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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행복의 루틴 생성하기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버렷!

by 첫둘셋

인생은 끝없는 반복의 여정이다. 우리는 매일 24시간의 하루를 선물 받는다. 내가 살아가는 24시간이 늘 짜릿하고 새롭고 기대된다면 매우 좋겠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하루는 거의 비슷하게 굴러간다. 햄스터의 쳇바퀴 같기도 하고, 시지프스의 형벌 혹은 '신과 함께'의 나태지옥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이렇게 형벌, 지옥, 무가치의 반복으로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안 그래도 거지 같은 삶이 더 거지 같이 느껴질 것이다. 24시간이 선물이 아니라 또 시작해야만 하는 망할 놈의 것, 죽지도 않고 또 왔네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도와주겠다.


나는 '사소한' 행복의 루틴을 설정한다. 여기서 방점은 '사소한'이다. 누군가 자신의 행복을 여행으로 설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해외여행 갈 때만 숨이 쉬어지더라."라고 말하는 이 사람은 일 년에 행복할 수 있는 날이 기껏해야 2주 정도의 여름휴가뿐일 것이다. 나머지의 모든 날은 그 휴가를 기다리며 '버텨야' 하는 날들이 되어버린다. 조금 더 사소해져 보자. "내 행복은 오마카세를 먹는 거야." 이 사람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행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게 또 매번 행복하지도 않은 게, 최고의 오마카세를 먹고 난다면 그 이하 레벨의 오마카세로는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기껏 돈을 썼는데 저번에 먹었던 거기보다 못하다면, 게다가 그 마음이 한 달에 한 번 있는 자신의 '행복 루틴'을 망쳤다고 생각하면, 두 달에 한번 정도 겨우 성공하는 행복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정말 최고의 접객과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오마카세 집을 찾았다고 생각해 보자. 이보다 더 한 집은 이제 찾을 수 없다고 가정했을 때, 매번 갈 때마다 최고로 느꼈던 행복을 똑같은 크기로 보장받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면 이제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제 오마카세는 질렸어. 나는 이제 호텔 뷔페를 행복으로 삼을래."


행복의 기준을 높게 설정할수록, 행복의 주기를 넓게 설정할수록 그것은 더 얻기 힘들고, 자주 느끼기 힘들며, 어느 때는 그보다 더 한 실망감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 기대가 큰 행복이란, 그만큼 실망할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 리스트를 작성해서 루틴으로 만들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러이러한 행동을 하면 나는 반드시 행복할 거야!'라고 종이 울리면 침이 나오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몇 가지 나의 행복 루틴을 소개한다.


1. 하루를 마무리하는 행복 루틴

안타깝게도 나는 아침형 인간이 전혀 아니라 제정신으로 맞이하는 오전 따위는 없다. 오전은 정말이지 거의 몽롱한 상태로,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게 빠르게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하루의 감정을 모든 것을 정리하는 저녁에 두는 편인데, 내가 반드시 행복해지는 시간은 샤워시간이다.

일반인(주로 내 남편, 아들)에게는 조금 뜨겁다 싶은, 조금 쐬고 있으면 허벅지가 불긋하게 열이 오를 정도의 따뜻한 물을 틀고 물줄기를 맞는다. 두피와 얼굴을 뜨거운 물로 씻으면 안 된다고는 하지만, 뭐 어떡하나 나의 정신 건강에 좋은 것을. 뜨거운 열에 모낭이 약해져 머리카락이 빠져버릴 수 있으므로, 머리는 꼭 탈모샴푸로 감는다. 아직 정착한 적은 없지만, 여러 동네의 탈모샴푸를 탐구하며 구석구석 깨끗하게 두피의 기름을 제거한다. 컨디셔너를 얹을 때쯤 되면, 나도 모르게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하는 감각이 들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내뱉는 나를 발견한다. 뭐가 감사한지는 차차 생각해야 하지만, 일단 감사를 뱉고 이유를 하나씩 곱씹어 본다. 오늘은 유독 애들이 내 말을 잘 들었다, 오늘은 저녁밥이 맛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오늘 아무도 안 다쳐서 다행이다, 뭐 이런. 정 없으면 '오늘도 보일러가 고장 나지 않아서 이렇게 뜨끈한 물로 샤워할 수 있다니 너무너무 러키비키입니다, 주님.'이라고 하기도 한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이 루틴을 하루의 시작에 두라고 한다. 아침을 힘차게 시작하고,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 나아가며 시대에 뒤처지지 말라고 한다. 10분 먼저 일어나서 신문을 읽고, 경제의 흐름을 읽고, 위기를 대처하고 어쩌고 하라고 한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점심 먹을 때쯤 정신이 드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말들은 이룰 수도 없는데 괜히 마음을 무겁게만 하는 울산바위 같은 조언들이다. 그러니 마음 편히 나처럼, 하루의 행복을 하루 끝에 두고 행복과 감사가 넘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내가 남보다 빠르게 하루를 열고 성공하고 싶지 않다. 그냥 오늘도 애쓴 나에게 내가 수고했다 말하고, 오늘 하루간 나를 돌보아주신 신께 감사하면 그만이다. 자기 전에는 꼭,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나를 다독여주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하지만 이 행복의 루틴에는 금지사항이 있다. 장기적으로 나를 망칠 수 있는, 혹은 어떤 종류로든 중독 가능성이 있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하루 끝의 달콤함을 위해 매일 맥주 한잔을 마실래. 쉽고, 편하고, 값싼 행복이기는 하지만 당신은 통풍과 알코홀릭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한잔이었다가 나중에는 두 잔이 되고, 처음에는 맥주였지만 다음에는 소주가 되고, 결국에는 위스키가 되어버리는 결말을 나는 안다. 아직 어린 2~30대라면 더더욱 내 말을 깊이 들어야 할 것이다. 2~30대에 자신하던 모든 것은 4~50대의 부끄러움으로 값을 치른다. 누구도 앞날을 알 수 없고, 특별히 건강과 같이 완전히 내 계산을 벗어날 수 있는 문제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2. 곳곳에 배치하는 행복의 아이템

일상의 순간들에 지뢰처럼, 여기저기 행복의 아이템들을 흩뿌려 놓아라. 이것도 반드시 사소해야 한다. 만약 당신의 행복 아이템이 '다이아몬드 반지'뿐이라면, '샤넬백'뿐이라면, '구찌 신발'뿐이라면 일상에서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아, 물론 당신이 늘 샤넬백을 만날 수 있는 부자라면 되게 좋겠다. 하지만 난 아니므로 조금 더 '사소한' 아이템들, 내가 마주치기만 해도 기분이 무조건 좋아지는 아이템들을 나는 선택하는 편이다.

첫 번째는 '계란'이다. 사회초년생 때 계란을 살 때 늘 가격을 보고 샀다. 30구에 5000원 하는 계란을 집으면서,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반드시 난각번호 1, 2번을 달고 있는 저 비싼 무항생제 방사 유정란을 먹어야지.'라고 다짐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때보다 사정이 나아져서 계란을 살 때 가격이 아니라, 앞에 붙어있는 화려한 수식어들을 보고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은 계란을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거의 매일 계란을 먹는데, 냉장고를 열고 계란을 꺼낼 때마다 나름의 자부심이 든다. 나는 닭의 사육환경도 생각하는 사람이야, 나는 이 정도의 사치를 매일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난각번호 1번 먹는다, 하는 유치하고 찬란한.

두 번째는 '파자마'이다. 나도 한때는 모든 여름 반팔티를 잠옷으로 썼더랬다. TV에 나오는 드라마에 주인공이 위아래 세트로 맞춘 파자마를 입고 생활하는 걸 보면서 '집에서 입는 옷을 누가 본다고 저렇게 위아래로 맞춰 입을까?'싶기도 했다. 가난하던 대학생 시절을 지나 사회 초년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내게 '잠을 잘 때만 입는 옷'을 위한 돈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봐야 3~5만 원이면 사는 거였지만, 그 돈이면 밖에서 입을 티셔츠 하나 더 사는 게 낫다는 생각에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결혼하고도 한참 뒤, 아이를 낳고도 한참 뒤에서야 처음으로 남편과 커플 파자마를 맞춰 입었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나만 보는 건데, 우리만 아는 건데도 밖에서 잘 입는 것보다 훨씬 뿌듯했다. 뭔가 나도 이제 티브이에 나오면 위아래를 맞춘 파자마를 입은 모습으로 나가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 취미처럼 파자마를 모았고, 드디어 올해에는 가족 파자마를 입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것은 대학교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서 선물로 준 것인데, '애들은 대충 물려받은 거 입히면 되지.'라고 생각해서 아이들것을 살 여유가 없던 나의 마음에 단비 같은 선물이 되었다. 집에서도 위아래로 정갈하게 맞춰 입고 뒹굴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인생 성공적이다.' 하는 감각이 휘몰아친다.

어떤가, 너무 시시해서 소름이 돋는가? 하지만 행복은 이런 것이다. 너무 시시해서 누구나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파자마 사줘서 너무너무 당연한데? 그렇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당연함이다. 당연한 것들이 많아질수록 당신은 행복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감정은 나의 생각에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내가 의미를 만들고 스토리를 짜다보면, 무엇보다 소중해지고 감사해질 수 있다.


3.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다음 스텝

오마카세의 예처럼 매일 오마카세를 먹는 사람은 곧 질릴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매일 먹는 난각번호 1번 계란에 질리게 될 때쯤을 위해 다음 목표를 정해두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때야 한다? '사소'해야 한다. 나의 다음 스텝은 '고디바 초콜릿의 맛 구별할 줄 알기'이다.

나는 고디바 초콜릿을 한 번도 못 먹어봤다. 내가 먹어본 것은 고디바 초콜릿 매장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이 전부이다. 얼마 전 제주도 출장을 마치며 면세점에서 고디바 초콜릿을 파는 것을 보는데 비싸더라. 물론 그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콜릿'치고 비싸다는 것이다. 차라리 양주였으면 집어 들었을 텐데 그게 초콜릿이라 사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에 초콜릿 먹다가 가산을 탕진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 나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와인이나 양주에 발을 들였다가 거지꼴이 된 사람의 일화는 들어보았어도, 초콜릿을 탐하다 망한 경우는 듣지 못했다. 내가 말하는 사소함은 이런 것이다. 아무리 탐해도 나의 근간을 흔들 수는 없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망설여지는 품목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10년쯤 뒤에는 면세점에서 "나 고디바 초콜릿 이 맛 좋아하니까 사가야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슨 맛이 제일 맛있는지 몰라서 랜덤으로 들어있는 것 말고, 다 먹어봤더니 나는 얘가 제일 마음에 들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재력. 하지만 이 얼마나 이루기 쉬운가! 사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고디바를 쌓아두고 먹을 수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10년 뒤의 뿌듯함을 남겨놓는 낭만을 부려보는 것이다.

10년 뒤의 행복이 상급지로의 이사, G80, 아들의 자사고 입학 등등이라면 이건 사실 행복이 아니라 10년간의 고난이다. 10년간의 스트레스이고 형벌이다. 물론 이뤄진다면 매우 뿌듯하고 그동안의 어려움을 보상받는 느낌이겠지만, 경험 상 그 행복은 그다지 오래가지도, 대단하지도 않더라. 10년간의 고통이 나에게는 더 힘든 부분이라 나는, 10년 뒤에 고디바 초콜릿의 좋아하는 맛 정도를 구별할 줄 알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넘어서야만, 고난을 겪고 나서야만, 뭔가를 이루고 나야만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설정해 두면 삶은 너무 피곤한 것이 된다. 관문은 늘 있고, 산 너머에는 산이 있다. 산을 정복하는 것이 오로지 하나의 목적이라면 우리의 인생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감정들이 너무 많아진다. 넘어도 그만, 안 넘어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피어있는 들풀도 보고, 잠자리도 잡고, 사마귀도 키워보며 산등성이를 마음껏 탐색해 보길 바란다. 그러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산장에서 하루 묵기도 하고, 맑은 개울에 발도 담가보며 지뢰처럼 묻혀있는 행복을 하나씩 발견해 보길 바란다. 삶은 뛰어넘는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베개에 머리 대고 잠들 수 있으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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