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첫 번째 레슨,
인생은 너무나도 험난하다.
어릴 때는 동화 속 왕자님과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믿었다. 여러 가지 고난을 극복하고 착한 마음씨로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왕자님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와 결혼한 후의 삶은 '행복하게'로 퉁쳐질 줄 알았다. 적어도 열아홉 살까지는 그렇게 믿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대학 가면 살 빠지고 남자 친구 생긴다."가 완전히 거짓부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슷한 맥락으로 "왕자님과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도 구라겠거니 했다. 맞다, 구라다.
인생은 계속 힘들다. 생각해 봐라. 다들 학교 다닐 때 시험기간 되면 너무너무 예민하고 짜증 나고 힘들지 않았나? 중간고사 보다 성적 떨어졌다고 기말 끝나고 운 사람 나 밖에 없나? 그럴 리가! 수능 망치면 인생 망한 것 같은 기분 들지 않았나?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밥도 못 먹고 우느라 한 달 만에 7kg 빠진 것도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 그냥 우습지 않은가! 분명 결혼하고 나서 인생의 모든 관문을 통과했다 믿었는데, 첫째 낳고 나서도 이제 진짜 최종이라고 생각했는데, 둘째 낳고 나서도 최최최최최종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인생은 나에게 퀘스트를, 관문을, 오르막을 선물한다. 더 열받는 것은 그래서 그게 앞으로 몇 개나 남았는지, 내가 지금 얼마나 온 건지도 알 수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의 마인드셋을 개발했다. 이 험하고 빡센 세상을 좀 더 꽃밭으로 살 수 있는 나만의 비법! 스트레스를 덜 받아 암 발병률을 줄이고, 불필요한 예민함을 제거해서 덤덤하고 소탈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씩 공개하겠다.
그 첫 번째 비법은 내 통장에 20억이 있다. 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통장에 얼마가 있는가? 20억이 있나? 아니, 2억은 있는가? 아니 아니, 2천만 원은?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통장에 200만 원도 없다는 것을 모두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늘 내가 모르는 내 통장에 20억이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면 삶이 굉장히 윤택하고 평온해지는데 개소리 같겠지만 잘 들어보시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제일 흔한 행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오천만이 바라는 우리의 소원은 바로 '로또'다. 내가 아닐 줄은 알지만, 혹시 내가 될지도 몰라 토요일 오후만 되면 로또 명당 앞에는 놀이기구 대기열을 방불케 하는 줄이 세워진다. 평범한 사람들이 한탕을 노리는 가장 손쉽고 빠른 수단은 바로 '로또'이다.
하지만 로또 이후를 생각해 보자. 로또 당첨금액은 대략 10억~30억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평균 잡아 20억이라고 해보자. 지금 당장 20억이 내 눈앞에 떨어진다고 해서, 내 삶이 많이 변할까? 나는 20억이 생긴다고 해도 직장을 때려치울 생각이 없다. 20억은 20억이고, 직업이 주는 안정감과 월소득은 그와 맞바꿀 수는 없다고 본다. 건강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도 일정한 소속과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20억으로 직장을 때려치우기엔 내 직장이 너무 좋다. 그렇다고 내가 당장 부가티를 타고 나타날 것 같은가? 아, 방금 검색해 봤는데 부가티 30억이다. 못 산다.
그렇다. 우리는 로또가 당첨된다 한들, 그래봐야 포르셰정도 타는 거다. 집 한 채 정도 더 사는 거다. 그것도 서울권은 어려울 수도 있고, 경기권 신축으로다가. 이 정도 하면 벌써 다 썼다. 지금 내가 타는 차가 포르셰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내가 사는 곳이 경기권 신축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미 20억을 가진 사람이 되는 거다. 이건 진짜 개소리였고,
어쨌든 20억이 통장에 있어도 1. 나의 일상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고, 2. 사람들에게 과시할 만한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수준도 아니면서도, 3. 그저 마음 한구석이 든든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없는 20억을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든든함을 누린다면 나는 가성비 넘치는 20억을 구현해 낸 것이 아닌가!
이 생각의 장점은 내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될 일'을 줄일 수 있다. 그래봐야 몇 푼 더 벌거면서 스트레스와 예민함은 극도로 끌어올려 결국 나의 기대수명을 줄이고 미래 의료비의 추가 지출을 야기하는 '그 일' 말이다. 20억이 있다고 생각하면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할 일도 줄어들고, 내가 열정을 쏟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다.
보아라. 이렇게 유창하게 글을 쓰면서 '돈 되는 1일 1 블로그'나 '글 잘 쓰는 101가지 방법 전자책' 같은 거 안 쓰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소리, 하고 싶은 때에 자기 브런치에 쓰며 열심히 재능낭비 하는 내 모습을! 내 재능은 헛소리를 그럴듯하게 하는 것이고, 이 헛소리는 대부분 나의 삶에 굉장한 긍정파워빔을 선사한다. 나의 가상화폐 20억은 내가 좀 더 당당하게, 자신 있게 행동하게 하는 힘을 준다.
가상화폐 20억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주식코인방에서 아쉬운 소리 하며 정보나 줍줍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돈 되는 부업 한번 해보겠다고 가족여행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퇴근 후에 부업하는 워커홀릭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 남편이랑 결혼도 안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모르지만 어딘가에 있는 나의 가상화폐 20억 덕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산다.
20억 생겨도 별로 안 다르다. 그래봐야 돼지고기 먹던 거 소고기 먹고, 광어 먹던 거 참치 먹겠지. 34평 살던 거 78평 살고, 자동차 엔진음 조금 더 시끄러워지겠지. 서울에 사는 변호사 부부도 아침으로 멸치볶음이랑 김자반에 밥 먹더라. 사람 사는 거 별 거 없고,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으면 계속 없다. 다들 돈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당당하고 씩씩하게, 어딘가 내 통장에 꽂혀있는 20억 내가 찾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자세로, 하고 싶은 것만 잔뜩 하다가, 암 말고 노환으로 자연사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