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섣불리 타인의 삶을 동경하지 말 것

그 깊은 심연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보기 전까지는

by 첫둘셋

빛 좋은 개살구들의 모임이 있다. 개살구들은 모두 잘생기고, 싹싹하고,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번듯한 직업 혹은 지위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개살구들을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와서 이들을 바라본다면, 참 멋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개살구는 개살구일 뿐이다. 제 아무리 빛이 좋아도 너무 시고 떫어서 한 입 베어 물기도 어렵다. 그저 멀리서 보았을 때, 달콤하고 좋아 보일 뿐이다.


남의 인생이 그렇다. 그 맛이 어떤지, 어떤 내면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는 모르면서, 빛만 보고 부러워하기가 딱 좋다. sns에 올라오는 인플루언서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적당히 좋은 모습만 보이며, 상호 간에 품위도 지키며, 좋을 때 만나 좋을 때 헤어지는,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우리 주변 누군가의 삶은 이토록 좋아 보인다.


살아보니 그렇다. 그저 보이는 것으로만 남의 인생은 '행복'할 거라고 얼마나 단정 지었던가. 저 사람은 키 크고 날씬해서 좋겠다, 저런 집에 살면 다른 고민은 없겠지? 부모 잘 만나서 팔자 좋구나, 남편이 돈 잘 벌면서 돈 걱정을 다하네~ 복 받은 줄도 모르고. 다들 한 번쯤은 남의 인생을 스쳐 보고, 엿듣고, 함부로 관찰하며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는가. 보이는 것들의 합으로 내려지는 판단의 결과는 늘 부러운 남의 삶, 그보다 못한 나의 삶이다.


그들의 삶이 내 삶보다 나아 보이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다. 내가 그들의 삶을 그만큼 깊이 알지 못해서이다. 나는 내 심연의 아이를 알지만, 타인의 심연을 들여다볼 능력은 없다. 내가 나의 심연을 가리고 숨기는 것만큼, 남도 그의 심연을 들킬세라 꽁꽁 묻어 둔다. 나의 심연도 드러나기 전엔, 그럴듯해 보이는 인생이다. 기억해라. 당신을 친구로 삼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당신의 삶의 어떤 부분을 부러워하고 있다. 나는 아주 사소하고 하찮게 여기는, 너무 당연해서 있는지조차 모르는 부분을 누군가는 갈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닌데? 걔는 부족한 거 하나도 없이 완벽하던데?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집안도 좋고 직업도 좋던데?라고 생각하는 걔도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일톤 트럭 구십대다. 걔랑 나랑 비교해서 당신이 얻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걔의 무결함을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그렇다고 걔의 비운을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다. 걔도 결함이 있겠지,라고 넘겨짚으며 정신승리 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삶에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있고, 어른이라는 이름의 사회성이 고도로 발달한 '걔'들은 그 무게를 어지간해서는 잘 내놓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사실은'이라며 알게 된 그의 심연은 당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깊고 어두울지도 모른다. 그를 부러워했던, 그의 팔자를 동경했던 자신을 탓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그 말을 왜 했지?'라며 이불을 찰지도 모른다. 이건 다 내 얘기다. 예시로 들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이 있지만, 타인의 삶이기에 묻어두도록 한다. 당신의 주변에 심연을 드러내는 자들이 많다면, 어지간한 드라마는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드라마는 엔딩이라도 있어 다행일터인데, 이 삶은 끝을 모른 채 계속해서 내달려야 한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고통을 완벽히 숨긴 채 걸어가야 한다. 16부작 정도면 딱 좋겠는데, 길기도 길다.


함부로 동경하거나 함부로 동정하지 말자. 나의 심연은 내가 책임지자. 우리 모두는 자기의 지옥 속에서 산다. 나의 가벼운 부러움으로 그 지옥에 무게를 더하지 말자. 나도 너도, 빛 좋은 개살구들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내 빛도 빛이다. 나도 빛이 좋다. 너도 개살구다.

keyword
이전 03화사소한 행복의 루틴 생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