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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Jul 24. 2021

하나

한 발.

도망치는 데에만 익숙한 사람이 있었다.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껴지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도망치곤 했다.


하루는 길을 가다 아주 큰 장애물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아직 이 장애물을 넘을 준비가 되질 않았는걸.'


장애물을 피해 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그 사람은 하루 종일 그 장애물 앞에 서서 장애물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이 장애물을 넘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온 길이 아까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또다시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는 장애물 앞에서,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노래도 부르고, 꽃도 심으며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나갔다.


자신이 온전히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그 공간에서 그는 제법 편안해 보였다.



본인도 이 생활에 만족한다고 착각하고 있을 때쯤, 무심코 장애물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문득 마음 한 켠이 복잡해졌다.


'여긴 어딜까.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내가 바라던 게, 원하던 게 뭐였지.'


본인이 원하 것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생활은 아니었다는 것.


언제부턴가 장애물 앞에 이렇게 있는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이제는 넘어야 한다. 어떻게든.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그도 잘 알고 있었지만, 도망만 치던 이전의 습성이 두려움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할 수 있을까.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준비가 되는 날이 오긴 할까.'


하지만, '할 수 있을까''해야만 한다'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시기적으로 또 상황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더 커진 부담감만큼 근거 없는 용기가 생기려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일은 발을 떼어보기로 했다.

무작정.

어떻게든 경험해봐야 실패하더라도, 넘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발. 겨우 한 발일 뿐인데. 막연한 불안함에 휩싸여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었다.


'아무 일도 아닐 거야. 그 시간만 지나면, 나는 평소의 나와 다름이 없을 테니.'


마법 주문을 외듯 조용히 반복해서 읊조렸다.


긴긴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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