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은 죽는다.

그것도 반드시

by 첫둘셋

외할아버지께서 얼마 전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치매 환자 셨기 때문이다. 사실 치매환자 치고 꽤 오랫동안 집에서 모셨는데, 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최소 성인 넷이 필요했다. 평일 낮에는 요양보호사가 왔고, 요양보호사가 없는 저녁 시간에는 셋째 이모가 그의 곁을 지켰다. 셋째 이모의 본가는 경기도였는데, 주말에는 본가로 돌아가서 가족들을 챙겼고 그 공백은 큰외삼촌과 우리 엄마가 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큰 문제가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밤에 일어나서 집 밖을 산책하다가 넘어지는 일이 많았고, 집을 잘 못 찾아가 혼자 사시는 할머니를 두려움에 떨게 하기도 하셨다. 치매로 기억은 자꾸 희미해져 갔지만, 평생 동안 운동을 한 그의 몸은 여전히 건장했기에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성인 남성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처음에는 침대 옆에 긴 봉이 하나 설치되었고, 그다음에는 화장실 벽을 따라 가로 선이 추가되었다. 나중에는 집만 봐도 할아버지의 궤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큰외삼촌과, 우리 엄마와, 셋째 이모는 버텼다. 큰외삼촌은 할아버지의 존엄한 죽음을 바랐다. 슬하에 자녀를 여섯이나 두고서도,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생각하셨다. 할아버지는 그저 태어날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고, 태어났을 때의 자신을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키우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자꾸만 어려져 가는 할아버지를 자식 된 도리로 응당 모시는 것이 맞다고 그는 생각했다.


정말로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키워야 했다. 아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너무 키가 크고 힘이 셌다는 것이다. 그는 입혀 놓은 기저귀를 뜯을 수 있었고, 빨래나 목욕을 거부할 수 있었다. 화장실과 침실의 냄새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을 즈음, 셋째 이모가 항복을 선언했다. 결국 그는 요양원에 입소했다.


항복을 선언한 셋째 이모도, 최대한 말리려던 큰외삼촌도, 더 이상 어찌할 수없다는 것을 이해한 우리 엄마도, 모두 슬퍼했다. 요양원에 모신다고 갑자기 죽는 것도 아니건만, 그들은 크게 슬퍼했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집에 계신 것만으로도, 그의 병이 그리 심하지 않다고,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양원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제 더 이상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마 남은 생을 그곳에서 보내게 되시리라.


할아버지는 굉장한 멋쟁이셨다. 번화가도 하나 없는 그 시골에 사시면서도 늘 위아래 정장에 멋진 베레모를 쓰고 다니셨다. 누가 봐도 꽤 성공한 지역유지라고 생각할 만큼 자기를 가꿀 줄 아는 남자였다. 게다가 취향은 얼마나 확고한지, 요즘 MZ들 못지않은 호불호를 지니셨다. 생크림케이크를 누구보다 좋아하셔서, 본인의 생신케이크는 늘 통으로 챙겨 가셨다. 보통 파티 자리에서 나누어 먹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건 내 거다."라며 야무지게 챙겨가시는 모습이 보통의 할아버지와 달라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았다. 취미는 활쏘기로 아마추어 국궁 대회에서 수상한 상장과 메달들이 벽의 한쪽 면에 자랑스레 걸려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이런 할아버지의 말년을 상상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만큼은 죽기 직전까지도 활을 쏘고, 베레모를 쓰며, 생크림케이크를 드실 줄 알았다.


새로 생긴 요양원에는 사람 소리보다 TV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복도에 껌자국 하나 없는 깔끔한 시설과 2인 1실의 쾌적함도 입소자들의 생기 없는 표정과 초점 없는 눈앞에서는 의미가 없어 보였다. 수일 내에 도래할 마지막 순간을 그저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 짙은 패배감이, 혹은 그조차도 알 수없어 보이는 옅은 기력만이 무겁게 깔려있었다. 다행인 건 그 와중에도 우리 할아버지가 제일 살아있는 자의 생기가 느껴졌고, 불행히도 그래서 야간 요양사들이 더 이상 앉은 채로 졸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멋지게 살던 양반이..."

엄마는 요양원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제 아무리 멋진 인생을 살았어도, 마지막 순간 앞에 무력해지는 것이 인생이다. 누구보다, 특별하게, 내로라할 만큼 멋지게 사셨기에, 자식들의 상실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인간은 영원할 것처럼 산다. 삶이 무한히 이어질 것처럼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어떤 때는 지나치게 권태로워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리해서 성과를 내려 달음질하기도 한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격양된 감각을 뱉기도 하며, 어떤 순간은 마치 죽은 것처럼 잠잠히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죽음이 진짜 무엇인지 모른다.


보통은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제야 삶을 되돌아본다. 평생 딩크로 살겠다던 친구 부부는 남편의 암 발병 소식과 동시에 딩크를 포기하고 아이를 가졌다. 다행히 오진이었고, 현재 두 아이를 낳아 잘 살고 있다. 앞만 보고 주어진 일을 착실히 하던 경주마 같던 친구는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싶다고 했다. 남은 인생은 남이 시키는 일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며. 그럴듯한 성과도, 남들보다 빠른 승진도, 괜찮게 잘 해온 사회생활도, 죽음 앞에 의미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을 탐색하고 원한다면 언제든 쟁취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믿었겠지만, 이것저것 채 해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리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 목 메지 않아도 된다. 물론 진실로 원한다면, 그렇게 목 메도 좋다. 죽음을 공포로 맞이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삶이 결국 유한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당장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일 죽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의미 있다면 그래도 좋다. 하지만 열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고도, 그저 '사과나무만 심다가 끝나버린 인생'이라며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것은 같은 사과나무가 아닐 것이다. 재밌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의미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별 것도 없지만, 그 별 것도 없는 나의 정원을 잘 가꾸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그러니 힘내라. 아니 힘내지 말아라. 죽을 만큼 애써보아라. 하지만 결코 죽음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단단하게 살아라.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누군가의 뒤꽁무니 좇지 말고, 어딘가에 성공이 있다고 믿지 말고. 어차피 걔도 죽는다.


삶이 공평한 것은 누구나 죽기 때문이다.

삶이 공평한 것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삶이 공평한 것은 생과 사를 여전히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공평한 삶을 당신의 의미로 채워라. 내일 죽어도, 두렵지 않을 수 있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