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우리 엄마 시점

삶이 힘들 때는 그 눈망울을 기억하도록

by 첫둘셋

2025년 시리즈로 끝내려고 했던 "꽤 괜찮게 살아지는 마인드셋"이 2026년을 맞아버린 것은 전적으로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 많은 까닭이고, 또 금세 흥미를 잃고 다른 곳에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주의력결핍자이고, 무언가를 하는 시간보다 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긴, 전형적인 발산적 인간인 나는 도저히 무언가에 수렴하여 집중하고 제대로 끝맺는 법이 없다. 용두사미의 표본, 창의력과 에너지만 넘치는, 눈이 오는 것을 방금 막 목격한 강아지 같은 인생. 그런 나의 모습이 나도 지독하게 지긋지긋하다. 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은 '출근'밖에 없다는 자조적 표현도, 작심삼일도 삼일 치를 몰아서 하고 이틀은 쉬어버리는 꼼수를 쓰는 내게는 너무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냥저냥 이런 나의 인생을 긍정하며 '괜찮게'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우리 엄마 때문이리라. 모든 부모가 그렇다고 한다면 당신의 엄마라고도 말하고 싶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부모도 많다는 것을 알아버린 터라 소심하게 '우리 엄마'로 한정하도록 하겠다. 나를 살게 하는 나의 애순이, 우리 엄마의 눈망울,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눈으로 바라보면 나의 인생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증거는, 기억은 너무 많아서 다 쓸 수도 없다. 얼마나 유난이고,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도 말할 것도 없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는 점심시간마다 내 도시락을 확인하면서 "우리 엄마도 쟤네 엄마처럼 도시락 싸주면, 나도 반에서 일등 할 수 있는데."라고 말했다가, "쟤는 반에서 일등이라 쟤네 엄마가 저렇게 싸주는 거야."라는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반에서 일등을 못해도, 하다 하다 꼴등을 해도 우리 엄마는 그런 도시락을 싸주고도 남을 것이란 것을. 오늘은 시금치가 맛있었다고 말했다가, 락인락통 한가득 채워진 시금치를 일주일 내내 받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나는, 시금치가 맛있지만 일주일 내내 먹을 정도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 뒤로는 내가 그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틀 내내 먹을 만큼, 한 달 내내 먹어도 좋을 만큼, 뭐 이런 식으로. 물론 시금치만 싸준 것은 아니다. 락인락 통 가득한 시금치는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의 추가 반찬이 되었고, 그 밖에도 훌륭한 반찬통은 또 따로 있었다. 보통 친구들은 동그랗게 3단으로 되어 도시락가방에 쏙 들어가는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면, 나는 늘 책가방보다 무거운 락앤락 통을 거대한 쇼핑백에 넣어 다녔다.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사랑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침마다 우리 엄마는 묵직한 도시락을 나에게 내밀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더 했다. 사실 고등학교에 가서는 급식실이 생겨서 도시락을 쌀 필요도 없었는데, 엄마는 2교시 쉬는 시간 간식, 6교시 쉬는 시간 간식, 친구들과 나눠 먹을 간식, 나 혼자 먹을 간식 등등을 매일같이 싸줬다. 그때는 쉬는 시간에 부리나케 매점으로 달려가서 10분 안에 허겁지겁 컵라면을 해치우고 돌아오는 일탈(?)이 챌린지처럼 유행했었는데, 불행히도 나는, 행복하게도 나는 그런 일탈을 누릴 여유조차 없었다. 우리 엄마가 싸준 간식을 모두 해치우기에도 쉬는 시간과 나의 친구는 적었다.


엄마에게 나는 무조건 최고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소풍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남자아이들 무리와 인기투표 같은 것을 했었는데, 짧은 머리 안경잽이였던 나는 한 표도 받지 못했다. 그 앞에서는 차마 내색도 못하다가, 집에 와서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지더라.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던 것도 아닌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열 살짜리 남자애의 선택이 내 자존심을 할퀴었다. 그때도 엄마는 그랬다.

"엄마 눈엔 네가 최고야. 세상에서 제일 예뻐."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에 나는 여전히 가장 어린아이였다. 그녀는 스물네 살이나 먹은 딸이 발령을 받아 첫 근을 하는 날, 굳이 굳이 서울의 6평짜리 자취방까지 찾아와 내 손을 잡고 출근길을 함께 했다. 내가 8살 때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하던 그날처럼. 스물여섯 살 먹은 딸이 집에 들어온 바퀴벌레를 어찌하지 못하고 잠을 설쳤다는 전화에, 한달음에 자취방으로 찾아와 바퀴벌레를 잡고는 얼굴도 보지 않고 홀연히 왕복 6시간의 길을 내려갔다. 내가 울까 봐, 속상할까 봐, 심심할까 봐, 상처받았을까 봐, 힘들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본인은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나에게는 늘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였다.

"너는 다 잘해. 너는 진짜로 다 해낼 거야."


그녀는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유일한 요구는 "이것 좀 먹어라."와 같은 것이었다.

"잠깐 일어나서 밥 먹고 자."

"이거 한 그릇만 쭉 마셔봐. 몸에 좋대."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엄마가 해줄게."

하루에 14시간을 자도, 오후 2시까지 침대에 곰팡이처럼 붙어있어도, 한 번도 나를 재촉하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너는 원체 몸이 약해서, 일어날 기력이 없어서 잠을 그렇게 자는 거라며. 이런 몸으로 학교 다니느라 고생이 많다. 방학 때라도 푹 쉬어야지. 그래서 나는 방학특강이라든가, 입시대비반이라든가, 무슨무슨 선행반을 다녀본 기억이 없다. 그냥 방학 때는 아무도 건들지 않는 침대 위에서 죽은 듯 잠을 잤다.


우리 엄마 눈으로 본 나는 늘 예쁘고, 늘 어리고, 늘 괜찮고, 늘 대단하고, 늘 안쓰럽다. 내가 내 삶을 부정하고 원망해도, 그녀의 눈으로 보는 내 인생은 늘 대견하고, 측은하고, 멋지다. 마치 나라는 연예인의 오래된 팬 같은 존재랄까. 나의 실수도 귀엽다며 짤을 만들어 간직하는 1 호팬의 모습이랄까. 연예인도 아닌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그 사랑이 무한하고,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이런 나 임에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우리 엄마가 당신에게도 있다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긍정해 주는 존재가. 만약 없다면, 그것이 당신 자신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우리 엄마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괜찮아, 좀 더 쉬어. 더 자도 되는데, 일어나서 이것만 먹고 자자. 너는 진짜 다 잘해, 최고야.라고 말해주는 우리 엄마. 나보다 더 바들바들 떨며,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주는 존재. 모든 낙심을 도닥여주고, 모든 성취를 나보다 더 대견해하는 존재. 그 작고 어린 손으로 움켜쥐는 모든 것에 대한 찬사를 마다하지 않는 존재. 모두에게 이런 1 호팬이 있기를, 내가 나의 1 호팬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그 간절한 눈망울로 자신의 인생을 응원해 줄 수 있기를.


이 연재는 여기에서 마친다. 앞으로 다른 시리즈로 돌아올지, 어떨지는 내일모레의 계획도 없는 나라서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내 머릿속에는 늘 내뱉고 싶은 문장들 투성이이니 오래 지나지 않아 돌아오겠지 아마도! 2026년 모두, 가장 따뜻한 시선으로 각자의 인생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한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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