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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l 02. 2022

#6 나는 이제 그만 열차에서 잠시 내려오기로 했다.

나는 단명(短命)하기 싫었다.

 사실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도 많았지만, 정말 쓸데없는 일도 너무나 넘쳐났다. 특히 뜨는 회사, 뜨는 산업이라고 온갖 사람들이 우리 회사랑 엮이고 싶어 했다. 쉽게 말해 끊임없이 외부 방문자가 넘쳐 났다. 그러한 외부 방문을 팀장의 지시로 우리 부서가 대응해야 했고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뭐 외부와의 협업이 나쁜 건 아니지만 한 팀의 외부인이 오기까지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자료들, 의전, 선물 등등 일은 수가지로 늘어났고 핵심업무를 하기 위해 시간은 부족했다. 그렇게 나의 시간들은 핵심적인 일과 쓸데없는 일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일하지 않는 시간도 일하는 것 같았다. 계속 글을 쓰다 보니 모든 게 불평불만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좋은 기억들도 분명 있었는데 나쁜 기억들이 많다 보니 좋은 기억을 가려버리는 효과가 있나 보나. 하여튼 내 머리는 그 시기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 심장도.


 연말 인사시즌이 도래했다. 새로운 임원이 관계사에서 툭 날아왔고 조직은 개편되었다. 새로운 임원이 온다기에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으나 나는 이상하게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오자마자 2개월간 너무 지쳐버려서 그러한 희망이나 기대감, 긍정성도 빼앗아 간 게 아닐까 싶다. 새로운 임원이 실제로 오기 전까지 한 2주 정도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나의 과거와 앞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쓴 것 같다. 그 시점에 전에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가 우리 부서로 같이 쪼인을 했는데 그 친구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에 회사보다 더 나은 삶을 쫒고자 여기로 온 우리는 더 나은 삶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꼭 객관적인 성공이 아닌 일의 성취감, 나날이 성장한다는 느낌,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원했다. 회사는 성장하고 비전이 있었는데 왜 우리는 비전을 느끼지 못할까. 왠지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은 커플링 되지 못할 것 같다는 강한 예측, 그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의 그런 고민은 새해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새 임원, 새 해를 나는 맞이 했지만 한번 쓰러진 기대감이라는 나무는 쉽 자리 다시 서질 못했다. 하지만 일은 해야 했다. 새로운 임원은 큰 의욕으로 많은 지시들을 쏟아냈고 몇몇의 일들은 나름 나와 생각이 맞았다. 하지만 각각의 일들을 나 혼자 추진하기에는 너무나 자원이 부족했다. 일들을 고민할 동료도 부족했다. 나의 직속 상사는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본인도 살아남기 버거웠기에 내 일을 서포트해주진 못했다. 그렇게 1월이 지나갔다. 


 설 연휴에 나는 다짐했다. 이제 그만두겠노라고. 아무런 기대감 없이 하루를 사느니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이런 마음으로 조직에서 일하는 것은 나와 조직, 둘다에 도움이 되질 않으리라. 물론 내가 그만두면 당장 나의 직속 상사는 간부가 빠져 본인이 바빠져 힘들 것이고, 내 후배들은 믿었던 선배가 떠나가서 일과 마음 둘 다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만두겠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는 퇴사를 하든 다시 일을 하든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직속 상사에게 텍스트로 퇴사에 대해 말했다. 사실 이런 중대한 내용을 대면하여 말하는 것이 좋겠으나, 텍스트가 주는 심리적 안전감이 있고 또한 구두 대화 대비하여 말과 말 사이의 시간적 여유라는 것이 있어 서로 생각해보기도 좋은 것 같다. 이런 어려운 이야기는 말보다 글이 편함을 이번에 느꼈다. 하여튼 나는 퇴사를 말했고, 나의 상사는 충격을 받았다. 나의 행동이나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왜 그만두려 하냐고. 나는 말했다. 너무나 재미가 없다고. 나는 일의 성취감도 있고 자율도 있는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왔는데 그런 건 전혀 없다고. 상사는 나의 '일의 재미'가 퇴사의 사유가 될 수 있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해하질 못했다. 그리고 나도 그를 이해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다 말하면 혹시 상처가 될까 봐. 사실은 외치고 싶었다. 왜 나를 데려오기 전에 여기의 분위기와 실상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냐고. 나를 그냥 써먹기만을 위해 데려온 거 아니냐고. 네가 편하려고.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써먹음만을 당하고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고 싶었다. 내가 존재하는 하루는 성장하는 하루가 되고 싶었다. 그런 하루가 모여서 내 삶의 채워나가게 하고 싶었다.


피천득이 말했나?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라고. 나는 단명(短命)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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