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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희작 Aug 20. 2023

중독

 

   

중독,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는.

  중독中毒은 이미 그 이름 안에 독을 품었다. 수심이 깊은 ‘독毒의 바다 중中심‘에서 길을 잃은 자는 그 바다 중심에서 안전한 육지까지 돌아가는데 얼마나 걸릴지, 갈 수는 있는지 막막하다.

 만성적으로 무엇인가에 중독된 사람들은 길을 잃은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많은 시도와 실패 끝에 결국 하는 말이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하자. “ 이 자비로운 듯 자비롭지 못한 말을 뱉어내고, 그동안 자책했던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지만 이내 더 깊고 위험한 해저로 잠식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떤 이는 말한다. 몸과 마음 곳곳에 퍼진 독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중독을 자신과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 받아들이기로. 그렇다면 의문이다. 어느 날 이 사람에게 의사가 “몸에 암덩어리가 있어요. 치료 방법은 이 세포를 친구처럼 데리고 살면 됩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말에 진심으로 “ok, 함께 잘 지내보자”라며 다정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중독, 그 치명적 습관.

 중독적 습관은 현대의 만성 질환과 암이 자랄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조성한다. 암세포들의 까다로운 needs에 맞는 환경을 만들고 매일 먹이까지 공급해 주니, 중독자의 열렬한 후원과 성원에 힘입어 세포들은 쑥쑥 잘도 자란다. 이렇게나 노력해 주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인지상정에 버금가는 암癌지상정. 사실 대부분의 암세포는 중독자의 응원에 부응하기 위해 열일하고 욕먹는 ’ 죄 없는 녀석‘일지도 모른다.


중독, 그 해결책은 어디에.

 중독된 자신을 후회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중독에는 말할 수 없는 이유와 사연들도 있을 테니 옳고 그름을 따질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독은 자신의 컨트롤을 벗어나 주체적인 ‘선택’을 제한하고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중독된 사람들은 보통 ‘사후약방문’을 통해 죄책감을 덜어낸다. 폭식을 하고 소화제를 입안에 털어 넣거나 다음날 끼니를 거르는 등의 행위를 통해 잠시 문제를 묻어둔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시 드러날 것을 알면서도 이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을 책망하면서.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사후약방문의 ’ 약방문‘과 같은 외부적 처방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어딘가에 해독제는 존재할 거야.”라는 믿음과 의존은 중독을 끊지 않아도 된다는 강력한 이유를 제공한다. 특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는 자신을 방치하는 무례하고도 무책임한 말이다. 어딘가에 해독제가 있을 것이란 희망은 중독을 부추기는 촉진제일 뿐.


결론은 결자해지가 답이다. 중독이라는 단단한 자물쇠는 자신이 채웠고, 해독의 열쇠도 자신이 갖고 있다. 중독이 된 이유를 되돌아보며 그때의 자신과 솔직하게 마주하고 대화해야 한다. 그 원인이 단순히 좋아서였는지 결핍을 채우려는 마음의 갈증이었는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다정하게 위로해 주자. “그동안 힘들었지? 천천히 극복해 보자.”


최후에는 중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을 컨트롤하는 ‘몸의 주인’이 되어 미소 짓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껏 상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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