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야, 달려!
정제광
우리 동네에 타조가 살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요.
“서울에?”
“예.”
“동물원에?”
“아니오. 농장에요.”
동네를 조금 벗어나면 타조를 기르는 농장이 있어요. 하지만 타조 농장은 아니에요. 타조가 단 한 마리밖에 없으니까요. 철망이 쳐진 우리 안에서 칠면조 한 마리와 함께 사는 단 한 마리의 타조! 학원 다니는 사이사이에 나는 매일 타조를 보러 가지요.
타조는 정말 멋진 새예요. 긴 목, 우아한 털 코트, 미끈한 다리……. 특히 타조는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듯한 친절하고도 상냥한 눈을 가지고 있어요. 도대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고양이나 염소의 눈과는 다르지요.
우리 동네 타조는 외로워요. 매일매일 혼자서 지내지요. 칠면조가 곁에 있긴 하지만 키가 작고 심술궂어서 친하게 지내지 않아요.
철망 밖에서 오리들이 몰려다니면 타조는 철망에 바싹 붙어 서서 기다란 목을 내밀고 부러운 듯 내려다보곤 하지요. 언젠가는 오리들이 뛰어가는 것을 보고 자기도 뛰어가려 하다가 철망에 걸려 넘어질 뻔한 적도 있어요.
멀리서 자동차가 지나가면 호기심어린 눈으로, 비행기가 날아가면 그리운 듯한 눈으로 바라보곤 하지요.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적도 있지만 그들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타조는 몰라요.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혼자 남겨진 뒤에야 그들이 던져 준 먹이를 쪼아먹곤 하지요. 한번은 화가 나서 두 날개를 펼치고 사람들을 위협하다가 제자리에 무릎 꿇고 앉아 인도 춤을 춘 적도 있어요. 그게 타조들이 적을 위협하는 방법이래요.
나는 그런 타조를 볼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지요.
‘저렇게 갇혀 있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나와서 뛰어다니면 정말 좋을 텐데.’
하지만 우리 동네 타조는 뛸 수가 없어요. 몇 발자국만 걸어가도 철망이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타조는 대부분 우두커니 서 있거나 이리저리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지요. 타조는 자기가 아프리카 고향 땅에서 맘껏 뛰어다니며 살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나 있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여보! 여보!”
농장 아주머니가 동네가 떠나갈 듯 외쳤어요.
“왜 그래?”
“타조가, 타조가 달아났어요.”
실수로 열어놓은 문 밖으로 타조가 뛰쳐나간 거예요.
문 밖으로 뛰쳐나간 타조는 얼마쯤 뛰어가다가 저쪽에 멈춰 서서 사방을 경계하며 천천히 걸어다녔어요.
타조가 밭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타조가 들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놀라서 뛰기 시작하면 안 되니까 살금살금 다가가야 해.”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타조 머리에 씌울 검은 천을 들고 천천히 다가갔어요.
조심조심…….
그때였어요.
부웅-.
마을 어귀에서 자동차 한 대가 엔진 소리를 울리며 달려왔어요. 마음이 급해진 주인 아저씨가 타조를 향해 거의 뛰다시피 걷기 시작했어요.
“타조야, 달려!”
순간, 멀리 서 있던 내가 소리쳤지요.
타조는 상냥한 눈으로 나를 슬쩍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어요. 주인 아저씨도 달리기 시작했지요.
“타조야, 달려! 달려!”
나는 또 한 번 소리쳤어요.
“힘껏 달려, 힘껏!”
나는 계속해서 소리쳤어요.
“빨리 달려. 빨리!”
나는 신이 나서, 한쪽 팔을 휘두르며 소리쳤어요.
타조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어요.
하지만 타조가 달려가는 방향은 서울 시내 쪽이었어요. 나는 하는 수 없이 타조를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타조야, 달려. 그 길로 계속 가면 복잡한 시내가 나올 거야. 그래도 달려. 높은 건물들이 나오겠지. 그래도 계속 달려. 그러면 좀 낮은 건물들이 나올 거야.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 산이 나올 때까지, 강이 나올 때까지, 지평선이 보일 때까지 타조야, 달려. 산이 나오면 산을 넘고, 바다가 보이면 바다를 건너 달리고 또 달려. 달나라까지, 별나라까지 계속계속 달려. 신나게, 멋지게, 네가 원하는 대로 맘껏 달려.’
나는 타조가 끝없이 달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빌었어요. 타조가 달리는 일은 정말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니까요.
타조가 바람보다 빨리, 구름보다 멀리 달려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기도가 통했는지 타조는 어느새 까마득한 곳까지 달려가 마침내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애앵-, 애앵-.
주인 아저씨의 연락을 받고 긴급구조대가 달려왔지만 타조가 너무 빨라서 잡을 수가 없었어요.
얼마 뒤 학원에 갈 시간이 되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타조 생각만 했지요.
‘타조가 어디까지 달려갔을까.’
피아노 학원에 가서도 타조 생각만 했어요.
태권도 학원에 가서도 타조 생각만 했어요.
‘타조는 지금쯤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들판을 달려가고 있을까. 아니야. 어쩌면 벌써 아프리카 초원에 도착해서 얼룩말이랑 기린이랑 다른 타조들이랑 즐겁게 뛰어놀고 있을지도 몰라.’
나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집에 가방을 던져두고 곧장 농장으로 달려갔어요. 농장이 보이는 곳에서부터 타조가 있나 없나 이리저리 살펴보았지요.
타조는 농장으로 돌아와 있었어요. 여전히 친절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인사했지요. 그러고는 눈을 들어 저 멀리 자기가 달아났던 곳, 서울의 빌딩 숲을 무심히 바라보았어요. 나는 함께 서울의 빌딩 숲을 건너다보며 타조가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덩치 큰 타조가 날아오르면 조금 우습기는 하겠지만 아마 타조는 즐거울 거예요. 답답한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걸 느낄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