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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나의 힘!

삼보 전진을 위한 일보의 후퇴

by 첫둘셋

작년 여름, 신규 때 함께 근무했던 부장님들과 함께 북해도 여행을 다녀왔다. 제일 큰언니 부장님의 정년퇴임 기념 여행인지라 나름 럭셔리하게 준비했었다. 우리는 이 여행을 위해 5년간 곗돈을 부었고, 6개월 전부터 항공과 숙박을 예약하며 계획을 5번이나 수정했으며, 4명 중 3명이 국외운전면허증도 발급받았다. 아주아주 공을 들인 여행이라는 뜻이다. 오타루에서 시작해서 하코다테를 찍고 삿포로까지 원을 그리며 거의 2주를 함께 하며, 온갖 좋은 것들을 다 보고, 듣고, 맛보았다. 나는 보통 잘 먹은 것이 기억에 남는 편인데 매일 같이 후식으로 먹은 유바리 멜론과 북해도산 원유로 만든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진짜 맛있었다. 심심치 않게 구글지도 기준 평점 4.5 이상의 초밥을 맛보았으며, 인당 10만 원이 족히 넘는 대게코스도 먹었다. 삿포로에서는 아이스크림으로 해장을 해야 한다며(술은 마시지 않았다.) 칵테일잔에 담긴 파르페 집에 갔는데 인당 2만 원이 넘더라. 하지만 "평생을 수고하신 우리 부장님의 정년퇴임 기념 여행"이라는 타이틀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과분하지 않았다. 5년간 비축한 자금을 아주 마음껏 써댔다. 먹고 싶으면 먹고, 사고 싶으면 사고, 하고 싶으면 했다. 아주 부족할 것 없는 여행을 누렸다.


그러다가 거의 여행의 끝물에, 그러한 생활을 이미 열흘이상 누리던 중에, 삿포로 그랜드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있는데 불현듯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라는 과분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더 이상 조식이 먹고 싶지 않다. 신선한 연어, 장인의 초밥, 갓 짜낸 원유로 만든 요구르트, 그 어느 것도 더 이상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냥 조식 안 먹고 낮잠이나 자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의 메타인지는 '너 이게 얼마인 줄 아니? 너 다시는 삿포로 그랜드 호텔에 오지 못한단다. 있을 때 많이 먹어두렴!'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부자들은 진짜로 스테이크가 질릴 수도 있겠구나. 열흘 만에, 따지고 보면 일 년에 몇 번 먹지도 못하는 호텔 조식이 질려버리다니! 이게 무슨 진짜로 배부른 소리인가!


사람이 느끼는 속도는 사실 속도가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속도(v)가 아니라 가속도(a)를 느낀다. v=v0+at 이거 너무 오랜만인가?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km로 달리면서도 그다지 빠른 속도감을 느끼지 못한다. 비행기가 시속 700km로 날아가도 진정으로 그 700km/h를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가 느끼는 속도감은 이전 속도에서 지금 속도로 빨라지는 순간, 그 속도 차이만큼의 가속도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시내 주행 중에 택시가 30km/h구간을 지나 갑자기 70km/h로 달리면 엄청나게 빠르다고 느끼기도 하고,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속도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등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100km/h이든 700km/h이든 이미 가속을 끝내고 익숙해져 버리면, 그것을 처음 느꼈을 때만큼의 흥분이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 먹는 호텔 조식은 더 이상 맛있지가 않다. 매일 먹는 장인의 초밥은 생각만 해도 비린 맛이 날 것 같다. 배가 불러 터진 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처음 북해도에 도착해서 먹었던, 별 맛대가리 없던 흔한 관광지의 후토마키보다 신기하지 않다. 이제 익숙해졌다. 첫날 오타루에서 보았던 모든 마그네틱들은 다 귀엽고 뽀용한 매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보다 보니 다 비슷하다. 돈키호테도 질리고, 더 이상 아무것도 사고 싶지 않다. 이미 캐리어 2개 분량을 초과해서 뭘 사버린 탓에, 새로운 것을 봐도 감흥이 없다.


결핍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배고프지 않은 중에 계속해서 먹게 되는 맛있는 음식은, 이 맛있는 걸 맛있게 못 먹는다는 생각에 고통이 2배가 된다. 가장 맛있는 라면은 산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지 아니한가. 우리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핍의 중요성을. 이미 다 채워진 사람은 무엇인가를 더 채울 공간도 없거니와, 이미 채워져 있는 자신의 상태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늘 그랬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기숙사에서 나오게 되어 아무 연고가 없는 서울에서 갑자기 집을 구해야 했었을 때, 나는 서울대 입구역에 있는 뒷골목 주택가의 1평이 조금 넘는 반지하를 골랐었다. 그 당시 시세로 전세 3500만 원, 사회 초년생에게 아주 딱인 매물이었다.(물론 나는 당연히 3500만 원이 없었고, 엄마가 내줬다.) 하지만 사실 우리 집은 반지하에 살아야 할 만큼 가난하지도 않았고, 우리 엄마는 돈을 더 보태줄 테니 조금 더 안전하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반지하에서 살지 않으면, 내 평생 반지하에서 살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서울의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하지만 그때 집을 샀어야 했다. 그때가 저점이었는데!), 나의 월급으로는 번듯한 집에서 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지하에 살아야 할 만큼의 상황은 아니었는데 내가 그곳을 택한 이유는 그다음 스텝 때문이었다. 처음에 엄마가 해주는 돈으로 괜찮은 원룸 혹은 투룸에서 시작하게 된다면, 내가 스스로 완전히 자립해야 할 시기에는(더 이상 부모님께 물질적으로 기댈 수 없을 때에는)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의 주거환경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했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내 월급이 쥐꼬리만 하다는 사실과, 녹록지 않은 서울 물가에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때도 이미 10년 동안 숨만 쉬고 모아도 여기 한 평 살 수 있다는 식의 개그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자발적으로 결핍을 택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는 환경을 세팅해 두고, 내 힘으로 차근차근 올라가기로.


1년간 그곳에서, 수해를 입고, 곰팡이의 공격을 입고, 바퀴벌레의 출몰을 마주하고, 심지어 6개월간 서울대로 교환학생을 와버린 동생과 싱글침대에서 동거를 하며 나는 굉장한 결핍을 맛보았다. 신발장 앞에 세탁기 위에 인덕션이라는, 미친 신자유주의적 효율성을 맛봐버린 나는 이제 어디를 가도 그곳을 궁궐로 여길 준비가 되었다. 아직 사회의 아무것도 맛보지 못한 내가, 그곳에서 최저주거환경을 선택해서 겪으며 그간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따뜻한 온실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모두가 당연히 거실을 끼고, 각자 방이 있고,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고, 주방에서 요리하고 식탁에서 밥 먹는 줄 알던 내가, 새로운 세계로 지경을 넓힘과 동시에, 젊음과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결핍을 경험해 본 것이다.


덕분에 나는 정말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내 남편은 정말 가난했어서, 내가 반지하에 살았던 경험이 없었다면 그와의 결혼을 매우 망설였을 것이 분명하다. 경제적으로 단단한 기반이 없이 결혼한 우리는 예상대로 아주 구린 신혼집을 구하게 되는데, 그래도 괜찮았던 것은 '반지하보다는 낫지'라는 생각 덕분이었다. 그래도 여긴 방이 있네, 그래도 여긴 곰팡이는 안 피네, 그래도 여긴 물에 잠기지는 않네, 그래도 여긴 세탁기가 분리되어 있네. 그래도 여긴, 이라고 생각하게 해 준 젊은 날의 결핍. 덕분에 우리는 하루하루, 매해 나아지는 결혼 생활을 경험 중이다.


당신이 만약 바닥이라면 슬퍼하지 말아라. 당신의 인생은 앞으로 쭉 오를 일만 남았다. 당신은 당신의 힘으로 얻은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마음 또한 얻었다. '당연한 것이 없다.'는 당연한 인생의 진리를 체화하고 실제로 느낄 수 있다. 남들은 불행이라 여길 순간에도, 이전보다 나아진 스스로를 바라보며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추가로 나는 제일 좋은 것은 미래의 나를 위해 늘 남겨둔다. 아직 내 나이 30대, 여전히 젊다. 나의 40대가, 50대가, 60대가 지금보다 더 나았으면 좋겠다. 벌써 5성급 호텔에 당연히 묵고 싶지 않다. 벌써부터 비싼 가방을 들고 다니고 싶지 않다. 나에게는 이미 충분한(?) 능력이 있지만, 미래의 나를 위해 더 좋고 더 황홀한 것들은 많이 남겨두고 싶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매번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나 이런 거 처음이야~'라며 호들갑 떨 수 있게, 이미 좋은 것을 다 알아버려서 남은 인생이 너무 지루하지 않게.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많고,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산다. 지금 가질 수 없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나중에 갖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그리며 기다리자. 산이 높을수록 라면은 맛있다. 오래 기다리고 소망한 만큼 귀중하다. 당신의 삶이 지금의 결핍을 기꺼이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나중에 더 크게 돌아올 환희의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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