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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Jul 21. 2024

여행지에서 "우와"하지 않는 이유

일상과 여행

아침이다.

창밖에는 어스름을 뿌려 놓은 카파도키아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대충 세수를 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아무도 깨지 않은 시간에 혼자 숙소 계단을 올랐다. 주변이 고요하다.

원하는 만큼 사방을 구경했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꿰어 넣어 약간 쌀쌀했지만 폐를 가득 채우는 찬 공기가 오히려 기분 좋았다.



친구와 계획할 때 가장 기대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카파도키아다. 먼 옛날 분출된 마그마로 인해 이곳에는 거대한 기암괴석이 놓였고, 열기구를 타고 내려다보는 이색적인 풍경은 튀르키예의 명물이 되었다.

거센 바람 때문에 열기구는 못 탔지만 동굴 호텔의 꼭대기에 올라 마을을 한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렸다. 동양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깎아지른 기암괴석과는 다르다. 이건 마치 이불을 뒤집어쓴 꼬마 유령 같다. 뭉툭한 버섯이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멋지다는 단순한 감상 외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서서 멍 때리고 있었다.


처음 여행을 했을 때는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웠다. 좋은 친구들이랑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서 헤어지고 싶지 않은 것처럼 여행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여행지의 모든 것을 감각하고, 흩어지지 않게 꽉 쥐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붙잡고 매달렸을 것이다. 하루만 더... 한 시간만 더...!


낯선 곳으로 향할수록, 한국에서 멀어질수록 살아 있다는 느낌도 강해졌다.

여기까지 올 수 있다니.

한푼 한푼 모아 여행을 감당하고 모르는 장소를 공부해가며 길을 찾는 나는 더 이상 무력한 어린애가 아니었다. 여행은 나에게 주는 보상이자 잘 살고 있다는 증표였다. 버킷리스트에는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늘어났다. 모든 것이 나아 보였다. 여정 내내 한식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고 잠드는 것도 아쉬워서 밤늦게까지 꾸역꾸역 관광지를 쏘다녔다.

 

동시에 나는 집에 들어가는 게 두려웠다. 정확히는 집에 돌아가서 느낄 감정을 외면하고 싶었다. 집에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모든 것, 또는 책임지기 싫어 미뤄둔 모든 것들이 쿰쿰하게 쌓여 있었다. 그걸 다시 보는 게 무서웠다. 특히 가족들과 얽힌 기억은 가장 피하고 싶은 더께였다. 험하게 눌어붙어 지울 시도조차 못 하는.

여행지에는 복잡한 서사도, 해묵은 갈등도 없다. 깨끗하게 치워진 숙소와 오늘 당장 가야 할 곳, 먹어야 할 음식들이 있을 뿐.

그래서 나는 여행이 끝나는 게 슬펐고 여행과 대비되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싫었다. 완벽하게 표백된 여행지에 비해 집은 너무 갑갑하고 더러웠다. 무균실에 있다가 밖에 나갈 것을 두려워하는 환자처럼 끝을 생각하면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이미 우울했다.


오늘의 나는 여행에 길게 감탄하지 않는다. 피곤하면 일찍 잠들고, 귀찮으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불속에서 꼼지락댄다. 몇 백장씩 사진을 찍어대고, 늦게까지 몸을 혹사하며 돌아다니는 것도 그만뒀다. 그리고 혼자 튀르키예를 여행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 동안 돌아가고 싶다고 자주 생각했다. 같이 오지 못한 친구가 보고 싶었고, 익숙한 한국 음식이 그리웠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집에 가는 게 무섭지 않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그저 조금 다른 세계를 보고 오는 것일 뿐.

환상적으로 깔끔하지 않은 나의 일상도 상당히 괜찮다. 티 안 나게 내려앉은 먼지는 닦으면 되고, 켜켜이 쌓인 때도 마음 먹고 지우면 된다는 걸 사는 동안 배웠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도망치지 않고도 여행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이제 안다.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떠난다면 더 널리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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