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라는 마약
나는 운이 좋게도 국내 1위 대기업 세 곳 - CJ, NAVER, KT - 도장 깨기를 하고 창업했다. 굴지의 세 대기업을 꽤 즐겁게 다니기도 했고,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도 정말 많이 만났고, 결정적으로는 그곳들이 지금의 사업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었는데 최근 <가짜 노동>을 읽으며 그 이유가 하나로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이 좋은 직장들을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는 '가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 시장이 사람들의 '시간과 관심'이라는 자원을 두고 SNS와 경쟁하고 있는 만큼 내 '시간과 관심'은 소중하다. 그런데 내가 가장 많은 시간과 관심을 할애하는 직장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내가 대기업에서의 가짜 노동을 느낀 세 가지 포인트는 다음과 같았다.
1) 일을 위한 일, 보고를 위한 보고
2) 상사를 위한 감정 노동
3) 부서 간 쓸데없는 기싸움
여기에 쓰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진짜 일에 쓰면 더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이 가설을 몸소 검증하기 위하여 창업하였다 하여도 과장이 아닐 수도. 그렇다면, 나의 시간과 노동을 진짜 노동에 쓴 결과는?
1) 진짜 일을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단, 일의 낭비도 없이 내가 일한 그대로.
2) 그래서 끊임없이 일을 하거나, 끊임없이 일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버는 것은 또 다른 변수가 존재한다.
창업해서 진짜 노동을 해보면, 대기업에서 내가 진짜 '가짜 노동'을 했다는 것이 더 분명해진다. 어차피 끊임없이 일을 생각할 거면, 진짜 일을 위한 생각을 하고 싶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창업 동기였다.
창업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버는 것에는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고 운이 좋아서 성과를 내더라도, 코로나 같은 변수에 한순간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사업이었다. 창업의 모든 장점을 합쳐도 대기업의 안정성과 비교 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창업 후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이라는 마약의 금단현상 때문에, 혼자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에 사실 다시 안정적으로 월급 받는 회사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생각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몇 번 시도를 했으나 나는 결국 다시 홀로 가기로 결심했다.
1인 창업은 결국 홀로 가기를 선택하는 것, 나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나로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명하거나 숨을 구석이 없는 선택이니까. 자 이제, 돈만 벌면 된다. (그게 항상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