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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쟤보다 낫지

에서 '쟤'로 살기

by 첫둘셋

우리 집은 세 자매였다. 나는 첫째였고.


어린 시절 오밀조밀 눈코입이 다 동그랗던 나는 내 나이가 한자릿수일 때까지는 무지하게 예뻤었다. 객관적 증거자료로는 8살 때 이름도 유치한 '예쁜이 선발대회'에 나가 '공주상'을 받아 온 경력이 있다. 놀랍게도 감동 실화! 그러다 사춘기 빔을 맞아 여드름이 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진하며 안경 도수가 점점 높아지면서, 늦은 밤 공부하는 습관에 마지막 성장기를 놓쳐버리면서, 나의 외모버프는 끝이 나고야 만다.


내가 제일 못생겼던 그때, 갑자기 우리 둘째에게 인생의 리즈가 찾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유달리 남성스러워 취학 전엔 빡빡이로, 초등학교 시절에는 코흘리개로 불리던 나의 부하이자 할아버지의 장군이 2차 성징을 겪으며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다모임'에서 핫한 네임드 남학생들에게 연락을 받기도 하고, 전교회장 오빠랑 사귀기도 하고, 막대과자의 날에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막대과자를 받아오는 등 전성기를 알차게 누렸다. 그녀가 중학교에서 오디션을 거쳐 학생 대표로 찍은 뮤직비디오에는, 발연기라고 하기에도 과분한 그녀의 연기와 그럼에도 너무 예뻤던 긴 머리의 동생년이 공존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막내는 노력형 인재였다. 나와 둘째는 빠르게 끝나버린 전성기 탓인지 그냥저냥 생긴 대로 사는 편이었는데 막내는 달랐다. 그녀는 우리 중 처음으로 용돈을 모아 고데기를 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앞머리를 매만지는, 안경 말고 렌즈도 낄 줄 아는 적극적 그루밍족이었다. 그녀는 메뚜기 같던 어린 시절을 거쳐 부단한 노력과 관리로 찹쌀떡 같은 청소년기를 지나, 매력적인 성인 여자가 되었다. 삼선슬리퍼와 츄리닝 한 벌로 한 학기를 때우던 나와 달리, 공대에 가서 남자친구 말고 남자 사람 친구만 잔뜩 사귀던 둘째와 달리, 그녀는 옷도 좀 입을 줄 알고, 멋도 좀 부릴 줄 아는 언니가 되었다. 여전히 우리 중 유일하게 색조화장을 할 줄 알고, 끈나시를 입고 돌아다닐 줄 알며, 화장 전 후의 차이를 보이는 인물이다.


설명이 장황했다. 지금도 매우 친한, 지금도 가끔 싸우는, 지금도 어린 시절과 다름없는 우애를 자랑하는 우리들이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나도 가까운, 그리고 당연한 비교대상이었다.


우리 셋이 함께 하는 자리에는 으레, 어른들의 비교와 평가가 이어졌다.

"나는 이 집 첫째가 어릴 때부터 제일 예뻤어."

"아니 근데 지금은 셋째가 제일 이쁘지 않아? 나는 옛날부터 셋째가 제일 이쁘다고 했는데?"

"첫째랑 셋째는 좀 닮았는데, 둘째는 다른 매력이 있어. 콧대가 아주 날렵해."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게 오고 가는 말들은 누구를 위한 말들이었을까. 처음엔 칭찬이라고 생각했고, 다음번엔 기분이 조금 나쁜 것도 같았는데, 결국은 그냥 싱긋 웃고 말아야 할 일이었다.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지나갔지만, 그런 날엔 꼭 별 생각도 없던 내가 동생들과 나를 비교하고 있더라.


그래도 내가 더 낫지 않나? 아니 외모가 뭐가 중요해, 내가 제일 공부 잘하는데 뭘.

니, 내가 제일 잘나야만 해? 아무래도 내가 언니니까? 아니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 근데 짜증 나게 셋을 세워놓고 누가 이쁘니 마니 뭐라는 거야?


그냥 우리는 좀 바보처럼 노는 걸 좋아했다. 거봉 한입에 먹기 놀이하다가 셋 다 목구멍에 포도알이 박혀서 숨이 막혀도 기어이 셋 다 하는 꼴을 봐야만 했고, 한 명이 똥 쌀 때는 꼭 다른 한 명이 무섭지 않게 문 앞에서 얘기를 나눠줘야 했다. 틈만 나면 2대 1로 편을 먹고 한 명을 다구리 시켰고, 누군가 발음을 실수하면 한 달 내내 그 단어를 바꿔서 발음했다. 밖에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조롱당했다면 분명히 눈물을 흘렸겠지만, 그냥 우리끼리는 괜찮았다. 이런 나의 모자라지만 착한 부하들과 내가 같은 선상에 놓여 비교를 당하는 감각은 매우 불쾌하면서도 은근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사람들은 남과 비교하는 것을 숨 쉬듯 즐기는 것일까. 비교하지 않고는 인정하고 칭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일까. 살면서 들어온 말들이 다 이따위 것들이라, 나도 어쩔 수 없이 의식보다 앞서 남과 나를 저울에 달아보는 것일까. 누군가를 기준으로 우월감도 열등감도 느끼고 싶지 않은데, 타인의 행복과 불행뒤에 나의 불안과 안도가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동생들이라 하더라도.


한동안은 이 감각 자체를 부정했다. 누구보다 우월하다는 감각, 열등하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 자체에 화들짝 놀라며 스스로의 낮은 자존감과 천박한 의식을 타박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이미 배워버린 모국어처럼, 되돌릴 수 없는 '비교'는 행위보다는 반응에 가까웠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셨던 조상님들도 만면으로는 무한한 축하를 건네면서도 어쩔 수 없는 위경련을 겪었을 것이리라. 누구도 원하지 않을 감각이겠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의 신체는 두뇌보다 이리도 정직한 것을. 그래서 그냥 즐기기로 했다. 우월감이고 열등감이고, 생각도 하기 전에 이미 덮쳐오는 이 감각들은 내가 노력해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평생을 수련해도 결국 떨쳐내지 못할 터이니.


술래잡기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나는 이번 판에 술래일 수 있지만, 다음 판에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한 사람만 술래를 하면 재미가 없다. 유달리 달리기에 특화된 누군가가 있지 않은 이상,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끼리는 고만고만하게, 제법 공평하게 서로 돌아가며 술래를 맡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함께 술래잡기를 하는 하나의 무리인 것이다.


내가 쟤보다 나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는 또 내가 '쟤'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쟤'가 되는 것이 무서워서 그렇게 뛰어다녔다면, 힘들었다면, 이참에 '쟤'가 되어버리면 슬렁슬렁 걸어 다닐 수 있게 된다. '쟤'가 되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무서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면, 이번 판에 '쟤' 한 번 되어 주는 일이 그렇게 큰 일도 아니다. 어차피 이 판에는 영원한 술래도 없고, 영원한 시민도 없다. 그냥 우리끼리 술래잡기하는 게, 또 다른 술래가 생겨서 재밌게 한 판 뛰는 게 재미있는 거지 뭐.


어차피 비교는 우리 무리에서만 한다. 뭐, 딱히 이재용이 부자라서 배 아픈 사람 있나? 박보검이 너무 잘생겨서 배 아픈 사람 있어? 없다. 비교가 이렇게 좁다. 그냥 내가 놀던 무리에서, 내 웅덩이에서 옆에 스치는 친구가 '쟤'가 되고, '내'가 된다. 그러니까 그냥 술래잡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자. 한 번은 니가 '쟤'하고, 한 번은 내가 '쟤'하고. 돌아가면서 하니까 쌤쌤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많이 길다. 10대 때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많던 거, 20대 때 좋은 대학 들어가서 과잠 입고 다니던 거, 30대 때 결혼 잘했다고 여기저기서 부러운 소리 듣는 거, 다 그냥 한때다. 인기 많던 애 부러울 수 있고, 대학 잘 간 애 부러울 수 있고, 시집 잘 간 애 부러울 수 있지만 뭐, 40대부터는 뭐 있을지 아직 모르잖아? 나중에는 고기 씹을 수 있는 애가, 직립 보행 오래 할 수 있는 애가, 자기 집 비밀번호 안 까먹고 기억하는 애가 부러워지는 날이 또 올 거다. 비교가 이렇게 별거 아니다. 몇 번이고 뒤집히고, 몇 번이고 예상을 빗나간다.


그러니 어떠한 감정이 밀려오더라도, 피할 수 없으니 받아들이자.

얘들아, 이번에는 내가 '쟤'다. 이번 판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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