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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un 24. 2024

근거 없는 사랑, 조건 없는 지지와 응원


한바탕 설거지 후의 아이스 커피 한 잔, 그리고 오랜만에 노트를 펼친다. 월요일의 하루를 불안과 초조로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다.

매일 불안으로부터 도망 나가기 바쁘다. 버스로, 시내로, 서울로. 집에 있는 나는 일이 없고 돈벌이가 없고 그래서 늘 초조하다. 무언가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처럼 불안하다. 이 감정이 너무 심하면 가끔 약을 먹는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때도.

머릿속에는 할 일들이 데이터처럼 입력되고 업데이트된다. 내가 중요한 사람 까지는 아니어도, 쓸모 있다고 느끼게 하는 작고 건강한 일들로 채운다. 이렇게 하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론 다 쓸데없는 일 같기도 하다. 그럴 때 또 도망간다. 내가 만들어 놓은 쓸모의 감옥으로부터.


요즘 자주 하는 말과 생각은 “조건 없는 지지와 응원을 받고 싶다.”라는 것. ‘조건 없는’이 중요하다. 쓸모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 있고 살아가는 데에, 존재 자체에 조건 없는 지지와 응원과 인정을 받고 싶다. 그걸 다른 말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걸까.

이런 말을 하니 역시나 “이 나이에 누가 그렇게 해 주냐. 스스로 해야 한다.”라는 말이 돌아온다. 당연하다. 나라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며칠 전 유퀴즈에 출연한 수학자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근거 있는 자신감만으로는 결국 근거가 사라졌을 때 버티기 어려운 때가 오기 때문이다.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말이다. 나는 지금 아무 근거가 없이 사랑을 요구한다. 세상을 향해 외친다. 나를 사랑해 달라고, 여기 있는 (아무 쓸모 없는) 나를 찾아내 달라고.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내 속의 불안이를 발견한다. 보는 내내 그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친구는 사춘기 딸을 떠올렸다던데. 나란 사람의 넘치는 자기애가 아이러니하다.)

지금의 날아가는 글씨처럼 막 살아도 사실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반듯한 글씨가 아니어도 살아가는 데 조금 불편할 뿐 아무 지장이 없을지도. (나의 또박또박한 글씨 또한 완벽한 소통과 받아들여짐을 향한 내적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반듯하려는 노력으로 이만큼 살아왔다. 나의 노력을 나도, 그 누구도 폄하해선 안돼.

그러니까 이렇게 날아가는 글씨도 오늘만이다. 커피를 줄이기로 하고 자꾸 먹게 되는 것도 여름 한정이다. 아.아* 없이는 버티기 힘든 여름이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요즘식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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