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인생에 절대로란 없지만 말이야.
불안도 유전이 되는 것일까.
우리 둘째는 밤마다 무서운 상상에 시달린다.
"엄마, 무서운 생각이 나서 괴로워."
라고 하며 내 품을 파고들고는, 눈을 가리거나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무슨 생각이 나는데?"
라고 묻지만 황급히 내 입을 조그마한 두 손으로 막으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우리 집엔 티브이도 없고, 아이들 스마트폰도 없어서 딱히 유해한 콘텐츠에 닿을 방법이 없다. 학교에서 만나는 소수의 또래 친구들 입에서 나오는 괴담 정도가 그나마 추측가능한 공포 제공지랄까? 하지만 그의 뇌는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밤마다 형체 없는 두려움과 싸우느라 진을 뺀다. 가장 안전한 우리 집, 가장 편안한 엄마의 곁에서도. 그러면서 행여 무형의 무언가에 해코지라도 당하진 않을까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는 것이다.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겁이 많았다. 신생아 시절에는 별거 아닌 소리에도 깜짝 놀라 깨기 일쑤였고, 그렇게 잠에서 깰 때면 양팔로 내 목을 힘껏 껴안았다. 나는 고작 4kg 정도 되는 아가가 이 정도의 완력이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었다. 낯선 사람도, 낯선 공간도, 낯선 경험도 일단은 무서워하고 울어재껴 버리는 둘째에게 '이곳은 안전해', '이곳은 편안해', '이곳은 괜찮아'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더랬다. 하필이면 모험심이 강한 엄마를 만난 탓에 타의로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피곤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만, 그에게 억지로 도전을 강요하거나 위험을 무릅쓰게 한 일은 없다. 그럼에도 그는 늘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아가,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 우리 아가가 머릿속으로 무슨 상상을 하는지 엄마는 모르지만, 무슨
상상을 하든지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단다. 알겠지?"
"내가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우리 아가 이제 8살이잖아. 지난 8년간 지금 머릿속에 있는 일이 한 번이라도 일어난 적 있어?"
"아니, 없어."
"그래. 그러면 그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걱정 말고 자자."
하지만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닌 것이 나의 어린 시절도 그와 비슷했다. 대충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잠을 자려고 누우면 온갖 세상의 불행들이 나의 뇌세포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전혀 현실성이 없는 좀비 떼들부터, 박진감 넘치는 전쟁까지. 자려고만 누우면 내가 누운 곳이 심야괴담회 그 자체였다. 그중 가장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나를 괴롭게 한 생각은 부모님의 장례식이었다. 아직 청소년인 내가, 나보다 어린 두 동생들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시작되는 부모님의 장례식. 스무 살이 되어 본가를 떠나기 전까지 잠들 때면 이 상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결국에는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꽤 건강하셨고, 재정적인 문제도 없었고, 화목했음에도, 그냥 그랬다.
지금은 어떻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그렇다. 결혼 후에는 대상만 바뀌어서 '남편의 장례식'이 되었고, 아이를 출산한 후에는 '아이의 장례식'이 되었다. 첫 아이를 낳고 나서 1년 동안은 잠이란 것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 내가 잠든 후에 혹여나 아이가 죽을까 봐 시시때때로 일어나 아이의 들숨과 날숨을 확인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계속해서 말한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니, 일단 안심하고 자라고.
물론, 이것은 일어날 일이다.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도 세상을 떠날 것이고, 내 남편도 세상을 떠날 것이고, 내 자식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시기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그래서 매일 밤 눈물바람으로 잠에 드는 것은,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수시로 깨어 내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은 정말로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아니다.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가? 아니다. 실제로 문제가 닥쳤을 때에 도움이 되는가? 막상 그렇지도 않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불안 속에 사느니 이제 그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막상 닥치면 또 미래의 내가 알아서 헤쳐나가겠지.
당신 마음속의 불안을,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로 치부하고 넘기는 것이 오히려 나을 때가 있다. 지금 걱정해서 해결되는 것이 없다면, 앞으로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보통은 앞으로의 나의 생애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일어난다면, 그때의 나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강한 미래의 나일 것이기 때문에 잘 헤쳐나갈 것이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고, 내일의 나는 더 발전해 있을 것이고, 내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을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다 괜찮다고.
8살 아들에게 해주는 말은, 내가 38살의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
그리고 만약 일어난다 해도, 그땐 다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