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 김윤선
우연히 펼쳐 본 “쇼팽노트”는 단숨에 책 한권을 읽어내려 갈 만큼 흥미로웠다.
소설 ‘좁은 문’으로 알려진 앙드레 지드(Andre Gide, 1869년~1951년)는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이다. 그의 눈에 비쳐진 또 다른 거장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에 관심 있게 보았다. 앙드레지드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서 쇼팽을 깊이 존경했다. 하지만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지드에게 쇼팽 음악은 가까이 해서는 안 될 불순한 음악이었다. 가녀리고 감상적인 음악으로 오해받아 쇼팽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지드는 40여년의 구상 끝에 글로 풀어내었다. “쇼팽노트”는 1913년 음악잡지인 “르뷔 뮈지칼” 쇼팽 특집호에 실린 글과 지드의 일기 중 음악과 관련된 부분, 그의 쇼팽 해석을 지지하고 반대하는 글에 대한 답들로 음악을 들을 때 보다 쇼팽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지드는 불건전하다 금기시 여겨진 쇼팽 음악에서 ‘프랑스 정신’의 정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이는 쇼팽이 ‘게르만적 정신’과 구별되어 얼마나 찬란하게 자신의 음악을 드러내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지드는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 성스럽고 불경한 사랑, 변형, 우울, 도시의 붕괴, 사라진 순수성, 삶의 억압성 등의 주제를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당 대의 비평가들 사이에 혹평과 비난을 받고 풍기 문란으로 벌금형을 받게 됨-과 비견될 만하다고 한다. 쇼팽과 보들레르가 가진 완벽에 대한 강박을 쇼팽은 음표로 표현한 ‘예술가’라 칭한다. 완벽한 예술가로서 시인의 시가 단어에서 시작하듯 음악은 음표에서 출발 한다. 2분 음표, 4분 음표 등의 음표는 단어가 되고 음계나 마디에 자리 하는데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단순한 재료인 음표에 인간적인 감정을 침투시켜 말하고 울리게 하는 쇼팽은 ‘천재’이고 ‘예술가’인 것이다.
지드는 지나치게 빠른 템포를 고집해 자기를 돋보이려는 피아니스트에게 쇼팽 작품을 보통 연주빠르기보다 훨씬 느리게 연주 해보라고 당부한다. 명연주가의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청중이 감동하여 황홀경에 빠지는 반응, 이러한 반응을 충분히 누릴 만한 작곡가가 바로 쇼팽이라 한다. 쇼팽 음악은 제안하고, 가정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고, 유혹하고, 설득하는 일련의 과정을 들려줘야 한다는 것이 지드의 생각이다. 쇼팽 이전의 음악가들-바흐는 제외하고-은 시인처럼 하나의 감정에서 출발한다. 일단 출발 뒤 이어지는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는 시인처럼. 이와 정반대로 단어에서, 구절에서 시작하는 시인의 방식처럼, 쇼팽은 완벽한 예술가로서 음표로 부터 출발한다(쇼팽이 ‘즉흥적으로 작곡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쇼팽이 시인보다 한 수 위인 것은 즉시 이 매우 단순한 자료인 음표에 매우 인간적인 감정을 침투시켜 그것을 웅장함으로까지 확장하는데 있다.
쇼팽의 작품과 재능은 다른 작곡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동년배 작곡가인 슈만도 쇼팽의 음악에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선율의 영향 받아 ‘사육제’를 작곡했다. 쇼팽은 서양음악사에서 낭만주의에 속하지만 정작 자신은 낭만주의에 관심 없거나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형적인 낭만적 경향을 띤다. 대 문호 지드는 당시 바그너의 영향 하에 있던 유럽 음악과 다른 폴란드의 영감과 프랑스적 감수성이 충만한 매혹적인 쇼팽을 사랑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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