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웰브져니 May 08. 2024

극장 영화 산업의 위기

우리 뉴비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코로나가 끝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영화 관객 때문에 시장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 영화가 언제 위기 아니었던 적이 있었냐며 대수롭지 않아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 상황은 확실히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은 도저히 판 자체를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예상이 벗어나는 지점은 기껏해야 여름과 겨울 시즌 텐트폴 몇 작품을 각 배급사마다 개봉시키면, 대박 날 것 같은 작품이 생각보다 잘 안 되는 정도였지 여름/겨울 몸비 시장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개봉 영화가 모두 안될 줄은 몰랐다. 지금은 흥행 패턴 자체를 읽기 어렵다. 잘 되는 영화는 시즌에 상관없이 너무 잘되고, 그 외의 영화는 상상 그 이상으로 흥행이 안된다.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기거나, 손익분기점에 턱 없이 모자라거나 둘 중 하나라, 안정성을 어느 정도 답보해야 하는 투자는 경색될 수밖에 없다. 


영화 시장의 변수 발생 1 : 넷플릭스의 부상 (2019년)

 극장 영화 시장이 어려워진 첫 번째 원인은 2019년 넷플릭스의 부상이었다. 나는 당시 영화 <왓칭>의 투자를 담당하고, 공동 제작 하였다. 영화 <왓칭>은 저예산 영화로 당시 4월 비수기 개봉 전략을 가지고 낮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 목표였는데, 물론 영화적 완성도의 문제가 컸지만 그를 감안하더라도 전년도와 전전 연도 비수기 시즌 대비 전체 시장 사이즈 자체가 작아져 있었다. 내 뇌피셜일 수도 있지만, 2019년 4월에는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킹덤>이 히트를 쳤다. 예전에는 같은 영화끼리 경쟁하므로, 경쟁작의 완성도와 비교하여 내 영화의 상대적 점유율을 계산할 수 있었지만 영화의 경쟁작이 이제 넷플릭스가 되어 스크린의 상대적 점유 자체도 큰 의미가 없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 시장의 변수 발생 2 : 코로나 (2020년 - 2021년)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로 인해 극장 관객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언론에서도 많이 떠든 주제이다. 극장 영화 관객은 거의 반타작이 났다. 그러나 이때는 모두 코로나만 끝나면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코로나가 그래도 아직 남아있던 시절인 2021년 11월에 <연애 빠진 로맨스>를 개봉했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당시 사전 모니터링 시사 점수가 CJ E&M 로맨틱 코미디 사상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올 정도로 완성도가 있었다. 그러나 배우 인지도가 약한 단점이 있었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손석구 배우는 우리 영화 개봉 당시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두 작품인 드라마 <해방일지>도, 영화 <범죄도시 2>가 오픈되기 전이었다. 코로나 시기에 개봉했다는 치명적인 약점까지 가진 <연애 빠진 로맨스>는 개봉 이후 뜨거운 입소문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1위를 하지 못하고 저조한 극장 수익을 기록하며 극장에서 내렸다. 


영화 시장의 변수 발생 3 : 잃어버린 집중력 (2022년 이후)

 드디어 코로나가 끝났다. 2022년 상반기는 영화 시장은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넘쳤던 것 같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2022년 백상 예술대상에서 영화 시나리오상까지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마침 손석구 배우가 뜨면서, 부가 판권 매출이 높게 나오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시기에 투자 배급사들이 트웰브져니를 많이 찾아와서 투자 논의를 활발히 나누었다. 그러나, 코로나를 끝내고 맞이한 2022년 여름 시장이 모든 것을 반전시켰다. 투자배급사들이 가장 큰 기대를 하는 여름 시장에서, 단 한 작품도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을 넘어서서 예상보다 훨씬 못한 흥행 결과를 낳은 것이다. 2022년 여름 영화 Big4인 <한산:용의 눈물>, <외계인 1부>, <비상선언>, <헌트> 중 단 한 작품도 천만을 하지 못한 데다 <외계인 1부>와 <비상선언>은 예상보다도 훨씬 저조한 흥행을 하여 투자배급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여름 텐트폴 흥행 공식이 깨지고, 다음 해인 2023년 나는 5월에 <롱디>를 개봉시켰다. 영화 <롱디>는 2019년 개봉시킨 영화 <왓칭>처럼 저예산 영화였는데, 저예산은 저예산대로의 흥행 공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영화의 기획단계부터 큰 흥행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예측되는 선은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예측은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비켜갔다. 

 실패는 끝없는 복기를 낳는다. 왜 이렇게까지 예상을 벗어난 실패를 했는가에 골몰하던 중 나는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답을 얻은 것 같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주요한 내용은 SNS를 만드는 IT기업들이 인간의 행동 과학을 연구하여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장치들을 가지고 인간의 주의력과 시간을 훔친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내 영화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다른 영화도, 넷플릭스도 아니었다.  현재 극장 영화는 "주의력"과 "시간"을 두고 싸우고 있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무기를 가진 SNS와 경쟁하고 있었다. 

 극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름에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2023년과 2024년에는 천만 영화들이 나왔다. 다만 "주의력"과 "시간"을 가져가는 다른 것들 (SNS 숏폼 등) 보다 월등한 가치를 제공해야지만 사람들은 움직일 것이다. 

 나의 전략은 경쟁 상대가 "다른 영화"일 때는 다른 영화와 다른 차별점을 기획하였고, 경쟁 상대가 "넷플릭스"일 때는 넷플릭스용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극장 영화 시장 자체가 빈익빈 부익부가 되면서 나같이 신인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들에게 돌아가는 기회가 너무 없어졌다. 현재 드라마 시장 역시 과포화 상태로 선택받는 일의 난이도는 극상이 되었다. 

 나는 신인 창작자들과 신인 배우들과 주로 일을 해왔고, 그들과 일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내가 행복한 일인 신인들과 영화를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내가 새롭게 만들어갈 나의 사업 전략은 모두 이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