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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Feb 11. 2020

독일 교육의 기회는 평등할까?

사회적 격차의 존속과 점진적 개선 

섬세한 독자는 알겠지만 대통령 연설에서 차용해온 제목이다.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의도야 좋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주장인데 정치의 논리는 머리로 와 닿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사회적 상승 폭이 다른 나라보다 낮다는 말이 있다. 의외일 수도 있지만 독일은 인문계-실업계-직업계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학교의 선택과 입학, 그에 따른 진로 방향이 5학년부터 정해진다. 학교 계열 간의 이동이 가능하지만 만약 처음부터 지식노동 진로와 가장 거리가 먼 직업계 학교에 갔다면 부모님의 교육환경과 관련이 높고 그 말은 계급과 소득과도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문화적으로 지식형 진로와의 친밀도가 낮으니 만약에 자녀가 그쪽으로 잠재력이 있어도 양성되거나 발견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런 학교 계열의 장점도 있는데, 전문 기술직 수습 과정이 체계적이라는 게 있겠고, 마찬가지로 모든 계열들이 각자 잘하고 의도하는 사회 분야들에 집중할 수 있다는 말도 되겠다. 


여기서 그나마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은 이민자 가정의 2, 3세들이다. 이민 역사는 다양해서 각 나라와 시대의 개별적 맥락에 따라 이민자들이 지니고 오는 교육 수준은 꽤 천차만별이다. 고학력도, 저학력도 자국에 기회가 없으면 이민 올 수 있는 것이고, 그 외에도 이민의 동기는 알다시피 한두 가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확실한 건, 교육의 기회가 협소했던 삶을 떠나서 온 저학력 이민자들의 경우에 그들의 자녀의 잠재력은 더욱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경우, 사회적 지위 상승의 폭이 좁은 나라에서 유리천장에 부딪힐 수도 있을뿐더러 애초에 부딪힐 기회가 없을 수 있다.


오늘의 기사는 이민자 자녀이자, 사회학자이고 교육학자인 엘-마파라니 교수와의 인터뷰이다. 그는 70년대 시리아에서 이민 온 부모님 아래서 1978년 출생했고 집 앞이라는 이유로 기독교 유치원을 다녔다. 그는 개천에서 용 난 사례는 아니지만 이민자 자녀들의 사회적 교화에 대한 객관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 같다. 이민자들의 발전적 성공을 누구보다 원하지만 전반적으로 모두가 성취하기 얼마나 어려운지를 제일 안타까워 하기에, 이민자를 불가피하게 포함한 교육 불평등의 문제를 관찰하기 유리한 사람들이 그와 나와 같은 이민자들이다. 빛과 그림자를 정확히 보는 것도 일이지만 그보다 공개적으로 토론하기에 독일인들은 어려워할 때가 많다. 전후 회심 문화 때문에 소위 지식인들에게는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해야만 하는 문제들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의 부재에 대한 답답함을 개인적으로 자주 느낀다. 나와 문제 사이에 나보다 오래된 터부(taboo)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서서 내가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과 같다.


Q: 엘-마파라니 교수님, "교육의 신화"라는 책을 내셨는데 학교에 대해 비판적이세요. 지난 수십 년간 교육이 대폭 증가했는데도 교육 제도가 불공정하고 격차를 초래한다고 하세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A: 수학적으로 답하면 단순해요. 모든 걸 두 배로 늘리면 차이도 두 배로 늘어요. 증가로 인해 모두의 기회가 커져요. 하지만 모두가 다른 수준에서 출발하니 격차는 변함이 없어요. 여기서 진짜 문제는, 교육 증가의 이득을 못 본 사람들에게는 상황이 악화된 거예요. 


Q: 어떻게요?

A: 낮은 급의 학교 졸업장이 가치를 뺏겼어요. 지금이 과도기예요. 미래에 어떤 스펙이 요구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확실한 건 단 하나, 직업계열 학교 졸업장만 가지고선, 혹은 졸업장 없이는 앞날이 캄캄하다는 거예요. 


Q: 학교 시스템의 진입장벽이 대신 낮아졌잖아요. 대학을 안 간 부모의 자녀들이 점점 더 수능도 치고 대학도 가요.

A: 좋은 방향이죠. 졸업반의 절반이 오늘날 대학을 가요. 그런데 진입장벽이 얇아졌다고 교육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아요. 대학을 졸업한 부모의 자녀 100명 중 79명이 대학을 가고, 졸업하지 않은 부모의 자녀 100명 중에서는 27명이에요. 3배 차이죠. 직업학교 졸업장도 없는 부모의 경우 자녀 100명 중 12명만이 대학을 가요. 출신의 여파는 교육과 진로를 길이길이 가격해요.


Q: 방향이 좋은데 상황이 악화되는 건 모순인가요?

A: 비유로 말할게요. 사회적 참여란 한 테이블에 모여 앉는 거라 쳐요. 그러면 방향은 맞아요. 테이블에 앉은 인원이 많아지니까요. 그런데 바닥에 앉은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과거에 그랬듯 과반수가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면 바닥에 앉은 사람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이제는 테이블에 많이들 앉았는데 나만 바닥에 앉았다? 이건 불편하죠. 그리고 테이블에서 나누는 대화란, 아직도 바닥에 앉은 사람들은 본인 책임이다, 라는 뉘앙스로 이루어지죠. 


Q: 사회적 연대 의식이 옛날에 더 뚜렷했나요?

A: 계급 안에서는 강했어요. 노동자 간에도 그랬고요. 전반적으로 사회적 상승을 꿈꿨고요. 


Q: 요즘은 달라요?

A: 기회의 평등과 성취의 공정은 우리 사회를 정당화하는 기반이에요. 현실이라기보다 계명 같은 거죠. 자녀들의 미래는 더 밝을 것이라는 약속이 유효할 때는 불공정한 상황을 정당화하기가 더 쉬워요. 이제 그 약속이 사라졌어요. 사회적 상승에 대한 야망도 함께 자취를 감췄어요. 이제 남은 건 단념한 분위기의 사회권들과 평행 세계들이에요. 


Q: 교육 낙오자들의 비율은 얼마인가요?

A: 아이들의 20퍼센트가 가난 속에서 자라요. 연구에 의하면 낮은 교육 성취의 아이들은 거의 전부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요. 꼭 이래야 하는 게 자연의 법칙도 아닌 데도요. 그 아이들이 더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 사회가 사회적 격차를 다루는 방법 때문이에요. 


Q: 학교가 왜 평등화를 이뤄주지 못하고 출신을 수정해주지 못하죠?

A: 격차의 원인은 학교와 상관이 없어요. 수업만큼 아이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곳은 없어요. 하지만 서로 다른 아이들을 똑같이 대하면 그들의 불평등을 재생산해요. 가정과 소속 사회권에서 물려주는 기회와, 개발의 동기와, 문화적 기반은 수업시간 45분으로 보완하지 못해요. 


Q: 상승 과정을 제어하는 사회적 구조에 대해 글을 쓰셨는데 그게 뭔가요?

A: 의도적으로 악의적이거나 제어적인 구조는 없는데요. 대학을 간다 할지라도 출신의 효과는 장기적이에요. 학교든 후에 취업시장이든 경쟁상황은 존재해요. 특권을 누리며 자라면 실력에 상관없이 기회가 더 많고 활용도 잘해요. 


Q: 하지만 다른 학자들처럼 우리 학교 제도를 심하게 비판하기 위해 "교육의 대참사"와도 같은 표현은 안 쓰세요. 왜요?

A: 저는 교육 제도의 개혁은 반대하거든요. 학교 제도의 형식은 바꿀 필요 없어요. 그보다 각 학교 계열들이 개별적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야 해요. 


Q: 어떻게요?

A: 불평등은 체계적으로 다루고 소외 계층은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해요. 


Q: 구체적으로?

A: 다분야 전문 팀이 필요해요. 이들이 보건, 사회복지, 심리, 미술, 문화를 전담해요. 교사들은 수업에 집중하지만 전문 팀들과 함께 소외 학생을 위한 접근을 고안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지원 프로그램, 멘토링, 재능 양성 등이에요. 


Q: 이미 다 있는 거 아닌가요?

A: 극소수예요. 새로운 발명은 필요 없고 있는 걸 제대로 잘하면 돼요. 더 일찍 개입해야 하고요. 현재는 많은 국가 자원금이 현존하는 부족을 메꾸는 데 흘러 들어가요. 직업학교라든지, 검정고시 라든지요. 그런데 그보다 돈을 써야 하는 건 예방이에요. 예를 들어 보육원과 초등학교 말이죠. 


Q: 초등학교를 어떻게 바꾸면 좋겠어요?

A: 온종일 제공해야 해요. 학교란 교사가 지식을 전달하는 장소임에 더해서 모든 교육을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이 맞아요. 


Q: 교육 사회주의 같은데요?

A: 아닙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자율적이에요. 2시에 아이를 픽업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돼요. 


Q: 모두에게 필수인 게 아니고요?

A: 그것도 좋지만 실행 불가능하죠. 부모도 불평하고 교사도 일부가 그렇죠. 


Q: 제안이 실행되려면 뭐가 필요한가요?

A: 교육 예산을 장기적으로 늘려요. 사회가 반대하지 않을 제안이에요. 


Q: 그런데도 요지부동인 이유는?

A: 정치가 다른 주제를 더 중요히 여겨요. 디지털화에 많은 돈이 투여되지만 상대적으로 교육 주제는 그냥 입바른 말들이에요. 교육을 개선해야 한다고 모두가 떠들지만 결국 말 뿐이에요. 


Q: 현재의 교육 체제의 상태와 사회적 기득권의 관계가 있나요?

A: 간접적으로는 아마 그렇겠죠. 불평등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그것을 주제로 삼지 않아요. 해당 안 되는 사람들은 별달리 강조하지 않고요. 그들은 잘 살고 자녀들은 사회에 자리 잡을 것이며, 소외 계층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꿈에도 몰라요. 


Q: 우리는 현재 도르트문트 북쪽에서 인터뷰 중인데, 여기 학교들의 이민자 비율은 90퍼센트 이상이에요. 직업학교가 대부분이에요. 여기서 학교를 세우신다면?    

A: 제가 원하는 학교는 어디든 같아요. 종일 운영되고 학제 간 팀들과 특수 양성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요. 교사 외에도 현장에서의 결정에 특화된 전문인들이 다수 필요해요. 당신이나 저나 문화부 장관 회의보다 그분들이 잘 알아요. 


Q: 엄청난 신박함은 아니네요.

A: 실행 가능한 것을 저는 중요히 여겨요. 독일의 약 1000만 명의 학생과 80만 명의 교사들의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거요. 꿈같은 이야기와 재현 불가능한 실험적 시도들은 이미 필요 이상으로 많아요.   


Q: 실행 가능한 일들을 막는 것은 연방주의인가요? 없애고 싶으신가요?

A: 아니요. 이유는 단지 하나인데, 독일 연방과 16개의 주가 달성하는 합의란 좋은 합의가 아닐 거예요. 


Q: 교수님은 이민자 자녀로서 교육 피라미드의 정상에 올랐어요. 결정적 요소는 무엇이었나요?

A: 사회적으로 개천에서 용 난 건 아니에요. 부모님은 두 분 다 대학을 졸업했어요. 33살에 종신을 받았으니 운도 좋았죠. 지원도 받았고요. 하지만 그만큼 열심히 했고 책상에 열정적으로 붙어 있었죠. 연골 손상이 여러 번 왔을 정도니까 그만하면 열정이죠.


기본적인 걸 잘해야 한다. 평등이란 추상적이고 기본이란 현실적이다. 후자에 공을 들이고 관심을 들이다 보면 전자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너무 간단한 원리이면서도 정치적 근시안과 개인적 이기심 때문에 손에 닿지가 않는다. 


한국의 교육열과 사교육에 의한 기회의 왜곡에 대해서 하도 많이 들어서 독일 인터뷰를 보니 상대적으로 순수의 시대에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순진하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과장 없는 문제의식과 기본적인 해결책을 차분히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희망이 있다. 


일전에 민족학 학회에 우연찮게 들린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왠지 범상치 않은 젊은 학자에게 인상 깊은 한마디를 들은 적이 있다. 사회적 격차의 가장 큰 발생 원인 중 하나는 "언어"라고. 독일만 해도 이민자 사회의 일부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억센 억양과 은어가 있는데, 이게 그토록 짙을 수 있는 이유가 그들만의 사회적 평행세계에서 통용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회권, 계층, 집단을 오가는 사람일수록 그런 특색은 옅어지게 된다. 혹은 스위치 누르듯 변환이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잘못된 쪽의" 소속감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언어의 대안이 없으면 자신을 본의 아니게 사회적으로 격리하는 것과 같다. 나에게 기회를 제공할 능력을 지닌 대상이 0.1초 만에 나를 부정적으로, 혹은 편견 어리게 판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럴 경우 기존의 사회 격차가 존속된다. 


그 짤막한 견해가 3~4년이 지난 아직도 계속 기억나는 것 보니, 문제 분석으로서도 인상적이었지만 나에게 해결책의 실마리로 묵직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언어가 문제면, 역으로 언어가 해결책인 것 아닌가!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난제의 꼬투리를 잡듯 길이 보이고, 필요한 대상들을 설득할 스토리가 생긴다.


이렇듯 좋은 분석 속에는 희망과 미래가 잠자고 있다. 그래서 사실적 눈은 가장 귀중한 능력이고, 자산이고, 소양이다. 친구도 사실적인 사람을 가까이해야 내 발걸음에 힘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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