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과 늙음에 관하여
15년 차 초등교사인 나에게 '초등교사'라는 직업의 특징을 묻는다면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스킬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답할 수 있겠다. 저학년의 경우 '교사'보다는 '사육사'에 가깝고, 고학년의 경우 '감정 관리사'(안 좋은 말로 감정 쓰레기통)에 가깝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저학년 담임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늘 감정 관리사로 일했고, 그래서 그 분야는 조금 자신이 있기도 하다.
요즈음에는 사춘기가 4학년 2학기 즈음 시작한다.(물론 이것은 여학생 기준이고, 남학생들의 경우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공만 쫓아다니기도 한다.) 몇몇의 여자아이들이 이때부터 초경을 시작하면서 몸과 마음 모두 훌쩍 큰다. 알 수 없는 짜증과 눈물이 늘고, 본격적으로 친구들과 무리 짓고 남을 험담하기 시작한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아침에 엄마와 싸우고 등교해서 하루 종일 나와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책상만 응시하기도 한다. 급식을 먹다가 갑자기 울면서 나가는 학생도 있고, 분명히 교실에서는 잘 놀다 들어갔는데 모종의 이유로 식음을 전폐하거나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학부모님의 걱정스러운 연락이 오기도 한다. 한 명의 여왕벌이 학급 전체를 장악하여 수하들을 거느리는 경우도 있고, 그들을 욕하면서도 그들 무리에 끼고 싶어서 두리번거리는 친구들도 보인다. 집에 한 명만 있어도 속이 터지는 사춘기 여학생이 우리 반엔 늘 열댓 명 정도 있고, 그들 하나하나의 감정을 살피는 일은 노동 중에 중노동, 극한의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능숙한 감정 관리사는 아무리 그들의 고민과 생각이 어리고, 별 거 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절대로 티 내지 않는다. 무조건 공감해 주는 유병재처럼 경청하고, 감정을 읽고, 해결책을 제시(물론 이것도 너무 단정적으로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이러면 너의 마음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선생님은 이럴 때 보통 이렇게 하는 편인데, 한번 시도해 보고 우리 또 얘기 나눠 볼까? 등 이 부분에서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해주는 일련의 과정을 거의 매일 거친다. 매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퇴근시간이 되면 녹초가 되어버리는데, 이 일을 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이러한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별 것도 아닌 걸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나도 사춘기 때에 다 겪은 일이면서(밥 먹다 엄마랑 싸운 것, 친구가 인사를 안 했거나 띠껍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몇 달간 말도 안 한 것, 동생이 빡치게 해서 엉엉 울면서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 모두 생각해 보면 제정신 아니었네 나도) 지나고 보면 되게 별일 아니고, 엄청 우스워진다. 조금 더 커서 고 3 때 나 대학교 못 가면 선생님이 책임질 거냐면서 소리 지르고 운 것(근데 나는 전교 2~3등이었다. 내가 대학을 못 가면 누가 가나. 그냥 고 3인데, 나는 이과인데, 근현대사 공부 해야 되는 게 화나서 교무실 뒤집어엎었다.), 대학교 들어가서 나 빼고 다 옷 잘 입고 다닌다고 엄마한테 썽내서 엄마가 용돈 30만 원 더 부쳐 준 것, 첫 번째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도 제대로 못 헤어져서 그 뒤로 2년 더 연락한 것 등등 그때는 진짜 뒤지게 힘들고, 인생 망한 것 같고, 밥도 못 먹게 힘들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냥 이불 몇 번 더 차고 말 에피소드들이다.
나이 듦의 좋은 점은 그래서 이러한 것들에 조금은 의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요동치는 나의 감정도 어지간히 다스릴 수 있게 되고, 예전에는 일주일 식음전폐하던 것 이제는 삼일이면 끝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싸워버려야 속이 풀리던걸 꾹 참고 맥주 한 캔(0.00%)에 털어버릴 수 있게 되고,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문제도 아니다 하며 우야무야 넘어갈 수 있게 된 것 말이다. 그러다 며칠 전에는 또 누가 툭 던진 말에 기분이 나빠서 홀로 사흘 정도 꽁해 있었는데, 그러면서 스스로
'나 아직도 어리구나!'
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남의 말에 이 정도로 흔들리다니 나 아직 애기구나. 나 아직 조금 더 나이를 먹어야겠구나. 나 아직 타인의 판단에 휘청거리는 병아리구나. 조금 더 무게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언제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불혹이라 불리는 마흔 살이 되면 정말 초연해질 수 있을까.
부쩍 얼굴에 모공이 넓어져 뷰티 디바이스를 장만했다. 머리숱도 원래 적었지만 요즘 더 많이 빠지는 머리칼이 신경 쓰여 두피마사지 기기도 샀다. 공황장애 약은 벌써 6년째 복용 중이고, 고지혈증 약도 4년째 복용 중이다. 아직 마흔이 안되었는데, 경동맥 나이는 오십 대 중반이 나왔다. 배드민턴을 칠 때 무릎보호대를 하지 않으면 무릎이 욱신거린다. 오른쪽 승모근이 굳어져서 이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릴 때마다 뚜둑하는 소리가 난다. 늙는 것은 여러모로 속상한 일이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고, 내 머릿속에 각인된 리즈 시절의 나보다 점점 더 낡아지는 스스로를 매일 마주하는 것이다. 이제는 무너져버린 턱선에 더 이상 셀카 찍는 것이 즐겁지 않고, 휑해지는 정수리를 가려보고자 산 앞머리 가발은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해 옷장에 처박혔다.
그럼에도 20대로 돌아갈래? 40대로 빨리 갈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40대 쪽이다. 몸의 낡아짐은 어쩔 수 없지만, 내면의 내가 강해지고 깊어지는 것이 더 궁금하다. 무력하게 부유하던 내가 얼마나 더 뿌리내리고 얼마나 더 많은 열매들을 맺을지 궁금하다. 세상 모든 것에 초연해져 머리만 안 깎았지 비구니와 다름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지금의 나도 그때에는 우습다 깔깔거리며, 지금의 고민도 그때에는 별 거 아니었노라 말하며 잘 이겨내었음을 스스로 기특해하는 나 자신을 얼른 마주하고 싶다.
늙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더 깊어지고, 더 단단해지고, 더 멋있어질 나의 인생을 믿자. 이 모든 것이 즐거운 한 편의 이야기였노라 말할 수 있을, 확신 있는 중년을 기대하자. 우리는 낡아지는 것이 아니다. 깊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