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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Oct 22. 2020

어퍼컷을 날리는 부정, 잽으로 대응하는 긍정

열매달, 열엿세


건강검진을 위해 채혈을 하다가 순간 쓰러진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때 이후로, 주사 자체에 대한 약간의 포비아가 생겼다.


따끔.

찰나의 고통을 참는 건 쉬운데, 피가 뽑히는 그 느낌이,

내 안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 나와 내가 분리되는 느낌이 들어서 두렵다.

(물론, 그저 느낌일 뿐이겠지만.)


경험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부정적인 경험은 한 번으로도 쉽게 잊히질 않는데, 긍정적인 경험들은 쌓이고 쌓여야 겨우 인지가 되나 보다.

최근 몇 번 피가 더 빨리고, ‘아 괜찮구나.’를 몇 차례나 경험한 뒤에서야 공포심이 조금 줄어들었다.


복싱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멀찍이 들어본 것들을 바탕으로 드는 느낌은,

어퍼컷은 한 번에 강한 공격을 날리는 느낌인 반면

잽은 잽잽잽잽 하는 느낌이다.


떨어지는 건 쉽지만,

올라오기까지는 그 계단을 다시 하나씩, 또 하나씩 올라야 하는데, 그 한 발 내딛기가 참 어렵다는 점.


근데, 잽으로 시작해서 잽으로 끝나는 것이 복싱이라고 한다.

수차례의 긍정이 쌓이면 부정이 넘보지 못하는 온전함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직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수치가 살짝 높게 나와서

몇 개월 만에 다시 혈액 검사를 하게 되었다.  

이번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채혈을 마쳤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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