사람들이 분명 좋아할 거예요. 저희 콘서트 이야기 손님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수창 씨.”
선영은 수창과 통화를 끝내고 수창을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그 주 수요일 재하와 선영은 지자체를 방문했다. 문화‧관광‧체육부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루 전 재하는 미리 전화로 담당자에게 거북이 콘서트에 관해 설명하면서 연주할 음악인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거북이 콘서트 영상을 올린 유튜브 채널을 알려주면서 시청을 권했다. 몇 시간 뒤에 담당자로부터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재하가 이 소식을 선영에게 전하자, 굿즈 문제로 이 지역에 어떤 공방이 있는지도 알아보면 좋겠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작은 키에 후덕한 인상을 가진 사십 대 중반의 여성 담당자는 재하와 선영을 보고 반색했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유튜브에서 본 거북이 콘서트 영상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리고 콘서트가 계속 열린다면 지역 문화 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지자체에서도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지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재하와 선영은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어서 담당자는 음악인 섭외는 지자체 홈페이지에 올리면 쉽게 해결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선영은 홈페이지에 올릴 내용을 종이에 적어서 건넸다. ‘여기는 거북이 펜션입니다. 당신의 음악을 들려주세요.’로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읽어 본 담당자는 거북이 펜션 소셜미디어 계정과 유튜브 채널 주소도 링크를 걸어두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역 음악인이 많은 게 아니라서 얼마나 신청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문 음악인이 아니더라도 콘서트에서 연주하려는 사람은 있을 테니 곧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이어서 선영이 봄, 가을 콘서트를 운동장에서 할 생각이고 이를 위해 운동장에 잔디를 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지자체 연수원 개축 때문에 부지 내 잔디를 철거해야 하는데 그 잔디를 거북이 펜션에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생각지도 않은 말이라 선영은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하도 눈이 동그래져서 선영을 바라봤다. 그뿐 아니라 필요한 안내 요원도 지자체에서 도울 수 있을 것 같으니 알아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선영은 기쁜 마음에서 챙겨간 굿즈를 담당자에게 내보이며 지역 공방에서 만든 제품을 펜션 굿즈 판매대에 진열해 놓고 팔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비교적 영세한 지역 공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담당자는 다시 반색하며 지자체에서 적당한 공방이 있는지 알아보고 연락하겠다고 했다.
선영은 재하의 차로 펜션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재하 씨, 이럴 때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라고 하는 거겠죠? 지자체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저도 그래요. 조금 전에 담당자가 잔디 이야기를 꺼낼 때는 이거 하늘이 돕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잖아요. 잔디만 제공받아도 그게 어디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이 돕는 게 틀림없어요.”
“그럴지도 모르죠. 모든 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거북이 펜션에서 하는 일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분이 좋네요. 고모도 얘기 들으면 좋아하실 거예요.”
선영은 말하면서도 계속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마다 재하는 선영을 보면서 같이 웃었다. 선영도 재하가 자신을 보는 걸 알고 고개를 돌리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선영은 문득 재하의 스포츠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너무 생뚱맞은 생각이었다.
“재하 씨!”
“왜요, 선영 씨?”
“재하 씨 머리 한 번 쓰다듬어 봐도 돼요?”
“갑자기 제 머리를요?”
“왜요? 싫어요?”
“싫은 건 아닌데, 누가 내 머리 쓰다듬어 보고 싶다고 하는 말을 처음 들어서요.”
재하는 이미 귀가 붉어졌다. 선영은 그런 재하가 귀엽고 재미있었다.
“저도 누구 머리 쓰다듬어 보고 싶은 건 처음이에요. 왜, 안 돼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음-, 그래요, 뭐, 어때요, 닳는 것도 아닌데. 자, 만져봐요.”
재하가 머리를 선영 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때 선영이 푸하하 웃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떻게 재하 씨 머리를 쓰다듬겠어요. 오늘 제가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보다고 이해하세요. 날씨가 더워지니까, 재하 씨 머리를 만지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까슬거릴 것도 같고 간질거릴 것도 같고 무엇보다 여름이라 시원할 것 같아서요.”
“아, 네, 여름에는 스포츠머리가 시원하기도 하고 관리하기도 편해요.”
그때 선영이 주머니에서 검은색 고무밴드를 꺼내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질근 묶었다.
“선영 씨는 그렇게 묶는 게 잘 어울려요.”
“그래요? 그러면 자주 이렇게 묶어야겠네요. 하하하.”
선영의 말에 재하는 또다시 귀가 붉어졌다. 선영은 웃다가 “여름에는 이렇게 묶는 게 시원해요.” 하면서 묶은 머리를 다시 매만졌다.
재하는 선영과 웃고 있는 이 순간, 선영과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선영이 재하에게 서슴없이 농담을 건넬 수 있는 건 선영도 재하가 편하기 때문이었다. 재하는 선영이 구례로 내려오고부터 웃을 일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선영도 자주 웃었다. 그만큼 이곳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선영이 많이 웃을수록 주호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질 터였다. 재하는 선영과 지금처럼 웃는 날이 많기를 바랐다.
지자체에 다녀온 지 이틀 후에 유튜브 구독자가 이백 명 넘게 늘었다. 재하는 지자체 홈페이지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잠시 의심했던 것을 반성했다. 이백 명 중 대부분이 지자체 공무원일지도 모르지만, 저마다 또 한 명의 구독자를 불러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수였다.
담당자의 말대로 지자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고 펜션으로 문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이름과 연락처, 연주할 악기, 활동 경력을 적은 신청서를 제출한 신청자에 대해 순차적으로 면접이 이루어졌다. 면접에는 펜션 식구가 모두 참석했다.
가장 박수를 많이 받고 그 자리에서 면접에 통과한 신청자는 오카리나 연주자 이환이었다. 스물다섯인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오카리나를 배운 뒤로 계속 연주를 해왔고 지금은 직접 작곡해서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그는 키가 180이 넘었고 몸은 호리호리했다. 놀라운 점은 그가 태권도 사범이란 것이다. 그는 태권도하기 전에 오카리나를 연주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정신 집중이 잘된다고 했다. 그의 오카리나 연주를 들은 펜션 식구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재하는 오카리나를 초등학교 때나 몇 번 연주하는 악기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연주가 가능할 줄 몰랐다면서 놀라워했다. 미자는 그가 작곡한 곡이 너무 맘에 든다면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함께 연주해 보고 싶어 했다. 선영은 콘서트 때 이환의 연주를 듣기 전에 어떤 계기로 오카리나 연주를 시작했고 어떤 점 때문에 지금까지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있는지 잠깐 인터뷰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도 좋다고 했다. 펜션 식구 모두 그의 연주가 흡족했던 터라 그가 두 번째 콘서트에서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벌써 기대가 컸다.
굿즈도 지자체에서 공방을 연계해 준 덕에 두 종류가 늘었다. 하나는 고래 또는 올빼미가 달린 메추리알 크기의 풍경이었고, 다른 하나는 편백나무로 만든 독서대였다. 둘 다 책방과 잘 어울렸다. 제품을 가져온 공방 사장들은 같은 지역에서 이런 기회가 생겨 작품을 만들 힘이 난다고 하면서 몹시 기뻐했다. 선영도 지자체의 도움을 받은 만큼 앞으로 굿즈 판매가 잘돼서 지역 공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두 번째 콘서트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는 유튜브 구독자가 천 명을 돌파했다. 계속해서 지자체 홈페이지에 모집 공고가 올라가 있는 영향도 있었고 콘서트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하게 된 이환이나 새로 인연이 된 공방 사장들이 자신들의 소셜미디어에 유튜브 채널을 소개한 영향도 있었다. 재하는 이 추세대로라면 두 번째 콘서트 영상을 올리고 나면 구독자가 이천 명이 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히죽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